홍성란 시인 / 돌아오는 길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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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시인 / 돌아오는 길
네가 감추려는 것 이미 알고 있으니
거짓말 안 해도 돼 그냥 믿어줄 테니
이것이 사는 법이라고 웃지 않고 웃었네
-시집 『춤』 2013, 문학수첩
홍성란 시인 / 그새
갠 하늘 그는 가고 새파랗게 떠나버리고
깃 떨군 기슭에 입술 깨무는 산철쭉
아파도 아프다 해도 빈 둥지만 하겠니
홍성란 시인 / 바람의 머리카락
대추 꽃만 한 거미와 들길을 내내 걸었네
잡은 것이 없어 매인 것도 없다는 듯
날개도 없이 허공을 나는 거미 한 마리
가고 싶은 데 가는지 가기로 한 데 가는지
배낭 멘 사람 따윈 안중에 없다는 듯
바람도 없는 빈 하늘을 바람 가듯 날아가데
날개 없는 거미의 날개는 무엇이었을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 있다는 듯
매나니 거칠 것 없이 훌훌, 혈혈단신 떠나네
홍성란 시인 / 명자꽃
후회로구나 그냥 널 보내놓고는 후회로구나
명자꽃 혼자 벙글어 촉촉이 젖은 눈
다시는 오지 않을 밤 보내고는 후회로구나
홍성란 시인 / 쌍계사 가는 길
날 두고 만장일치의 봄 와 버렸네
풍진처럼 벌 떼처럼 허락도 없이 왔다 가네
꽃 지네 바람 불면 속수무책 데인 가슴 밟고 가네
-시집 <바람의 머리카락>중에서
홍성란 시인 / 목숨
밤을 끊지 못해 그냥 피는 꽃처럼
죽지않고 반항하는 명료한 지구처럼
떠돈다 봄바람인가 의심하는 나무들이
ㅡ『시조시학』(2020, 여름호)
홍성란 시인 / 설악 공룡능선
엎드린 돌의 나이를 묻는 사람 있었다 답을 바란 것이 아니란 걸 알았으니 훔치듯 훔치다 말고 셔터를 눌렀다
곧추선 돌의 자세를 헤아리기 전부터 이 모양으로 돌은 기어 다녔으나 바위도 피할 수 없는 여린 일 있었다
지도에 없는 교차로에서 뒷모습을 보내고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 불렀다 꽃 피고 꽃 지는 일 아닌 운명이라 불렀다
ㅡ 2020년 열린시학 동인지『빛, 그 너머』(고요아침,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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