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송은영 시인 / 마음의 리모컨 외 6편

파스칼바이런 2025. 9. 19. 08:00
송은영 시인 / 마음의 리모컨

송은영 시인 / 마음의 리모컨

 

 

갈고리촌충이 돼지고기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와서

뇌 속에 박혀 단단히 똬리를  틀듯

감정의 헛구역질로

리모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저 멀리 나뭇잎이 바람에 불려간다

 

알콜중독 섹스중독 게임중독 성형중독에 걸린

허기진 세상은

일 년 삼백육십오일 드라마 주인공으로

즐거움이 끝없다

 

땅 짚고 헤엄쳐도

반전이 없는 내 인생의 판타지

 

우리의 일생이 붙박이가 되는 순간

위성송수신 접시안테나 주파수는

상처로부터 떨어져 나온 채널을 고정시킨다

 

 


 

 

송은영 시인 / 막장

 

 

온통 검은색 탄가루가 날리는 나날이었다

갱 안엔 컴컴한 가장들이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일을 하기 위해 하루하루 산다

갈 곳이 없어 여기 왔으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채탄작업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난을 껴입고

밑바닥을 내려다가 포위되어 버렸다

돌구이 삼겹살로 목구멍 먼지를 닦으며

이 막다른 곳에서

서로가 누구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헌신을 하면 헌신짝처럼 되리라

현실은 드난살이하는 것과 달랐기에

밥을 먹다가도 잠깐 쉬다가도

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비상할 준비가 되어있다

 

 


 

 

송은영 시인 / 병에걸렸어요?

 

 

내일이 불안하기 때문에 오늘 많이 먹었어요

얼마나 불안했으면 오줌 싸는 병을 고치려다

똥 싸는 병을 얻었겠어요

 

밤하늘 별이 되려

사다리를 타고 끊임없이 올라가다

한순간 추락해 원래 이름이 없어졌어요

 

모든 유혹에 빠진 내가

더는 내줄 것도 없을 때

세상과 단절하는 지독한 문둥병을 앓아요

 

비루먹은 시간

인슐린 수치가 올라가고

무단 방치된 영혼을 잘못 건드려

내 시가 너들너들 해졌어요

 

여기서 최선책은

권태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것이라

태풍이 바닷물을 엎어버리듯

아우성 치는 중이예요

 

 


 

 

송은영 시인 / 안개

 

 

내 주위는 안개이다

안개 때문에

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안개는

나를 지배할 수 없고

나도 지배당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안개에 어울릴 만한

가벼운 악세서리를 연출할 뿐

 

안개는 그냥 안개이다

안개는 안개의 속성대로 움직이나

누구도 안개의 속성을 모른다

새로운 안개가 내 주위를 차지해도

이미 그 안개에 익숙하다

안개는

그냥 안개일 뿐이다

 

 


 

 

송은영 시인 / 시인의 말

 

 

모래알처럼 많은 시인과 시들

그 속에 내 시는 보이지도 않고

사람들이 알아 주지도 않지만

그래서 나는 내 시가 좋다

시를 쓸 때만큼은 살아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소외된다

오일장 뻥튀기 아저씨의 호각 소리를 들으며

대중도 없고 독자도 없고 환호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시를 쓰고 시를 읽는 변방의 독자가 된다.

 

 


 

 

송은영 시인 / 이데올로기

 

 

아침 신문을 보면

학연, 지연, 내편. 니편

변절자, 배신자, 빨갱이, 수구꼴통

주류, 비주류만 있고 서민은 없다

 

진짜 서민은 언제쯤 제대로 대접 받나

달이 지고 해가 뜨면

내일은 오늘이 된다

 

죄지은 자 떳떳하고

죄짓지 않는 자

두부처럼 단숨에 으깨진다

 

없는 것이 너무 많은 하늘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거머쥘 가방 끈 하나 없는 자유

없는 것이 차라리 구원이고 이데올로기다

 

 


 

 

송은영 시인 / 마흔 증후군

 

 

중심에 가보지도 못하고 서성이다 마흔이 되었다

바야흐로 좋아하는 일도 밥벌이가 된 마흔

 

길 모퉁이를 돌았을 때

새털처럼 가벼웠던 몸이

이제는 쇠뭉치처럼 무거워졌다

 

그대 생각하면

마음이 싸하니 청량해지다가도

우리 아이에게 불량 장난감 총을 판매한

학원 문구 주인과는 안면 몰수하고 대들며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살아온 시간이 콩인지 된장인지

거친 백파가 일어나는 바다를 보면

말없이 뛰어들고 싶다가도

금새 현실로 돌아와 안주하는 나는

염화시중 미소가 통하는 마흔이 좋다

 

 


 

송은영 시인

1969년 포항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2007년 <시와 상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한국작가회의', '시산맥', '영남동인' 회원으로 활동. 시집 『별것 아니었다』. 현 방과후 초등학생 글쓰기 논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