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린 시인 / 꽃에 대한 예의 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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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린 시인 / 꽃에 대한 예의
저녁 해가 토해 놓은 바다에 핀 저, 꽃 출렁이며 흔들리는 붉은 덩이가 선창을 물들이다 닻 내리던 어부의 굽은 등을 물들인다 섬 모퉁이 물결 따라 사라지는 노을 꽃 장엄하게 피고 지는 생에 대한 예의로 부둣가를 서성이던 늙은 개가 조문하는
-동인시집 『하로동선』 6집 (2021)에서
이서린 시인 / 박수기정
태양이 낳은 노을을 품던 날이었다 먼 바다를 항해하던 고래가 돌아온 그 밤 달은 아이의 눈망울에 맑은 샘을 들여놓고 소리도 없이 흐르던 물소리와 밤새 나의 머리맡을 두드리던 파도는 절벽의 검은 기슭에서 오래도록 뒤척였으니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전설로만 남았는데 비바람 칠 때 범람하는 물결에 용을 보았다는 것은 간절한 기다림의 다른 말
배를 타고 나간 그는 수평선을 넘었을까 물길을 열어 자신의 길을 완성은 하였을까 그 길에 등대는 있었는지 별빛은 어디까지 따라갔는지
절벽 끝까지 가 본 아이의 발길 물빛은 하늘을 당겨 경계도 없이 구름도 심어놓고 갈매기도 심어놓아 외롭지는 않았다
바다를 열고 해의 정수리가 올라올 때 물속 계단을 내려가 귀를 씻으면 이윽고 깊은 울림으로 먼데서 들려오는 아니, 듣는 이에게만 들리는 오랜 기원의 휘파람
웹진 『시인광장』 2023년 5월호 발표
이서린 시인 / 북면
북쪽의 얼굴이란 이름이 마음에 든다 하였다, 그는 북면北面이란 이름은 사방 어디에서도 북면이며 동면도 서면도 남면도 아닌, 북면 이라는 발음이 마음에 든다고도 하였다 복면처럼 들리기도 하여 표정을 알 수 없는 복면을 썼을 것 같은 북쪽의 얼굴
싸움에 패배한 상처투성이 고양이의 울음과 오래된 농기구만큼 늙은 몸들이 절룩이며 지나는 들녘 감밭은 종횡무진하는 까치 떼가 마을 사람보다 많은 대문 밖이 저승같이 깜깜한 밤 들에서 일하던 그가 달빛을 긋고 북두칠성을 몸에 새긴 채 그림자를 끌고 돌아오는 먼, 곳
어둠에 묻힌 그의 뒷모습과 돌아오는 새들로 무성한 대숲 소리 간혹 우울한 짐승의 울음이 밤하늘에 퍼지는 여기는 아직 북면의 안쪽
-시집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에서
이서린 시인 / 붉은 강물이 흘렀다 -삼랑진 검세리 학살지
1. 그해 칠월의 끝 한낮의 태양은 식어갔고 여름날 저녁의 더운 입김 아래 마을은 한숨과 공포에 젖어 있었다 사방이 어둠에 잠기고 세상이 잠들 무렵 비명을 지르듯 기차는 달렸고 낙동강 검세리 철길 부근은 한 무리의 검은 그림자로 소란하였다 컴컴한 철길 옹벽에 사람들을 세우거나 묶인 채로 세워지는 무리로 운명은 나누어졌다 한밤중을 뒤흔드는 총소리와 처참하게 강물에 던져지는 사람, 사람들 아니라고, 아니라고 몸부림쳐도 산 채로 수장을 당하거나 총에 맞아 떠밀려서 사라져간 사람들 낙동강은 핏물로 번져 흘렀다
2. 죄 없이 죽어야만 했던 한 나라의 사람들이 양산의 중리마을 모래톱에 걸렸거나 대한해협을 지나 대마도에서 발견되었다
3. 기차는 오늘도 달리고 삼랑진 시루봉 강변 따라 이어지는 철길 아래 나란히 굽어지는 자전거도로 은색 바퀴를 굴리며 몇 대의 자전거가 옹벽 아래를 지난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무성한 풀과 나뭇잎 핏물을 품었던 낙동강이 눈물을 삼키며 흘러, 흘러간다
이서린 시인 / 어이없지만
오래돤 사진속 온 천지 꽃 사태 봄눈처럼 흩날린 날 만지면 번질 것 같은 벚꽃을 배경으로 단발 소녀는 철없이 웃고 있었다
와르르 떨어지는 꽃잎인 줄 알았지 하, 그놈의 입술인 줄 미처 몰랐다
그 봄, 분홍의 꽃들이 여좌천을 따라 흘러가고 사랑의 언약들도 꽃처럼 피고졌다
사진 속 얼굴이야 잊으면 그만인데 꽃 지듯 지난 날 지고나면 그만인데
꽃이 지면 어쩌나 애태우던 봄 꽃물 번져 두근거리며 지새웠던 밤 달의 주기도 다 채우지 못해 짧아서 가련한
첫사랑이었다
이서린 시인 / 저녁의 內部
검은 자락 펄럭이며 몰려오는 구름 산이 지워지고 있다
죽은 고양이의 말라붙은 털이 풀처럼 돋아난 저녁 길인 듯 아닌 듯 헤드라이트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5번국도 삼거리 나는 아직 이 길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모르는데 겨우 눈 뜬 별을 따라가는 저 까마귀는 알고나 날아가는 것일까
누군가는 진통제를 먹고 다시 밥을 짓고 누군가는 弔問하러 집을 나서는 어두운 문밖 셀 수 없이 다녔던 이 길 위에서 바람에 일렁이는 세상을 본다
운전석 깊숙이 가라앉는 몸 삼거리 창고 앞을 지나는 개 한 마리 저기, 상향등으로 달려오는 트럭의 경적
저녁은 內部로부터 통곡하는 짐승같이 짐승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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