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자 시인 / 바흐와 함께 하는 아침 외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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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시인 / 바흐와 함께 하는 아침
소쩍새가 운다 호밀빵과 샐러드 커피 한 잔으로 식탁을 준비하고 바흐를 듣는 아침이다 창밖엔 온통 연둣빛 초원 빵과 커피와 바흐로도 충분한데 식탁에는 망초꽃이 다발로 웃고 있다 마음에선 기도가 절로 나온다 이 희락을 부정한다면 세상 무엇이 행복이겠는가
-시집 <당신이라는 갸륵>에서
김인자 시인 / 방랑자
대개는 전체를 보려하지만 전체 안에서 부분을 볼 때 더욱 뭉클한 순간도 있다 속을 훤히 비운 고목에서 갓 피어난 여린 순이 그렇다 그러니까 늙었다고 아주 끝은 아닌 거야 자세히 봐 도처에 꽃 피우려는 흔적 역력하잖아
김인자 시인 / 그대와 함께
무지개가 다리를 놓는 그곳 그대와 함께 어느 무인도 외딴섬으로 가게 해다오
그곳에 밭을 일구고 푸른 잎 사이로 상긋한 봄이 오면 보리밭 이랑마다 아지랑이 피고 여름이면 자주색 감자꽃 거기 부서진 자유를 모아 물새들 목청껏 노래하는 그런 섬으로 가게 해다오
가을이면 하얀 꽃잎 머리에 이고 겨울이면 한지창에 스미는 따사로운 햇살
아침이면 물새의 지저귐으로 창이 밝고 저녁이면 호롱불 아래 그대 기타 소리로 잠들고 싶어
그렇게 우리의 소망 연초록 잎새이게 해다오
문명의 화려한 옷 없어도 지천에 흩어진 자유만으로 은총의 빛살 가르며 그대와 함께 조용히 나이 들어가는 그냥 한 알의 홀씨로 살게 해다오
김인자 시인 /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첫 결혼기념일이 이혼기념일이 된 후배의 변은 걷잡을 수 없는 남편의 바람기가 원인이었단다 30년을 한 남자와 살고 있는 나도 실은 한 남자와 사는 게 아니다 영화나 소설처럼 호시탐탐 친구의 애인을 넘보고 선후배에게 추파를 던지고 이웃사내에게 침을 삼켰다 단언하지만 이런 외식이 없었다면 나야말로 일찍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결혼제도란, 한 여자가 한 남자만을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정지어진 공소시효가 불분명한 합법을 가장한 희대의 불법 사기극 나는 달콤한 미끼에 걸려든 망둥어, 위장취업자, 아니 불법체류자, 결혼이라는 기업에 청춘의 이력서를 쓰고 정규직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상근봉사자, 가문의 대소사엔 대를 이은 비정규직 노동자, 자식에겐 만료가 없는 무보수 근로자, 이런 근로조건에서 이 정도 바람 없기를 바란다면 인간이 아닌 건 내가 아니라 후배일 터, 나는 삼류영화,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봤고 후배는 너무 오래 교과서만을 탐닉한 결과다
김인자 시인 / 슬픈 농담
이 슬픈 농담들 - 무능하고 가여운 나에게 바친다.
다시 이름을 갖게 된다면 나는 나무다. 나무南無namas란 원래 돌아가 의지한다는 의미로 성인의 이름이나 경문 앞에 붙여 절대의 믿음을 나타낸다지만 나는 단순하다. 있지만 없다는 뜻의 나무i&無, 그러나 내가 없는데 이름이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닌가, 하지만 혹 이름을 가지게 된다면 저 들판에 사시사철 혼자 푸르다가 자지러지다가 아무도 아니게 사라지는 나는 나무木이고 싶다.
'눈물바람으로 놀다가다.'
한 때는 이런 묘비명을 가슴에 품고 살 때가 있었다. 詩를 펜으로 쓰지 않고 몸으로 살 때였다. 바닥에서 서성대는 지금, 몸으로 쓰는 詩가 간절히 그립다.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버림, 그것도 모두 버림이다. 저 들판의 겨울나무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지는 두고봐야겠다, 혼자만 읽을 詩를 또 묶는다.
2004년 새해
김인자 시인 / 그대 마르지 않는 사랑
-그 모두가 감히 사랑이기를.....
어느 가을, 달빛 가득히 부서지는 숲에서 나는 '용서'라는 말을 배웠다. 유럽으로, 미주로, 남태평양으로, 어리석게도 나는 너무 먼 곳에서 큰 것만을 보겠다는 고집으로 시간을 허비했고, 그것으로 지쳤다. 내 나라 삼천리 금수강산 늘 곁에 있어서 무감각했던 아주 작은 것들이 이토록 어여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들꽃과 나무들 사는 숲이 마음 안에 집을 짓고 그들의 사랑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자연은 내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분께 고백하고 싶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다 보려는 듯 무작정 길거리에서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먼 곳을 돌아 당도한 이 곳이 내가 그렇게도 꿈꾸며 가고 싶었던 그 곳임을 알았기에, 주어진 작은 것들을 아끼고 나누며 남은 시간을 건너가고 싶다고.... 강원도 산골 외딴집, 세월의 찌든 때와 남루한 세간들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햇살이었다. 이토록 주체할 수 없는 내 방황기조차 그 햇살이 지켜주리라 믿으며 언젠가 나 돌아가 쉴 곳도 햇살 가득한 자작나무 숲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밤 여행에서 돌아와 하룻밤 안락한 침대에서의 숙면으로도 나는 족하다. 눈을 감고 어제와는 또 다른 풍경을 꿈꾸며 가방을 챙겨두지 않고서는 잠자리에 들 수 없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낡고 헐렁한 코트, 뒷굽 닳은 신발, 쓰다만 스케치 북, 잉크 가득 채워진 만년필, 엽서 두어장, 그리고 문 밖에서 뜬눈으로 나를 기다려 주는 낡은 자동차, 됐다! 언제고 마음이 조를 때 떠나기만 하면 된다. 이 겨울엔 주어진 행복에다 시가 있는 여행 에세이 한 권을 보태게 되었다. 어딘가에 있을 나의 독자와, 곁에 있다고 느끼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분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눈물이 돌게 하는 겨울에게 작은 마음을 전하며.....
'99년 12월
김인자 시인 / 잠자리
언제부터 저곳에 있었는지 거실 방충망에 붙어있는 잠자리 한 마리 아무리 봐도 안간힘이다 예감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잠자리의 생은 곧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빗소리에 열려던 문을 다시 닫은 건 잠자리가 누구의 간섭 없이 조용히 생을 정리하도록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잠자리는 생生자체가 고苦였음을 깨닫는 중인지도 모른다 날개가 있어 날긴 했지만 혹 날개 때문에 제 명을 스스로 단축하지는 않았는지 이제 눈동자조차 굴리지 않는 걸 보면 후회나 원망도 소용없음을 아는 듯하다 추억하는 시간 짧을수록 좋은 것인지 파르르 날개를 떨다가 곧 적막해졌다 아무리 가벼운 날개를 가졌어도 제 삶을 공중에서 끝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저 마른 육신을 인간의 이중 울타리인 방충망에 걸고 저리 평화롭게 잠든 성자는 처음 본다 누구도 저 가벼운 잠을 보고 소란했던 한 때의 불륜 따위를 상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 그친 저녁 허리 부러진 꽃삽으로 대추나무 아래를 팠다 나는 그렇게 한 생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김인자 시인 / 상어떼와 놀던 어린시절 -아닌 건 아니라 하자 -
-내게 있어 아버지라는 존재는 단지 일용할 양식만을 주는 그런 아버지는 아니었다. 무대에서 잠시 부재중인 아버지께 이 시집을 바치며 -
궁색한 변명이 되겠지만, 이제 나는 무겁고 난해한 것은 싫다. 언제부터인가 사실을 바탕한 이야기 그대로 시가 되는 것이 감동스럽다. 다만 그것을 찾아내는 작업이 어려울 뿐, 이 기록은 한 개인의 역사이고 결코 지울 수 없는 내 삶의 근원인 아버지와 고향 동해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의 일부이다.
혈관에 숨어있는 피톨 하나와 영혼에 깃든 이주 미세한 힘조차도 뺀 시를 쓰고 싶었다. 부러지긴 하되 결코 휘어지지 않으리라 전언한지 열 서너 해가 지난 지금 메타포를 가장한 어설픈 치환이나 비유 혹은 은유 같은 포즈는 물론 논리나 관념도 아닌 그 어떤 장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를 꿈꾸게 되었다. 구체적인 것이 이번 시집에서 이야기로 이 끌어 가는 산문시의 형식을 취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이 원고를 마무리하고 나니 뜻밖의 선물이 주어졌다. 그토록 말재주 없던 내가 나도 모르게 이야기꾼이 되어있었다는 게 그것이다.
나는 무엇이고 누구이며 또한 무엇으로부터 여기까지 왔는가 라는 질문에 미약하지만 답이 되었으면 한다. 시 쓰는 작업은 많은 부분 낡아 불량이 된 정신을 검열 받는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시 쓰는 고달픔이 시인의 몫이라면 시를 즐기며 사는 일 또한 시인의 몫이리라. 내게 있어 시 쓰기는 절박하게 살아내야 할 이유를 찾아가는 아주 작은 대답에 다름 아니었다.
부탁이다. 시를 통해 심오한 철학을 기대한 독자라면 지금 당장 이 책을 덮어주기를 감히 나는 바란다. 아니 그런 독자라면 기꺼이 사양하겠다. 독자는 나 혼자 만이라도 버겁다.
아닌 건 아니라 하자. 지금껏 세상이 내게 학습시켜준 건 그것이었다. 결국, 나는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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