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성 시인 / 행간에 숨다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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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시인 / 행간에 숨다
1 포크레인이 정문을 밀고 들어오던 날 아우는 관악산을 넘으면서, 울었다, 최루 가스 뒤집어쓴 소나무, 밤이 숨기고 있는 것은 울음만이 아니었다 지하철 노조원들 붉은색 머리띠가 소나무에 하나 둘씩 걸릴 때마다 아우는 나무를 흔들었다 어느 地下에서 붉은 물이 흐르는지, 수맥같은 가로수를 따라 우리는 걸었다 죽어라 꽃망울 터트리던 봄꽃들, 생각난다, 이파리마다 붉은색으로 피어나던 그 해 봄의 좁은 골목들,
2 地天으로 피어나던 봄꽃들 속에서 아우는 '체'에 대해서 애기했지만 나는 쳇 베이커의 푸른 섹소폰 속에 숨었다 革命과 音樂 사이의 깊은 강물이 나는 좋았다 제기천은 메말랐지만 끊어진 듯 잇대어 흐르는 愛人의 허밍이 나는 좋았다 불편한 잠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서울역의 부랑자들, 얼마나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물처럼 흐를 수 있을까 복개되지 않는 강물 위를 우리는 걸었다
3 봐요, 형 우리들의 별빛이 떠오는 것을. 청소부가 쓸어내는 전단지 속에서 아우는 꺼지지 않은 가로등을 손가락 끝으로 하나 하나 짚었다 테헤란로 가득 밀려오던 새벽 하늘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 테헤란에서 서울까지 피곤하게 부풀어오르던 봄 기운, 그날 이후로 아무도 우리들의 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박진성 시인 / 공황발작
발작은 지문에서 시작한다 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 흉부로 숨길 수 없는 혈통을 실어 나른다 혈관들이 부풀어오르고 길길이 날뛰는 벌레들의 수런거림, 아버지벌레가 어머니벌레를 잡아먹는다 네 심장을 긁어주마 혈관이 터져서 색색의 꽃들 뿜어내면 피톨들은 꽃씨 타고 뇌세포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정원, 이대로 갇힐 순 없어요 동맥혈관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곧바로 바람의 내부에 갇힌다 그대들의 호흡이 바람을 만들었다 지문에 묻어 있는 흔적을 잘라 내버리고 싶어 뭉툭한 내 손으로 심장 도려내어 숨을 쉬게 하고 싶어 아버지, 어머닌 그만 놓아주시고 내 심장을 밖으로 내던져주세요 정원의 벌레들과 언제 그렇게 친해지셨을까 감자, 수박, 토마토, 옥수수 알갱이... 언제부터 내 심장들을 저렇게 쌓아 놓으셨을까 보세요, 공중으로 떠오르는 나의 몸을, 아 아버지, 아 알프라졸람은 이제 그만
박진성 시인 / 물고기는 울지 않는다
어느 날 내가 부드러운 물의 그물 속 휘저으며 돌아다니다 나의 몸이 卵生하는 부족의 알이었음을 알았을 때 둥근 바위에 몸 뭉개며 큰 물 지기를 바랬다
물 속의 아득함, 물 속의 막막함, 물 속의... 눈물 흐르기 전에 먼저 출렁이는 一波萬波 물결 속에서 출렁거림 없는 물 밖 세상 꿈꾸었을 때 난 문득 울고 싶어졌는데
그러나 날 때부터 우는 방법을 잃어버린 나는 우우, 물속의 울림보다 더 큰 울음이 나의 몸 안에 흐르고 있다는걸 알았다
그때부터 물길과 물길은 행간처럼 깊어지고 울음보 움켜쥔 나는 쉼표처럼 더듬, 더듬, 물 속으로, 없는 길 내며 갔던 것이다
박진성 시인 / 나쁜 피
1 피를 뽑으라뇨 검사를 하시겠다? 엑스레이를 찍으라뇨 흉부에 이상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 모르니 소변을 보자구요? 나는 비등점이란 말입니다 내 안의 것들 타닥타닥 소리내며 몸 비틀고 있단 말입니다 응급실에 한두 번 오나요?
2 응급실에 누워 달을 보네 어떤 검사도 病의 속까지 닿을 수는 없네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선 위에서 어머니 울고 있네 동서울병원 응급실에 누워 어머니 子宮 같은 보름달을 보네 나는 나쁜 피가 터져 나오는 혈관, 자라지 말아야 할 나무 어머니 나무들은 그래서 봄이 오면 비명 소리 내지르는 건가요 물관 흐르는 물은 언제쯤 가지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무들은 예쁜 상처를 갖게 되는 걸까요
3 내 몸에 묻은 어머니 지문들로 소용돌이 치네 보름달은 어지러울 때도 둥글 뿐, 내 몸 하나 간신히 누일 침대에서 어머니랑 나, 오래도록 살았네 밤의 응급실이 나의 고향이었네 보름달 속이었네
박진성 시인 / 나비가 몸으로 들어와
어려운 호흡이 몸으로 들어와, 빗소리만 듣는데도 주사바늘이 꽂혀 간호사 누나, 키스할래? 자꾸 엉덩이만 만지지 말고...... 나비바늘이 필요해요 나비야 나비야 내몸을 찌르고 너는 죽잖아, 내 영혼도 찔러줄 수 있니 죽기 전에 핏방울 매달고 춤추는 나비야 거즈는 너의 무덤, 내가 줄 수 있는 건 피밖에 없구나...... 그런데 어디서 자꾸만 바람 소리가 들려, 어려운 호흡이 몸으로 들어와 주치의는 춘천으로 가고 아버지는 일 나갔지요 비 오는날 나비는 어디서 잠자나, 내 몸안에서 자지, 근육이완제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나비가 팔딱거리기 때문이잖아 나는 피우다 만 꽃이야 뿌리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고 꽃망울 터트리기엔 毒이 너무 많잖아 당신, 기이이인 하아루 지나아아고, 언덕 저편에서 나비 떼 몰고 당신 올 때면 나는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아 아 간호사가 몸 만질 때마다 신음소리, 몸에 주렁주렁 매 달린 나비무덤 간호사 누나, 창녀야? 마음은 딴 데 두고 몸만 만지니? 당신이나 나나 지루한 새벽 지친 바람 줄기처럼.
박진성 시인 / 목숨
1 울 할머니 목 위로 숨이 넘어오던 그해 십일월, 滿水位에 도달한 물길처럼 위태로운 호흡이 몸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할 때, 금강으로 내달리던 나의 열아홉도 목에 숨이 가득 출렁이던 것이었는데 그날 새벽에는 울 할머니 숨결이 잔잔해져서 물고기 몇 마리 지느러미가 보일만큼 맑은 물살이었다 나는 조용히 강변 버드나무를 매만지며 어떤 豫感으로 금강에 뜬 달의 일가족이 무리지어 이사 가는 것을 보았다 물결에 숨결 내맡기고 터지려는 울분 가득 금강의 몸을 자세히 들으려고 눈을 감았다
2 산다는 일이 숨결 곳곳에 구멍을 내어 설움도 가난도 비루함도 숨 쉬게 해줘야 하는 거라지만 어쩐지 숨 쉬는 일이 뻑뻑해서 숨을 닫아버리고 싶을때나, 부족의 제사장처럼 금강에 서곤 하였는데 시집 속에 몰래 묻어둔 울 할머니, 顯비孺人 海州崔氏 神位로 남은,그날 새벽 고운 숨결을 몰래 금강에 부린지도 몇 해가 지났는데 격렬함으로 들이마셨다가 고요로 내뱉는 스물일곱의 내 숨결 속으로, 음복하다 취한 사람처럼 낮달이 제 몸부림을 들이미는 거였다
3 내가 현비유인(顯비孺人) 하면 울 할머니는 천수대비(千手大悲) 江은 스스로 제 목숨을 닫지 않는다
박진성 시인 / 불꽃이었어 병원이었어
그이가 문을 열자 러시아 민요가 고단한 주파로 호수의 몸을 흔든다 음악의 낟알은 호수면에 이르러서 죽는다 서울에서 밤새 떨고...... 불안의 주법을 배우느라 7년을 왔다 호수에서 대전 병원까지 삼백리길,이스끄라 이스끄라 개나리 피었다, 불면의 밤을 채우는 것은 불안이 온몸으로 떨구어 낸 숨결이거나 물결, 결을 다듬느라 새벽은 분주한데 고요와 음악이 뒤섞여 그이의 눈동자는 물맛이다
병원에서 도망 나와 스스로 유배된 물의 몸맛을 본다 여명을 난반사하면서 물길은 새벽의 몸을 그리는데 그이는 왜 자꾸만 내 어깨를 밀까 수면에서 나를 일렁이게 할까 언제 한번 풍경으로 서 본 적 있었던가 병이 스스로의 몸으로 출렁이겠지 불꽃이었어, 불꽃이었어, 봄을 지나며 수백만송이 꽃이 필거야, 병을 다 받아내며 간신히 고요해진 호수 밖에서 나는 숨 헐떡이는 봄나무였어, 봄 전체가 병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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