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지유 시인(서울) / 카타콤베 외 6편

파스칼바이런 2025. 10. 4. 08:00
김지유 시인(서울) / 카타콤베*

김지유 시인(서울) / 카타콤베*

 

 

 가윗날이 심장께 박혀있는 라코스테 상표를 파낸다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솟은 성기를 잘라낸다 할퀴는 곳마다 돋아나는 기억을 썰어내는 소리, 돌아오지 않는 사내의 발목을 자른다 약속의 소매에 거침없이 끼우던 팔짱도 절단한다

 

 바람난 사내의 혀처럼 현란해지는 몸놀림, 신들린 가위질이 방안의 어둠마저 찢어낸다 열린 옷장 앞에 앉아 남김없이 끄집어낸 옷더미를 헤집으며 작두를 타는 손가락, 오래전에 식어버린 사내의 체취를 도려낼수록 살 속 깊이 파고드는 오르가즘의 집요함

 

 토막난 사지들이 차곡차곡 쌓여진 옷무덤에 가만히 얼굴을 파묻은 채 제 손목 위로 현을 켠다 너덜너덜한 옷자락 사이로 툭툭 뜯어지는 봉합사, 피에 섞여 흘러내리는 끈적한 미련의체액들, 사내의 몸을 조이던 가랑이처럼 손가락에 단단히 끼워져 빠지지 않는 가윗날이 입을 앙다물며 마지막 신음을 삼킨다

 

* 로마 고대 기독교인들의 지하묘지

 

 


 

 

김지유 시인(서울) / 달의 문짝

 

 

 하루하루가 벽이야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는 문이야 피를 닦아 낼 수 없는 벽이면 좋겠어 핏줄을 심지 못해 벌이는 살인이 하루도 빠짐없이 자행되는 문, 열쇠는 눈동자 가득 걸려 있지 그래, 엄마가 몸을 파는 동안 심장에는 또 하나의 방이 생겼지 꽃무늬 팬티처럼 축축해진 그 방에 숨어 미치도록 자판만 두드리고 있어 얼굴 없는 아빠를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지 죄목 따윈 상관없어 나이보다 많이 먹여 주는 형량이야 고맙지 이미 감옥에서 한창 썩고 있는 중이거든 쏟아지던 엄마의 매질이 달빛처럼 고여 있는 여기, 거미줄 가득 아빠의 시체가 걸려 있어 때마다 사식을 넣어 주는 엄마 손목 비틀어 불가촉천민의 그림자 울려 볼까 하나뿐인 문이 오늘도 심장에 갇혔어 녹이 슬었어 눈부신 태양 속 흑점처럼 거룩하게 썩어가는 벽이면 좋겠어

 

 


 

 

김지유 시인(서울) / 당신을 집어넣는 시간

 

 

 베란다에 서서 당신을 집어넣는 시간입니다 잃어버린 세라토닌을 되찾기 위해 찔립니다 날카로운 당신의 화살이 구석구석 비집고 들어와 박힐 때까지 너덜너덜 헤집을 때까지 벌립니다 물 없는 전기 포트처럼 달아오른 뇌수일랑 당신의 입김으로 삭힙니다 오전 8시, 세라토닌의 어머니 당신이 까치발 들어 발뒤꿈치를 내주는 시간입니다 우울의 눈곱을 떼고 떨어진 마론 인형의 속눈썹 사이로 질질 눈물이 샐 때까지 껌벅껌벅, 당신의 건망증 덕에 메마른 생활이 자꾸 얼룩집니다 오전 8시, 당신이 막힌 길에서 넘실대는 벽으로 옮겨 다니고 침대에서 일어나 물고기들이 일광욕하는 베란다에서 지하주차장으로 낙하하려는 순간입니다 무감각한 상상에 문어는 없을까요 보풀 인 홍채를 벌리고 세일도 에누리도 없는 당신과의 시간, 오전 8시입니다

 

 


 

 

김지유 시인(서울) / 사리

 

 

돼지에게 목을 내준다

 

 우리 엄마, 삼십 년 전 임신하고 정신없이 먹었다던 국밥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숨도 안 쉬고 비워 내는 국밥 제사상에도 올려 달라는 신태인 역전 순댓국밥에서 나오는 사리 한알 삐걱대는 탁자 위에 올려놓는 동안,

 

 일곱 살 아들이 오물오물 물에 씻은 깍두기를 씹고 있다 잠든 아들 몰래 실에 칭칭 감아 뽑아낸 이 옥상으로 던져 올리며 고수레, 지붕 위에 올려놓았던 아들이 날아간다 돼지가 날아간다

 

 펄펄 끓는 솥단지 안에서 가부좌 틀고 염불 외던 돼지, 이빨 하나

 우리 엄마와 일곱 살 아들이 슬쩍, 바꿔치기한

 몸속의 사리 한 알

 

 돼지에게 내줬던 숨구멍을 찾아온다

 

 


 

 

김지유 시인(서울) / 금버섯

 

 

 금을 찾다 계단을 다단계로 굴렀어요 한강에 빠뜨린 금버섯 좀 건져 주세요 긴 속눈썹으로 강물을 휘휘 저어요 손가락에 걸려 나오는 금줄기 보셨나요 손톱 밑에서 번쩍거리는 금가루 보셨나요 곰팡이 대신 금가루 입힌 중국산 가짜 상황버섯 먹어 보셨나요 새파랗게 이끼 낀 금버섯을 찾아요 손잡고 금을 찾아 나섰다가 발을 헛디딘 사촌 언니 퇴직금도 돌려주세요 거대한 창고 가득 가랑이 번득이던 사내들이 밑 빠진 독을 업고 있던 금두꺼비였나요 몰라요 모르겠어요 한강에 뿌린 게 금가루인지 똥가루인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강 밑 바닥 어디선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금버섯 좀 찾아 주세요 이 한 몸 다 바친 지아비 성기 좀 찾아 주세요

 

 


 

 

김지유 시인(서울) / 실연

 

 

 몸 구석구석 주리를 트는구나, 느릿하게 그러나 상상의 틈도 없이 침대에 못 박힌다 속 터질 듯 채워진 순대처럼 내장에 들어선 뱀들이 꿈틀거리고, 자다가 깨다가 입안 가득 생쌀만 밀어 넣고 맹물만 마셨는데 징그럽게도 불었구나

 

 징그럽구나 몸뚱이야 신발도 챙겨 신지 못하고 어디로 쫓겨 나가니, 까마득해진 사내의 손길에 골절당한 기다림은 폭음의 뱀으로 똬리 틀어 대신 세우려나, 바닥이라고는 딛기를 잊어버린 발바닥으로 도사리며 기어들어 온 구렁이들이 헛배만 부풀리는구나

 

 핏줄이 물어다 준 제 이름 석 자도 잊은 채 어디로 쫓겨 가니, 살모사 새끼들보다 징그러운 저것을 침대 밖으로 어찌 내몰까나, 묵직한 대가리 치켜들고 변기 가득 고이는 생활은 또 어쩔까나

 

 


 

 

김지유 시인(서울) / 암소공포증

 

 

 옆방의 소리가 사라졌다 ,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냄새가 물소처럼 건너온다 서둘러 썩기 시작하는

 암컷의 생식기

 

 벽 하나 사이로 여자의 침대가 놓여 있다 불안이 성욕을 깨우고 벌떡, 일어선 성욕이 벽을 기어오르는 한순간 창밖으로 출렁거리는 여자의 몸뚱어리를 꿰는 억센 심줄을 본 적이 있다 죽여 달라, 애걸복걸하며 창문처럼 열어 주던 엉덩짝 사이 용두질이 양변기 물 내리는 소리로 흘러 나가고 현관을 열고 닫던 버튼음도 살해됐다 차가운 벽에 귀를 박는 밤은 차라리 꽃이다 얌전했던 속살이 꽃무늬 벽지처럼 번지는 시간

 

 푹푹 죽기도 전에 썩는가, 노래야

 달력이 된 음부가 덜컹 벽을 열고

 흘러넘친다

 

 


 

김지유 시인(서울)

1973년 서울에서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同 대학원 졸업. 2006년 《시와반시》를 통해 등단. 시집 『액션페인팅』 『즐거운 랄라』 『유월설』.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