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유 시인 / 잔혹한 식탁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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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시인 / 잔혹한 식탁
고등어는 만만하다 “만원에 세 마리에요” 사지 않을 수 없다
일주일 마다 열리는 아파트 장터 막 물들기 시작한 감나무 잎이 떨어진다 침이 고인다
“또 고등어야?” 두부를 사며 무시한다 만만하긴 두부도 마찬가지다
냉장고에 등 푸른 고등어가 있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줄무늬가 희미해진다 물렁해지면서 비린내도 강해진다
“물렁한 것들” 당신이 내게 말했다
땅 속으로 자라는 무 땅 위로 솟은 무의 밑둥이 푸른 것은 날이 따뜻했다는 것
당신이 결재를 하는 동안 나는 빨래를 널고 와이셔츠를 다리고 무를 넣고 고등어를 졸인다
발톱이 양말을 뚫고 나온다 등에 푸른 줄무늬가 선명해진다
당신은 나의 등뼈를 드러내고 하얀 살만 발라먹는다
고은유 시인 / 무궁무진한
물이 가득 담긴 풍선이 소파에 놓여있다 어울리게 소파를 구름이라 하자
풍선이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리면 구름 아래로 주루룩 흘러내릴 텐데 땅에 떨어지면 터질 텐데
물 대신 공기가 가득한 풍선이라 하면 그녀가 아니지
물이 가득 담긴 풍선이 그녀다 구름을 다시 소파라 하자
벌거벗은 그녀가 소파에 누워 있다*
중력에 굴복하는 모든 살이 소파 밖으로 팽창하며 늘어져 있다
방심한 듯 소파에 전신을 걸쳐 놓았지만 손끝은 의자 등받이 위에 살짝 굽힌 채 힘을 주고 있다 마리오네트 인형을 조정하는 실처럼 손끝에 그녀가 매달려 있다
소파는 그녀의 튼튼한 다리의 확장이다 그녀의 다리가 소파라 해도 무방하다 그럼 그녀를 소파라 하자
낡고 오래된 소파가 당당하게 벽 앞에 잠들어 있다
늦은 밤 지친 몸을 누이고 소파가 되었던 그녀가 아침이면 손끝에 힘을 풀고 일어난다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입고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칠하고
이 지상에 머무르려면 가벼워서는 안돼
그녀는 가슴과 배를 출렁이며 쿵쿵 땅을 딛고서 걸어 나간다
*Lucian Freud, 「benefit supervisor sleeping」
-웹진 『시인광장』 2025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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