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길택 시인 / 거울 앞에 서서 외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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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택 시인 / 거울 앞에 서서
아버지 하시는 일을 외가 마을 아저씨가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했다
기차 안에서 앞 자리의 아저씨가 물어왔을 때도 나는 낯만 붉히었다
바보 같으니라구 바보 같으니라구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야 나는 큰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십니다 일한 만큼 돈을 타고 남 속이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광부이십니다
임길택 시인 / 거짓말
어머니가 나에게 감나무 집 아줌마한테 가서 저번에 빌려 간 돈 좀 달래 받아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벌써 준다 해 놓고 내일 내일 미룬다며
나는 싫다고 했다. 무얼 갖다 주라는 심부름이라면 열 번이라도 가겠는데 나는 받아 오라는 심부름은 왠지 가기가 싫었다.
뭉그적대는 나에게 어서 안 갔다 오느냐고 어머니가 성을 냈다.
억지로 밖으로 나와 감나무 집으로 갔다.
아주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래도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아주머니가 볼까 봐 문 밖에서 돌아서서 서성이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주머니가 안계시더라고 거짓말을 해댔다.
임길택 시인 / 아버지1
말 한마디 없이 불쑥 들어오시어 그냥 앉아만 계시는 아버지보다는 오늘처럼 술에 취에 흥겨워하시는 아버지가 더 좋습니다
어머니가 뭐라시며 눈 흘겨도 못 들은 척 흘러간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흥얼 따라 하십니다
옆방 이불 속 잠든 동생 옆에 누워 나도 아버지의 노래를 따라 불러봅니다
무언가 슬픈 생각이 들고 아버지가 불쌍하게도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런 날은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임길택 시인 / 완행버스
아버지가 손을 들어도 내가 손을 들어도 가던 길 스스로 멈추어 선다.
언덕 길 힘들게 오르다가도 손 드는 우리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우리 마을 지붕들처럼. 흙먼지 뒤집어쓰고 다니지마는 이다음에 나도 그런 완행 버스 같은 사람이 되고만 싶다. 길 가기 힘든 이들 모두 태우고 언덕길 함께 오르고만 싶다.
임길택 시인 / 아버지 사진
아버지 사진만으로는 우리 집이 채워지질 않아요
병으로 누워계실 때만 해도 아버지가 우리 집을 꽉 채우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러나 지금 아버지 사진만으로는 우리 집이 채워지질 않아요
다른 친구들은 모를 커다란 구멍이 우리 집에 있어요 식구들 가슴마다 있어요
임길택 시인 /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빗물에 파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은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임길택 시인 / 영미의 손
서리 온 아침 당번을 하던 영미
걸레를 빠느라 붉어진 손이 그토록 조그마한 줄을 나는 미처 몰랐다
임길택 시인 / 아이들은 언제 하늘을 보나
함께 쓰레기 춥자 하면 앞엣아이들 재수 없다며 투덜대고 뒷아이들 눈치 보며 도망을 가고 언제 아이들 이렇게 변해 버렸나. 이 아이들 언제 하늘 한 번 쳐다보나. 언제 먼 데 산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겠나. 먹고 버리고 서너 군데씩 학원에 가고 무엇엔가 늘 쫓기면서 이 아이들 언제 하늘 한 번 쳐다보나. 미루나무 끝에 부는 바람 언제 보고 우리 잠든 사이 하늘 높이 떠 세상을 지키고 있는 별들 가만가만 속삭이는 소리 언제 귀 기울여 들어 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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