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빈 시인 / 벌과 생각 사이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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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빈 시인 / 벌과 생각 사이
벌초하다 벌에 쏘여죽었단 소문은 화끈거리며 부풀어 오르길 좋아한다. 예초기 날개가 돌자 봉분에 푸른 머리카락들이 잘려 나간다. 망령이란 말 주책이란 말 이 푸른 장발 앞에선 당연한 어휘인 줄 몰랐었다. 그저 긴 풀들을 키워놓고 오솔길 하나에 묶여있는 무덤들.
벌집 쑤셨단 말 생각하는 사이 땅벌들 날아오른다. 우주 전쟁 한 장면 같다, 말벌 통 건드리면 살아서도 급하고 윙윙거리던 사람들, 별빛 시퍼런 말벌 침을 생각는 사이 톡, 쏘는 심술 땅벌 침 눈물에 이렇게 많은 땅별빛이 섞여있었다니, 노랑얼룩무늬말벌살갗은 참 예쁘기도 하다 생각는 사이 노랑얼룩무늬 땅벌독이 퍼져 부풀어 오른다.
윙윙거리는 땅벌날개와 붕붕거리는 말벌날개들의 공중전 아무리 몸을 숨겨도 그 작고 뾰족한 침 맞을 곳은 곳곳 비어있다. 부어오르는 속 살결 곳곳 살아있는 숲에도 불쑥 부푸는 붉은무덤이 있다.
화끈거리는 생각을 하는 사이사이 그 작은 날개만 생각해도 굵은 두드러기 툭툭 불거지는 오후 늦가을 독에 쏘여 붉게 부푼 귀뺨과 눈두덩. 덜미 독 빨수록 화끈거리고 따갑다.
붉은 산자락 잠자리날개 돌아가는 소리들 시끄럽다. 땅벌 침과 초침사이 말벌 날개와 예초기 날개사이 오솔길마다 풀냄새 앵앵거리며 발목으로 기어오른다.
이서빈 시인 / 발버둥
열린 문은 반드시 닫힌다. 노인의 발치나 손끝에서 나오는 주름진 말들을 모아 지혜서를 만드는 초록의 문밖. 지주의 말속에는 짐승의 나이로 죽음이 자란다. 누전인지 정전인지 검은빛에 물든 가난. 죽음과 잠은 같은 종류의 무아지경 같은 것. 매일 이승과저승의 집 한 채를 짓느라 발버둥 친다. 빛과 그늘이 씨줄날줄로 짜여 진 촘촘한 봄날은 하루 종일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바람을 타고 있다. 종달새 노래는 풍년 소쩍새 울음은 흉년. 허기진 땀구멍엔 소금기만 서걱거린다. 달빛이 키우는 소리와 별빛이 돌보는 소리가 같은 봄밤 아래서 자란다. 올챙이 울음과 어린 뱀 웃음이 회전문처럼 꼬리를 물고 돌아간다. 회전문에서 발버둥이 튕겨져 나온다.
발버둥은 발을 먹고 산다. 곰발바닥을 먹어 성이 차지 않으면 닭발을 먹고 뼈있는 닭발은 뼈있는 말 하는 사람의 몫이고 뼈 없는 닭발은 말랑말랑한 말을 하는 사람의 몫이다. 발가락으로 가장 낮은 수량의 셈을 배운 사람들은 다 지혜롭다. 죽음이 가까워 올수록 발버둥엔 탄력이 생긴다. 귀가 큰 발버둥소리, 바람 섶엔 빛과 그늘이 자리를 바꾸며 나뭇잎들이 발버둥치고 있다. 얼룩진 소리를 뱉어 내면서.
이서빈 시인 / 어쩌지 못하는 한 때
열리지 않는 무게는 누가 저울에 오려주나
귀퉁이 찌그러진 금고 하나를 앞에 두고 열지도 리어카에 싣지도 못하는 사람 결국, 부서져야 열릴 몇 개의 숫자가 섞인 문짝은 처음부터 내부가 없었다는 듯 요지부동이다.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가도 떠오르지 않는 묘수는 함부로 섞어놓은 사내의 번호다.
오늘 하루 저 무게만 얻을 수 있다면 빈 박스와 공병들의 무게쯤은 다 내려놓아도 좋다고 그림자에게 중얼거리는 혼잣말이 저문다. 빈 것과 열려있는 것들만 모아온 극빈 한 번도 깊고 깊은 금고를 가져보지 못했음으로 차지하고도 싣지 못하는 사내 그렇지만 저 견고한 금고속의 무게는 누가 함께 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름은 너무도 가볍게 흘러가고 새들은 손 없이도 손쉽게 날 개를 접고 비행기는 하늘을 갈아엎으며 날아가고 어김없이 해는 지고
열지도 싣지도 못하는 무게 옆에서 돌덩이보다 무거워진 사내가 하염없이 금고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있는 바르르 떨리는 저울의 추
이서빈 시인 / 복사꽃
붉었던 꽃 지는 소리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지난 아픔을 씹는 한 숨 소리 꽃그늘 위에 겹겹 쌓인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가슴에 신열로 불을 켜는 밤 낯익은 영혼 하나 복사꽃 울음을 운다
이서빈 시인 / 달팽일 들여다보고있으면
이렇게 느린 소실점이 있을까.
불도 켜지않고 문도 잠그지않은 달팽이껍질을 집이라 부르면 실례지. 들여다보면 뼈는 둥글게 말려있고 살은 끈적끈적하다.
어떻게 살과 뼈를 따로 갖고있는 삶이 있을까.
뼈안에 살을 집어넣고 일일 연속극을 보는지 양쪽 안테너를 뽑아놓고 끌끌 혀차는 소리를 내고있다. 1인용 집이라 부르려다, 1회용 집이라 바꿔 부른다. 빈달팽이껍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휑한 육탈이다.
수억만 년 전부터 언제나 같은 보폭으로 기어가며 문명의 한 자락에 제 이름을 새기고 있다.
우렁우렁 풀벌레울음 밟고 천둥번개 쳐도 느릿느릿 폭염 지나 꾸벅꾸벅 졸고있는 달팽이 말랑말랑한 구름입술 보다 보드라운 살갗 달팽이를 보면 하루가 눅눅해진다. 습기와 폭염을 잘 섞어 짠 옷 한 벌과 베개를 마련해 주고싶다.
겨울에 얼지도 바람에 말리지도 못하는 젖거나 마른소리 천궁으로 송신하고 있다.
생전처음 노모들은 집을 두고 요양원으로 갔다.
이서빈 시인 / 소금사막길
낙타들, 지루한 행렬로 소금사막 건넌다. 낙타몸엔 경적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무릎 꿇어 소릴 내거나 기다릴 뿐 스스로 창을 닫은 긴눈썹과 발굽닿는 자리에 소금 부서지는 소리가 짜다. 푸른바람 걸린 나뭇가지위를 지나다보면 흰소금 쌓인 지점을 지나가게 된다. 어느새 끼어든 제설차가 염화칼슘 뿌려대며 지나간다. 흰사막인 듯 눈천지가 돼버린 길 가끔 낙타울음 닮은 경적이 끼어들어 미끄러운 길 닭들이 득실거리는 트럭 저만치 앞서가고 파란술병 든 빨간치마와 야자나무그늘이 느리게 지나가는 길 길들은 순간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 옛날 소금길은 좁아터져 정체되었지만 오늘 이길은 넓어서 더 엉킨다. 갓길표지도 없이 서로 서로 위험 속도 내며 지나갈 뿐이다. 터널을 지나 저물어가는 산 돌아가 저녁대문을 향해가는 후미등 붉은행렬들이 흐른다. 모래언덕은 속도를 잠그고 바람을 풀어놓는다. 처음 보는 겨울그림자 한 폭이 길 한복판에 걸려있다. 긴장한 낙타의 귀들이 허공에 펄펄 살아서 걸려있다. 다쉬테캐비르* 사막, 그 어디쯤 지나가고있는 걸까. 지구공 소금사막길 혹속에 남은 연료양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 이란 최대의 사막
이서빈 시인 / 魂혼을 흔드는 댓잎
방울소리는 소리만 날아다닌다. 무거운 소리, 모시적삼 훨훨 춤추며 하얀영혼을 위로하고 아기魂 살결위로 포동포동 흘러내리는 달빛울음….
이승 뒤뜰 대밭서 차고푸른 휘파람소리 난다. 작두날 번뜩이며 시퍼런 메아리로 떠도는 대나무들의 몸짓 암호를 전송하는 청청한 마디들 철철 우는 아기울음소리의 댓잎들이다
먼 산사 처마끝에 매달린 새끼목어 울음소리 맑게 달래지고 있다. 여의주 하나 손에 쥔 채 죽음 놀고 있는 아기는 저승으로 엄마가 오기를 기다린다 나부끼는 춤사위에 업장 풀어내고 모시적삼 한복이 여승보다 슬피 운다.
바람에 빈 들녘이 흔들린다. 달빛이 쏟아지는 처연한 몸짓사이 神아기야, 넌 푸른안개 몸을 가린 서천꽃밭이다. ‘살주는 살살꽃 뼈준 뼈살꽃 피준 피살꽃 영혼 되살아나는 도환생꽃’* 이꽃밭은 저승이승 연결해 준다는 기별인데 생불꽃 불망꽃 울음꽃 웃음꽃 …자정꽃** 이저승 오가는 섣달그믐 황금마차를 탈 걸 그랬다
* 전설 속의 꽃 ** 전설 속에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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