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 시인 / 순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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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시인 / 순환선
종착역이 없다 끊임없이 달리는 내선순환열차 익숙한 역들이 스쳐가고 가본 길과 아는 이름들 예의처럼 무표정을 얼굴에 쓰고 손잡이를 꽉 잡으면 제법 안전한 느낌 광고판에는 화려한 약속이 있고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그 약속은 다음 역으로 미뤄진다 정해진 정거장에서만 문은 열린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오른쪽입니다. 가만히 서 있는 이들 앞에 문이 닫힌다 곧 열차가 출발합니다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제자리로 되돌아올 것이다 사실 꿈은 궤도 밖에 있다 오랫동안 침묵과 타협해왔지만 아직 머금고 있는 물기 어린 말이 있어서 내뱉기 알맞은 때를 고르고 있다 몸속에 살아있는 걸 품으면 속이 울렁거리지 허락되지 않은 데서 내리면 어디로든 마음대로 출발할 수 있다 출구는 바깥을 향해 있다 이 길고 긴 원이 끊어지면 -웹진 『시인광장』 2025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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