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정대구 시인 / 천심을 대행하는 동심 외 10편

파스칼바이런 2025. 10. 26. 08:00
정대구 시인 / 천심을 대행하는 동심

정대구 시인 / 천심을 대행하는 동심

 

 

봄 가뭄이 너무 심합니다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고

텃밭에 먼지가 날립니다

 

"비비 비 좀 내려주세요 하나님"

내가 기도하는 소리를 무심결에

종이배 접고 종이비행기 날리던

나의 증손자 도윤이가 들었는지

 

종이를 잘게 찢어 땅바닥에 훌훌 흩뿌리며

"할아부지 비 와요 비님이 오셔요" 그러네,

 

 


 

 

정대구 시인 / 시집

 

 

전화를 받았다 자기시집을 보낼 테니

 

만원을 송금하라고 좋은 데 쓸 거라고

 

시집이 하 안 팔리니 그럴 수 있겠다

 

좋은 데 쓸 돈이라는데 그래 좋다 했다

 

 


 

 

정대구 시인 / 빛이 부서지는 밤

 

 

유리창 방충망에 들이친 빗방울 매달려

 

새카만 바람결에 반짝반짝 흔들리는 빛

 

이슬방울 같은 맑은 보안등 불빛 부서져

 

자글자글 잔 변방 별빛처럼 불안한 한밤

 

 


 

 

정대구 시인 / 5월 5일

 

 

눈이 싱그롭고 환하다

 

코가 싱그롭고 환하다

 

맘이 싱그롭고 환하다

 

싱그롭다 연두색 새싹

 

 


 

 

정대구 시인 / 키보드 앞에서

 

 

무엇인지 쏟아낼 게 많은 것 같은 생각에

벌떡 일어나 눈을 부비고 보니 새벽 03시

컴퓨터를 부팅하고 키보드 앞에 앉아본다

05시까지 생각들 다 어디 갔나? 종적묘연

 

 


 

 

정대구 시인 / 비몽사몽

 

 

누군가에게서 약을 받았다 꿈이다

아하 그렇다 오늘 약 타는 날인데

날짜를 잊을까봐 미리 알려주려는

어떤 예언가인가 꿈, 잠재의식인가

 

 


 

 

정대구 시인 / 화성읍내가 주는 반응

 

 

방금 선생님 메일을 보고 방방 뛰었어요

좋은 아침 기분이 상승되는 소식이네요

읍내라는 화성인이라는 단어에 반했어요

어쩜 무슨 시험에 합격한 느낌을 주네요

 

*강희산 시인이 보내온 메일 내용을 운문화함

 

 


 

 

정대구 시인 / 물각유주

 

 

아내가 두릅 순 손질하기 귀찮다 내다버려라 해

한 시간도 넘게 어렵게 딴 두릅 순 차마 아까워

그럼 내가 하지, 남자가 쪼잔하게 뭐 하는 짓거리

이를 어쩌나, 오 다행히 지향이 다듬어 먹겠다네

 

 


 

 

정대구 시인 / 투표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를 포기한다면

 

제일 나쁜 놈이 다 해먹는다” 함옹의 말

 

아내에겐 안 통해 시끄럽다 그만 어허,

 

끝내 투표를 거부하고 낮잠만 쿨쿨 쿨

 

*고 함석헌 옹의 어록

 

 


 

 

정대구 시인 / 캄캄한 한밤에 홀로 깨어 앉아 듣는 소리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속에 들리는 소리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 위이이잉 위이이잉

 

나무들이 물 길어 올리는 소리 쭈욱쭈욱쭉

 

젊은 엄마 뱃속에서 아기 노는 소리 쿵쾅쿵

 

 


 

 

정대구 시인 / 한내서왕寒來暑往 하는 기러기에 대한 궁금증

 

 

기러기 고향은 남쪽인가 북쪽인가

 

찬 겨울에 왔다가 봄 되면 돌아가

 

철새들의 이동 피한인가 피서인가

 

집은 있나 없나 잠은 어디서 자나

 

 


 

정대구(鄭大九) 시인

1936년 경기도 화성 출생. 숭실대학 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문학박사. 1972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당선. 시집 『나의 친구 우철동씨』 『겨울 기도』 『무지리 사람들』 『우리들의 배게』 『두 귀에 바퀴를 달고』 『수색쪽 하늘』 『남촌에 전화를 걸며』 『쌀을 씻으며』 등. 수필집 『녹색 평화』  논문집 『김삿갓 연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