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시인(청주) / 호스를 잡아당기는 사람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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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시인(청주) / 호스를 잡아당기는 사람
시제는 하나다 호스를 잡아당기는 사람 나는 밟았다 잡아당기기 전에 나는 끌려갔다 미끄러지기 전에
디자인은 하나다 호스를 잡아당기는 사람 왼쪽에 분수가 있다 오른쪽에서 뿜는다 무림을 달린다 단 한 가지 모든 것
영원은 하나다 호스를 잡아당기는 사람 미간 쪽으로 조금 기체 쪽으로 반쯤 잠겨서 나머지는 우는 얼굴
나는 건넌다 물이 튄다 정체가 뜨겁다 벼락을 잡아끄는 자 멀어지는 아스팔트 푸른 하늘이 물에 닿은 푸른 나무를 덮친다 호스를 잡아당기는 사람
김성호 시인(청주) / 검은 액체
눈을 뜰 수 없다 지평선은 나와 있지 않은 평정이다 행을 나눈다 따갑다 반복되는 리듬의 구간이다 웃기 위한 웃음을 화분 속에서 나는 본다 눈을 뜰 수 없다 검은 액체가 어둠을 만든다 검은 액체가 나는 지울 수 없는 구간이고 검은 액체가 따라오고 웃음을 등이 화려하고 어둠과 분간되지 않는 검은 액체 화분을 들고 이동한다 울리는 미간 눈을 꾹 누른다 복사기 두 대 검은 액체 평행을 눈동자 속에서 등줄기가 엇갈려 서 있다. 지평선은 와 있지 않은 평정이다
김성호 시인(청주) / 붕어빵 아저씨
붕어를 잡으려면 강으로 갈 일이지 세파에 흔들려 가며 건널목 사람들 오가는 곳 이 엄동에 무엇을 낚으러 나왔나
내가 당장 실직된다면 풀죽은 모습 얼마나 불쌍해 보일까 저토록 자랑스레 붕어빵 굽는 아저씨 상처나 후회의 그림자 한 점 보이지 않고 바닷가 건널목 지키고 서서 달콤한 밀가루 반죽, 치약 짜듯 철판에 넣어 통닭 굽듯 세상을 돌리네
진종일 낚시질을 하면 혹 몇 마리 잡을지도 몰라 속으로 생각해 보지만 통통 맛나는 살이 어느새 부풀어올라 잘 구워진 봉지 속에서 살아나네 호호 다순 입김 불어대니 파닥파닥 종이 봉투 속에서 살아나네 단팥과 꿀, 설탕 맛에 곤핍한 일상이 사라지네
새 직장에 출근하면 나도 저렇게 풋풋하게 자신감을 피워 올리며 철커덕 철커덕 붕어를 구어낼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눈발이 날리네 봉지에서 유년의 김서리가 모람모람 피어나네 내 눈이 붕어눈처럼 커지네
김성호 시인(청주) / 잔을 높이
도통 시작하지 못하는 말을 찾아서 바뀌는 그늘 다그치지 못하는 상상 말이 없다 늘 말이 없었다 빛이 길어지고 경사가 삐끗대며 울리고 붉게 스미고 홀로 유연한 각들의 긁히는 소리 나는 앉았다 바닥에 앉지 않고 바위에 앉지 않고 나는 앉았다 글자가 씌어진다 뒤바뀌는 파도를 연출하다 구름이 있다면 바람 부는 습지를 가두고 기웃거릴 알싸한 구름 회오리치는 욕조가 있다면 느끼는 살결의 완급에 나는 방을 나가지 않았다 나는 고함을 치지 않았다 나는 눈을 뗄 수 없는데 책상과 간들간들 입자의 분분 나는 잔을 높이 드는데 배치는 어른거리고 낯선 자의 추궁처럼 침묵을 입히다 가느다란 빛에 찬사를 더하다 가벼운 가벼운 여기다 늘 여기였다 너무 급격한 가운데 고백이 더딘 막다른 여기였다 방금 전의 얘기가 곧 말이 없는 놀란 상태가 된다 어스름은 놀라워라 명령은 놀라워라 캐리커처는 놀라워라 짖어라 잔을 들고 세탁기가 삐그덕대며 돌아가는 찬탄의 강자 그림자가 움직였다 나는 일어섰다 이것으로 전율을 만들 생각은 없다 책상과 어스름의 흰 줄기가 만난 시끄러운 소리 이것 말고는 볼 것이 없다 빨래가 색을 찾아 섞인다 상상을 가져간다 잔을 높이 들고
김성호 시인(청주) / 혹은 바람
쉼보르스카-하고 불었다. 시원한 어감이다.
나 좀 다녀올게. 이 말의 주인은 돌아오지 않자 돌아오지 않는 말이 되었다. 나 다녀올게. 바람이 불었어. 시간이 다 되었어. 영원한 나는 왜 아직 돌아오지 않나. 아무 느낌 없이 손끝에 닿는 어둠을 중얼거리나. 미간의 휘어짐. 혹은 바람. 나무가 되어 서 있는 말이 나무를 생각하다 텅 비어 버렸다 해도 바람이 불었다. 멀면 아득히 닿을수록 먼 이곳에 숨이 눕는다. 늘 반듯이 누워. 잠이 자기 시작한다. 오후의 일은 오후에, 오후의 실감은 아마 그러한 오후에. 돌아왔다면 너무 더디게 돌아오는 중이어서 더 이상 그 끝을 알지 못하겠지. 고통을 표현하는데 전신이 밝아지는 건 왜일까. 아침에 눈을 떴다. 점심에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었다. 새벽이 날을 만들었다. 많아지는 나무들에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하려는 시는 늘 그랬듯 쓰지 못한 시. 바람이 나를 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통과한 목소리마저 실어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널 부르고 네가 나타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넌 분 거야, 너는 바람처럼, 시원한 어감처럼 그냥 여기에 온 거야. 돌아온 적 없이. 나는 이만 줄일게. 인사가 시적일 때가 있다. 어제는 바람이 몹시 불었어. 저녁이 다 되었어.
쉼보르스카-하고 불었다. 첫걸음을 떼며, 바람이 부는 대로. 혹은 제 생각대로.
김성호 시인(청주) / 침묵이 오면
열면 그게 있다 서면 조용하다 보면 드러내 보인다 안 보인다 믿음까지 간다 의지를 말한다 오직 괴롭지 못하다 앉으면 투명해지고 언제나 느낌은 살라 한다 살라 한다 너무 뚜렷해서 금방 창조를 지난다 떠오름이라면 목숨이 온다 빛이라면 가까이 있다 생각이라면 완전히 뚫린다 죽고 없다 서늘함을 눈앞에 둔 나의 마중나간 모습으로 머무르면 늘 단순하다 타오르는 것이다 찾는다 비틀거려간다 현재를 떠나 안 보인다 보인다 식어버려서 가능함을 전율을 선율이라면 전신을 힘이라면 허무는 일이다 가볍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표현하고 나는 쓴다 표현에 표현을 하고 언제나 더 쓰고 알게 된다 그대로 멀찍이 서 있다 나는 가장 끝이다 시작이 아니다
김성호 시인(청주) / 살아 본 몸에 가면 된다
오리무중의 노란색 바탕 위에서 크기가 점점 크기를 형성하고 있는 글자체. 궁리하는 빛이 검음에 모였고 그 곡선은 휘어짐이라 하기엔 너무 안타까운 면이 있다. 창밖 풍경은 풍경 속으로 잠입하지 못하고 풍경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저런 모양으로 내 앞에 우선은 와 있다. 있는 것이다. 비치는 것이 훤히 드러난다. 그리고 가운데 뾰족한 것이 있어 흩어진 가지들이 처량하고 넘실대며 나무라는 단어를 나는 잊는다. 아깝다 말하기엔 아깝고 모자라다 말하기엔 너무 분명하다. 직전. 글자체는 정성 들여 씌었으며 불꽃. 불꽃은 소리를 내는데 가장 화려한 것이 어느새 화려한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일촉즉발의 선험성을 지닌다. 발짓이 나를 끌어당기기에 나는 끄는 발을 오므렸다. 시공에 관해 한 마디. 모양과 음성에 관한 사담. 이런 고민은 그러나 적절치 못하다. 바람이 불고 바람은 왜 부는 것이냐, 물었지만 바람은 불고 동그라미는 왜 나를 간단히 하는 것이냐, 물었지만 바람처럼 가득했고 등 뒤에 그가 서 있다면 나는 이 모습을 보여주리라. 나의 모습을 가렸던 손바닥을 펴리라. 고요해지리라.
불꽃. 여자와 남자를 가르는 위치에 그런 음성이 있었다. 빛깔들의 정체가 궁금하거들랑 안고 와 쏟아지는 물방울을 삼키고 젖은 몸을 보고 가장 날랜 손가락의 뜨거움을 맛보리라. 그리고 그것은 빛깔들의 정체를 묻게 되리라. 한 글자가 씌었고 두 글자가 씌어서 오랜 우물을 들여다보게 한다. 우물, 가진 게 없는 말이다. 휘어지면서 빨개 지는 곡선에 의미를 부여하거들랑 그가 서 있는 공간이 그의 공간이라고 처단할 아무런 선택이 없다. 나는 나를 주저하는데 이르렀다. 어떤 어우러짐이 있을까. 고요했다. 여백은 손바닥을 펴고 불을 쬔다. 더 이상 불안한 것이 닿은 믿음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상승의 크기. 오리무중의 마치 자신을 한껏 오므리다가도 한껏 펼쳐놓으려는 듯한 처절한 동요 속에서 동물들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것들이었으나 상승의 크기, 나는 다시 창문 속에서 불친절한 차가움이라고 불친절하게 쓴다.
해와 늪이 있었다. 기대어 오르는 그림자, 설 수 없는 문이 있었다. 사람들이 촘촘히 지나갔고 책상이 있었다. 냄새는 지혜롭다,라는 문장을 바라보면서 당연히 불꽃이 만들어 내는 그 전체에 대해 생각했으나 혼자 타오르는 불꽃은 허공 속으로, 무덤이 없는 자들의 비밀 속으로, 그러나 다시 휘감아 오르는 티끌이기에, 동그라미를 확 낚아 채가는 바람 속으로, 그러니까 불꽃이 되어 책상 앞에 앉아있다는 투 였다. 그랬다. 자비로운 흰 줄기들의 바탕의 검은 줄기들을 섞을 수 있다면 그 내용 없는 부력은 나를 지켜줄 것이다. 나는 열망하고 또 열망한다. 사람은 획득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사람은 살 수 있다. 저기 바람이 크다. 저기 불꽃이 고요하다. 나에게 다가오는 그림자. 선명한 속삭임이라 부르는 정성들인 몸짓. 거기서 태초의 움직임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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