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상숙 시인 / 지느러미를 단 구름 외 6편

파스칼바이런 2025. 10. 30. 08:00
김상숙 시인 / 지느러미를 단 구름

김상숙 시인 / 지느러미를 단 구름

 

 

 생선뼈가 목살에 박혔다 순간 뼈에 둘러쌓인다 살살 혀끝으로 어르다 불끈 물을 퍼 붓는다 누군가 찌르면 누군가 뒤늦게 말려든다 스며들지도 뽑히지도 않는 상처가 부풀어 오른다

 달이 몸을 바꾸는 동안 파도가 날개를 펼쳐 절벽으로 치닫는다 걸림돌 상대는 근접할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 실연의 기울기도 아픔의 크기도 그럴 것이 방심했던 사랑이 저항하듯 따끔따끔 조여 온다

 

 의사는 이미 오래전에 저기 저 해안선을 따라 풀등을 넘어갔다며 물에 젖은 처방전을 내 보인다 지나간 사랑에 연연하지 말고 가끔은 모른 척 건너뛰어 보라고 묻어두었던 자신의 상처까지 꺼내 보이며 그곳에 한참을 붙들려 있다 흐릿한 하늘 검은 지느러미를 단 구름들 떼로 날아간다

 

-시와사람 / 2022년 겨울호

 

 


 

 

김상숙 시인 / 강

 

 

거대한 짐승이다

묵직한 몸을 들어 올리며 기어가는

바람의 은신처다

깡마른 들판에 옷자락 찢기고 손등을 할퀸다

방향을 잃고 머리를 처박는다

은빛 비늘에 두껍고 단단한 가죽을 두르고

거만한 짐승 한 마리

들판을 가로질러 간다

꼬리인지 머리인지 만져본 적 없지만

아무도 저 짐승의 길을 막지 못한다

수억만 평의 대지를

일필휘지(一筆揮之)하고 있는

 

하늘 위, 날개 달린 짐승도

거대한무게를 감당 못할 때

빛의 이마를 가르고

빗살무늬 가죽을 두르고 내려온다

 

 


 

 

김상숙 시인 / 사구砂丘를 읽다

 

 

삶이 시들해져 절벽 끝에 섰다면 이곳에 와서 온몸을 던져도 좋으리

파랑이 밀어올린 모래를 두근두근 감싸 안고 견디는 것을

달아나던 걸음 돌려 태풍에 맞서 무릎 안쪽이 다 까져있는 것을

청천벽력, 하늘의 무게를 한껏 받아 안고 뒹굴고 있는

저 중력을 보라! 포크레인 발톱 따라

갯메꽃 해당화 통보리사초 갯그렁 해방풍 순비기꽃 소리쟁이 어질어질

남미에서 떠밀려온 달맞이꽃까지 가뭄에도 젖가슴 마를 날 없다

서두르지 말고 주홍거미 개미귀신 물장군 금개구리 맹꽁이 큰주홍부전나비 문신한

어미의 팔에 안겨 보라 끊임없이 모래를 주고받아 건재한,

집 없어 머리 둘 곳 없다면 이곳으로 마실 한 번 와도 좋으리

넘실거리는 모래물결이 가난한 순례객들의 드넓은 행간이 되어 삶을 달굴 것이다

쉽게 삼키고 뱉는 세상이라지만 진력나지 않는 예도 있다

깊고 먼 심해에 심지를 두고 있어 총기聰氣 가득한 해안은 건기가 없다

 

 


 

 

김상숙 시인 / 강아지풀

 

 

강둑에서

꼬리를 흔들며 짖어대다가

부르면 달려오는

양선한 털복숭이가 있다.

마른 풀섶 찾아드는

행려자들에게

한 뼘 땅을 선뜻 내어주는

강마른 등짝의 해비타트 바람을 구부려

토담집을 짓고 있다

엎드릴수록 커지는

홈리스의 열혈 후원자

누가 그를 풀이라고 부르느냐

감히 망치소리를 내느냐

흙만 밟고 조용히 지나간다

늦가을 들판, 풀내가 깊다

 

 


 

 

김상숙 시인 / 내 머리를 밟아라

 

 

 아들의 입영을 두고 세상이 자신과 단절하려 한다는 느낌은 시인의 자아가 얼마나 자신에게서 멀어져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 준다.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에 있어서 자아는 뜬 구름이고, 바람일진대 이 시인의 자아는 얼마나 작고 눈물겨운 것인가. 이와는 달리 자아는 타인과의 불화에서도 낯설음을 경험한다.

 

 두개골이 금이 가기 시작한다 14층과 15층 사이에 끼어 있는 내 중추머신 두 번 말하면 원수질까 꼼짝없이 짓밟히고 있는데 새벽부터 지금까지 작은 길 큰 길 옆길 뒷길 중앙로 좌회전, 다시 우회전 시장통 등 터진 새우전 뒷골목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길을 나서면 횡단보도에도

 밟히고 치는 사람들

 길 밖에서 뛰고 있다

 

 밟아라 뛰어라 머리에서 뇌수가 몽땅 흘러나오면 두통쯤이야 14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겠지

 잘 밟히려고 수건으로 머리를 몇 겹 더 싸매고 있다

 

 


 

 

김상숙 시인 / 구멍가게

 

 

강원도 홍천 지나고 내면 지나

허름한 산골 가게

언제 열고 닫는지

깨진 창문에 비뚤비뚤

장난치듯 써있는 이름

구.멍.가.게

구멍 속은 궁금하다

구멍들은 오래된 온기를 품고 있다

바람이 바람을 빠져나오느라 입술 부르틀 때

소문이 가랑이 사이를 물고 늘어질 때

혼자된 여자가 조그만 구멍을 열며 닫으며

허리춤을 팔았다고는 하나

낙엽이 보았다고는 하나

한 번도 구멍 밖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떠도는 것이기는 하나

낭설이 구멍을 꽉 채운다

빗줄기에 젖는다

 

 


 

 

김상숙 시인 / 불편한 잠

 

 

잠은 감옥이다

감옥 안의 불타는 이불이다

불타는 이불이 밀어 올리는 뜨거운 창살이다

 

원통형으로 뒹구는 잠속에 갇힌 내가 있다

잠은 낮은 바닥을 어깨로 받치고

종신형을 사는 곳

어깨가 뜨겁다

썩으면서 즐겁게 피어난다

잠은 오래 된 율법이다

부패의 시작이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잠을 찍어먹어 본다

잠이 나를 흘리고 있다

나와 내가 잠시 입술처럼 겹쳐진다

잠은 정리되지 않는다

낯선 발꿈치를 거침없이 문다

제 머리를 스스로 삼켜버린다

잠은 꿈틀거리는 늪이다, 미끌거린다,

깊숙한 식욕이다

 

 


 

김상숙 시인

강원도 속초 출생. 2003년 시집 『강물 속에 그늘이 있다』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물렁물렁한 벽』 『대책이 없는 문장입니다 당신은』.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한국시인협회 회원. 현재 〈다층〉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