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나 시인 / 그립감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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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나 시인 / 그립감
눈으로 쥐어본다 길고양이 얇은 배 유모차 밖으로 나온 아기의 하얀 손 낙타 눈썹 같은 자귀나무꽃 눈으로 만져본다 코로나19로 눈은 손이 되었다 위축되고 겸손해진 손 고개를 떨군 손 그러나 그동안 손은 얼마나 부산했던가 그립감을 금지 당한 손이 마스크 안을 지배한다 모든 계산을 끝내고 비밀의 숨을 살게 한다 나만 위하는 특별한 숨, 저 사람은 갖지 못한 고귀한 숨 차별 당하는 각종 숨소리들 입 안에 총알을 머금은 채 헐떡거리지 않는 안정된 전장戰場 우린 현관문에 끝이 없을 병조각을 꽂아둔다 놓고만 가세요 진작 끝난 관계에 애면글면 말기 종말을 모르시네요 인정은 밟아버려요 철 지난, 마스크 없던 사진들을 보며 치자향 날 것 같은 입가를 감상한다 아, 그늘이 참 젊어요 그림자와 그늘의 손바닥이라도 마주잡는다
임지나 시인 / 큐브
양손의 그러쥐는 힘으로 작은 집을 만들곤 했어 모서리 같은 세상, 빛나는 방바닥을 쓸어보며
이따금 각 세운 날들을 돌려봤어 마음의 집에 들어와선 함부로 살았지 내장 같은 집기들을 내던지며 손아귀의 힘으로
뻑뻑해진 가슴을 무시하고 멋대로 가보고 싶었어 그게 함정이어도 다른 길로 자꾸 빠지는, 탕아였어
헤매다 멈춘 곳에서 만난 집은 옳았을까 지금 앉고 누울 수 있는 이곳에 나를 얼마나 맞춰봤나 뚜둑뚜둑 뼈 맞추는 소리가 발걸음 소리로 들렸지 왜 반복되는 소리에도 이골나지 않았을까
그 소리는 얼음물에 젖어 귀가하는 남편의 발목 돌리는 소리 아이들 몸 떠는 소리 떨리는 목소리들 매일 만지는 지붕도 방향을 비틀어 손안에 있는 이것은 아직까지 맞춰지지 않은 집 돌고 돌면서 어여쁜 이마를 찾는 집
비록 작지만 윤이 나는 네모반듯한 창틀이 네모반듯한 방이 내 손아귀에서 둥글어지게 몽글게 부디 그렇게
임지나 시인 / 아무 때나 터지는 석류
으깨어 있어도 찬연한 파티 중, 붉은 미소는 진땀이 났던 표식 웃돌았던 감정들 정확한 이별 언어를 꼭꼭 씹어 뱉은. 이런 걸 산산이 깨지는 파티라 해야 하나
흩어질 줄 알았지만 아등바등 모였지 모여야 안심이 되는 습성은 이상해 하지만 꽤 괜찮아 네 속에서 난 늘 쌓여 있었으니
네가 생각나는 날이면 말간 비가 내려 죽죽 소리 나는, 네가 주문한 이별을 난 결심하는 척 주먹을 쥐어봤어 다른 손으로 주먹을 만져봤지 흐물거렸어 새끼고양이 옆구리 같아 그래서 네가 맡긴 고양이에게서 석류향이 났구나
너와 나의 몸은 석류 안의 막처럼 말라갔지 언제든 터질 준비가 돼 있는 지뢰 같은, 석류만도 못한 사랑 입안은 붙잡는 말로 빼곡했어
뭉텅이로 네 마음에 침투하고 싶어 나무에 가둬서라도 더 엉겨서 더 호동그랗게, 신장투석 중인 석류나무 아래서 고백한다
임지나 시인 / 바다에서
터벅터벅 정육면체가 된 몸으로 바다에 왔다 마르고 파리해진 몸의 면은 사방에 맞닿아 있고 베일 거 같은 모서리를 만져 보라고 둥글게 해 달라고 내 몸은 혼신의 선으로 바다에게 교신을 보낸다 바다는 두 눈을 맞추고 누워서, 서서, 더러는 앉아서 손깍지를 낀 오랜 벗들보다 더 내 핍진을 경청하고 있다 햇빛은 영민한 바다 정수리를 비추고 갈매기는 멀미하는 물고기를 향해 생의 끝이어도 한 터럭 미련 없을 추락을 멈추지 않는다 저 청청한 물살에 풀려 버린 내장들을 헹궈줄 수 있는지 바다여 늙지 않길 그리고 나는 처절하게 사랑했던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대저 흠 하나 없는 달에 착륙한 거 같다고
임지나 시인 / 낱말의 세계
수완手腕 스완swan을 발음해 본다 수완도 들어간 부분 스완도 고개 아래 반원 정도 들어간다
들어가느라 파고들었겠다 힘을 냈겠다
계곡 도랑 바다 하늘 그것도 다 파인 것들
말없이 움직이는 낱말 움직이고 있다는 걸 바라봐주길 낱말에게서 보이는 홈 홈 홈
흐리고 바람 불고 천둥 치는 날 홈이 있어도 다채로운 일기日氣 수완 좋다
구부리고 숙이고 엎드리는 건 수완 좋은 것 기어가도 좋을 세상
강물에 구름같이 내려앉는 저 스완 참 좋다
임지나 시인 / 드림캐쳐(Dreamcatcher)*
죽을 때까지 거미풀만 만들어라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게임이 직업이었다는 아빠에게 맞아 죽은 아이
버드나무를 베어 둥근 틀을 만들고 아이 원혼이 풀릴 때까지 구렁이 몸통만 한 밧줄을 한 올 한 올 다 풀어라 그 줄로 원 안을 아무도 해독 못 하는 문양으로 직조하라 피로 써야 할 반성문같이
독수리의 깃털 눈물로 빚은 진주 방울뱀의 방울로 장식해 아이 없는 빈방에 걸어두라 풀에 걸릴 꿈도, 아이 얼굴도 숨소리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지만 네 양심은 가둬라 걸러 내지 마라 담고 있다가 썩어라
그러나 우린 피리 부는 남자를 따라가는 아이를 위해 음습한 동굴 입구에 선한 드림캐쳐를 매단다 거미풀에 매달린 햇살 종아리를 잡으라 쨍한 사람들이 만든
숙면에 드는 꿈을 붙잡아 몸에 부어주리 꿈이란 향기로운 이상향으로 가는 우리만의 국경 같은 거니까
오래오래 삼황처럼 아이들을 키우리 선득하게 깜깜한 흙 속에서도 하얗고 도도하게
*나무로 만든 고리를 끈으로 엮고 깃털로 꾸민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 장식물. 아이들을 보호하고 좋은 꿈을 꾸도록 도와준다는 전설이 있다.
임지나 시인 / 싱잉볼
지구 모양으로 여러 명이 둥그렇게 눕는다 죽음의 자세를 취한다
뇌를 꺼내 밖에 두고 고치의 몸처럼 가볍게
평화가 전쟁처럼 타전된다 이런 전쟁이라면 또 이런 전쟁이라면 기분 좋은 소름, 핏줄을 잡아당긴다
푸른 초원에서 종소리처럼 울리는 돌 하나 만나는 꿈
다슬기가 붙어살고 암벽을 타고 탑을 쌓으며 불상을 만들고 돌다리를 건넌다 돌을 찾아다니는 묵직한 연주
스트로마톨라이트 스트로마톨라이트 뒤섞인 신발에서 자기 신발을 찾아 신는 여정 발걸음을 재촉한다 세속으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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