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시인 / 어머니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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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시인 / 어머니
사람들의 손을 잡을 때마다 30년 동안 생선 다듬던 어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비늘처럼 균열이 생긴 손톱 소금기 어린 냄새가 코끝을 맴돌 때 나는 엄마의 손톱에 바다를 그려 넣었다 큐티클마냥 늘 몸에 맺힌 자식들 생각에 밤새 손 한번 못 씻고 갈치를 매만지시던 손길 실핏줄이 손등위로 터져 나오고 손톱 사이에는 투명한 비늘이 끼어 있다 보기 흉한 손등에 가만히 내 손을 올려 볼 때 멀리서 눈에 들어오는 바다 풍경이 환하다
김재현 시인 / 몰식자
늙은 작가가 마지막 회고록을 시작했을 때 백지 위에선 가장 쓸쓸한 밤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 검정이 어느 유충의 후생이라는 것은 종이에 남은 문장조차 모르는 일이다
나무로부터 시작한 벌레들의 번식 태어날 것들을 위해 나무는 스스로를 앓아 작은 방을 내어준다 여물지 않은 벌레들이 보는 것은 오로지 캄캄한 자신의 그림자뿐이다 그곳엔 주렁주렁 매달린 몰식자沒食子들 바깥을 향해본 적 없는 시선에 젖으면서 팬은 발끝부터 먹먹해진다
"장기로부터 자란 것은 혹이 아니라 몸에 깃든 것들에게 내어준 자리였습니다. 공생을 앓으며 나는 죽어가는 중입니다."
작가는 회고록의 첫마디를 그렇게 세들였다 하나의 꿈을 잉크로 만들기 위해서 혹은, 하나의 목숨이 기록이 되기 위해서 빛을 본 적 없는 눈[目]을 녹인다 서로 다른 미생異生을 이으며 그는 문장을 쓴다 태어나지 못한 눈이 태어난 눈의 무늬가 되며 본 적 없는 풍경을 산란하고 있다
*몰식자: 충영(蟲廮), 잉크의 원료.
김재현 시인 / 골목끝, 철물점
15도쯤 기울어진 지구의 주민들은 누구나 조금씩 휘어져 있네 별명은 당신이 파운 꽃잎 같은 것 그들은 휘어진 각도로 서로를 구별하지 펴지 못한 것이 많으므로 굽은 것들의 힘이 지구의 미능異能이었네
구불거리던 골목길은 그의 대장간을 통과하며 곧은 대로가 되네 사람들은 그 앞에서 펴고픈 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멈춘 채 되뇌이네 친구들의 삐딱한 습관을 펴주지 못했다, 어머니의 굽어가는 등을 펴주지 못했다. 애인의 돌아간 마음을 펴주지 못했다. 핀다는 것은 복구의 일, 아니 적응의 일, 아니, 몸을 민감하게 하는 바람은 내게서 불어 내게로 돌아온 바람뿐
어제는 가명이 가명을 불러오고 오늘은 기억에서 기억으로의 데칼코마니, 집을 잃은 치매노인이 그의 망치 앞에서 오래도록 생각하는 모습이 있었네 모루 위에 기억을 내려놓고 기운 그 축을 한참이나 두드리다 떠났다네 노인이 핀 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휘어진 것들을 사이의 무늬라 불러도 되려나 남이 입혀준 이름을 통해 사람은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라 해도 되려나
기울어진 지구 위에서 주민들은 날마다 휘어진 것들을 생각하네 그가 무언가를 두드리는 시간이면 사람들은 쌓인 고물들을 들고 나와 오래도록 듣곤 했지 떠나는 이름을 향해 그가 불던 휘파람을,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붙드는가를
김재현 시인 / 싱크홀
거실에 나갔다가 기척을 느낀다 그것은 나의 인식을 두려워한다 싱크대 밑으로 사라진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한다 달콤한 덫을 놓고 그것을 기다린다 싱크대 아래쪽에는 방 안 곳곳으로 연결된 숨겨진 배수관이 있다 관은 나의 발보다 더 아래쪽에서 중력의 근원처럼 너무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다 그 비밀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분명 싱크대 아래쪽으로 도망쳤는데 싱크대 밑에는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제 싱크대를 제외한 모든 곳에 가능성이 생긴다 안전해지기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유지되어야 한다 덫 속에 놓인, 아주 분명한 멸치가 어둠을 입는다 누군가는 그걸 의도라고 부를지 모른다 나는 기다린다 견고한 시멘트의 아래에는 관管의 목구멍, 불린 적 없어 혐오스런 말들이 아무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다
김재현 시인 / 골목 끝, 철물점
15도쯤 기울어진 지구의 주민들은 누구나 조금씩 휘어져 있네 별명은 당신이 파문 꽃잎 같은 것 그들은 휘어진 각도로 서로를 구별 하지 펴지 못한 것이 많으므로 굽은 것들의 힘이 지구의 이능異能 었네
구불거리던 골목길은 그의 대장간을 통과하며 곧은 대로가 되네 사람들은 그 앞에서 펴고픈 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멈춘 채 되뇌이네 친구들의 삐딱한 습관을 펴주지 못했다. 어머니의 굽어가는 등을 펴주지 못했다. 애인의 돌아간 마음을 펴주지 못했다. 핀다는 것은 복구의 일, 아니 적응의 일, 아니, 몸을 민감하게 하는 바람은 내게서 불어 내게로 돌아온 바람뿐
어제는 가명이 가명을 불러오고 오늘은 기억에서 기억으로의 데칼코마니, 집을 잃은 치매노인이 그의 망치 앞에서 오래도록 생각하는 모습이 있었네 모루 위에 기억을 내려놓고 기운 그 축을 한참이나 두드리다 떠났다네 노인이 핀 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휘어진 것들을 사이의 무늬라 불러도 되려나 남이 입혀준 이름을 통해 사람은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라 해도 되려나
기울어진 지구 위에서 주민들은 날마다 휘어진 것들을 생각하네 그가 무언가를 두드리는 시간이면 사람들은 쌓인 고물들을 들고 나와 오래도록 듣곤 했지 떠나는 이름을 향해 그가 불던 휘파람을,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붙드는가를
김재현 시인 / 어머니
사람들의 손을 잡을 때마다 30년 동안 생선 다듬던 어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비늘처럼 균열이 생긴 손톱 소금기 어린 냄새가 코끝을 맴돌 때 나는 엄마의 손톱에 바다를 그려 넣었다 큐티클마냥 늘 몸에 맺힌 자식들 생각에 밤새 손 한번 못 씻고 갈치를 매만지시던 손길 실핏줄이 손등위로 터져 나오고 손톱 사이에는 투명한 비늘이 끼어 있다 보기 흉한 손등에 가만히 내 손을 올려 볼 때 멀리서 눈에 들어오는 바다 풍경이 환하다
김재현 시인 / 술잔이 비는 만큼
당신이라는 주향(酒香)은 젊은 시절 잊어도 향기롭고 당신이라는 취기는 내 나이 더할수록 간절해지네 당신 한가득 맘에 담으면 참으로 영롱한 그 빛깔 나는 영원히 취해 있고 싶으나 술잔이 비는 만큼 당신은 늙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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