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정안나 시인 / 정상 지키기 외 6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3. 08:00
정안나 시인 / 정상 지키기

정안나 시인 / 정상 지키기

 

 

 아이가 잠의 마대를 쓰고 뛰어내렸다 오래된 학교에 뛰어가 보고 싶었다 생활을 뒤집어 보다 깔고 앉기도 했다 무엇을 내려놓을 때 조심해야 했다 법보다 밤이 뒤집히면서 계절을 넘어 내버려 둔 허수아비의 책임이라고 조언과 감사가 모여드는 곳 다가오는 이는 폭력이란 걸 아비의 힘으로 밀어낸다

 

 참새가 오면 참새를 맞고 바람이 오면 바람에 묻는 벌판으로 새를 잡아먹는 새를 보면 새가 달리 보이는 것 당장 이사 가지 않냐고 묻는 이웃 이웃은 왜 이사 가지 않는지 물어 볼까 이사를 해도 집이고 짐이고 돌을 던지는 어떤 계절도 허수아비가 지키는 곳이어야지

 

 어떤 시간은 적이었다 눈길마다 사로잡는 아이였다 알약과 현기증으로 돌리며 멀리 가 보는 것 태곳적의 아비가 나와 울타리를 치는 밥으로 인사했다 글을 사람을 다시 배우는데 있다 잠을 다시 배우며 재미있는 걸 놓치려 하면 걸음을 멈추고 방향을 바꾸면서 여기가 정상이다 거기가 정상이다

 

 


 

 

정안나 시인 / 낯선 온기

 

 

마을버스에서 출렁출렁 붙어 앉았다 그가 내린 자리

내 옆구리에 필사적인 온기로 남아

부분으로 전체를 묻는 자리

 

내 등을 내가 안은 듯 서정적으로

갈비뼈 안의 내장을 만지고

얼굴도 영혼의 크기도 모르면서

은신처에서 온도를 바꿔가며 웅크려

 

매화나무에 흘러들었다 가버린

매화가지의 봉오리처럼

그런 식으로 남아 있는 온기의 자리다

가두어 찾는 것도

지친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아닌

문득이다

 

버스는 고단한 옆구리를 열어

그의 알리바이를 자꾸 흘려버리고

 

데운 우유를 비우고 난 후의 거품은

사그라지면서 고이는 내 안의 그늘

 

옆구리와 옆구리가 흐르는 곳에 사는

온기 쪽으로 한쪽 팔이 길어진다

온기에는 천성적인 서정의 물기가 산다

 

 


 

 

정안나 시인 / 붉은 버릇

 

 

떠나는 이는 날마다 반칙 같아

날마다 등은 달리고 먼저 간다

뒤따라서 조문 가는 일은

 

붉은 나는 아니고 싶어 검은 나일 때

삐져나오는 붉은 꽃무늬

예의를 몰라

 

시락국이 맛있어

이모를 외쳐 한 그릇 더 맛있어

술을 권해 짠 부딪치는 붉은 꽃무늬

예의를 몰라

 

몰라서 멈출 수 없어

울음을 들고 살금살금 걷는 웃음

어느 순간이다

걸음으로 조의봉투에서 기도에서

나올 만큼 나와버린 꽃무늬

대략 물들은 불량품

네가 알아보고

내가 나를 망설이는

둘 다 붙잡고 싶다

 

속으면서 속이면서 검붉은

방어를 해야 하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거니

지금 뭐하고 있는 것 맞지

 

오른쪽으로 많이 나오고

왼쪽으로 거기인

버릇으로 반칙을 이기는 길

 

 


 

 

정안나 시인 / 단골 동화

 

 

 1

 명작동화를 일으키는 유전자의 늑대네 본능을 건드리는 늑대 없이 주제가 있나 우리 옆으로 걸어 다니는 늑대의 웃음 없이 주인공이 있나

 창밖으로 배고픈 늑대가 기다리는 패이지

 

 밥의 발자국을 기다리지 밥이 내뿜는 꾀는 식탁 위의 밥과 대화해 천진난만은 배고픔의 속도에 걸어 들어갈 때까지 검은 손은 흰 손이 되는 목소리지

 늑대가 사라지는 마지막까지 동화의 페이지

 

 형제와 사냥꾼은 어디서 나타나 동화의 이름을 구하네 붉은 뺨으로 아이도 어른도 잠이 잘 오는 결말 오늘도 이겨낸 거의 다 온 이야기에서

 늑대는 키가 크려는 아이의 꿈이지

 

 2

 뒤 배경이 찢어져 내리고 시멘트벽이 무너져도 배부른 늑대는 동화를 일으키네 훔쳐보고 흉내 내며 날아다니네

 벌거숭이 임금 같은 늑대는 찢어지고 무너져 희미해져 가는 우리의 주인공으로 오네 이성적인 사냥꾼도 형제도 없는 집으로 들어와 우리를 잡아먹어야 끝날 듯 통제하며 늑대를 과시하는 밤

 소인국은 거인국 임금의 꿈에 시달려 꿈이 없는

 

 


 

 

정안나 시인 /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매뉴얼

 

 

 고향에서 출발한 다국적인 노동자들이 모여드네 쉬지 않고 싶어 쉬는 설날은 부두 근처의 마트에 모이지 A씨는 고향의 들머리를 생각하네 아이의 첫머리는 아빠가 자르고 이름을 지어야 한다네

 

 한 무리의 애완동물 코너에 자리 잡네 레고는 그의 곁에서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매뉴얼을 내밀지 유리를 치면 스트레스를 받아 아프다는 분양가 백만 원의 레고네 불빛의 자장가는 실물 크기의 선잠을 키우지 분양가 칠십구만 원 레고는 자신을 노랗게 깔아뭉개며 창을 물어뜯지 제복 입은 레고는 예민한 이름을 계속 불러

 

 휘파람을 즐기는 레고

 팔려가는 레고

 남겨진 소리 지르는 레고

 

 넘쳐나는 레고

 

 A씨는 떠받들고 떠넘기는 레고에서 이름 없는 아이가 생각나 도망친 적 없어 팔이 빠지면 붙일 것 무너지면 쌓은 어느 날은 여자아이의 머리를 자르고 사내아이 이름이 생겨날 것이네 서로의 위아래에서 웃는 설날

 

 자신에게 접근하는 화상통화는 건강한 웃음으로 더 나가면 들킬 눈으로 인사하네 탑 쌓기의 지름길에서 포옹하네 서로 때와 장소를 가리며 자랑스러워 이만큼에서 설날을 맞추느라 웃지 않는가

 

 


 

 

정안나 시인 / 아이 되기

 

 

돌멩이를 쥐고 머리를 길렀어

파마 없이 염색 없이

미장원 없이

옛날식으로 말아 올리고

무게를 높이를 키워가는

머리를 기른다고 돌멩이를 쥐는

돌멩이를 쥔다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시계적인 삶을 사는

이름도 시계적인 머리카락을 자른 날

돌멩이를 놓아버린 날

가벼워지는 것에 대해

 

소아암센터

가발 만들기 행사에

기증해

 

옛날식으로 돌멩이를 다시 쥐네

머리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아

돌멩이의 감정으로

미장원 없이

이십 키로 가벼워지는 것에 대해

이십 키로 낮아지는 것에 대해

시작해

 

아이 되기가 목표네

 

 


 

 

정안나 시인 / 나는 나의 구경꾼으로

 

 

 산신은 호랑이를 가린다 부채는 엽전을 쫓아가며 얼굴을 가리고 훑어내린다 그 얽히고 설킨 요지를 찾는 부채고 엽전이고 나는 말하며 듣는 자 뒷배경의 중심을 찢어놓는 해적판 레코드판이 돌아간다 나는 어떻고 나는 어떻고 그래도 나는 어떻고 오가는 나를 간섭하고 손 흔드는 인형을 보는 나를 받아 적으며 고개를 끄떡여야 하나 오른손을 들어야 하나 거리를 두며 내게 다가갈수록 칭찬인지 욕인지 근데, 왜 복전은 안 놓냐는 데 제멋대로 읽는 사이에 사라진 복전 그래서 나는 내가 맞는가

 

 근데 왜 왔노, 드디어 말하는 내가 들어오고 나를 구경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곳을 보고 있다 준비된 대답이고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어깨를 껴안았다 말을 타고 달리는 사이에 순발력에 쫓기고 철학이란 것이 말의 뒤에 앉아서 천천히 가자고 그 높이를 속력을 치고 받는 것이고 슬쩍 때리고 체념하는 것이고 레코드판은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

 아빠, 주스 좀 갖다 줘요 콧소리를 들었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주스를 마시고 있는 나는 시원해졌나

 

 지나치게 열심히 일한 나의 구경꾼으로 만난 나는

 

 


 

정안나 시인

부산 출생. 2007년 《시와사상》 신인상에 詩 <마감뉴스>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집 『A형 기침』 『붉은 버릇』 『명랑을 오래 사귄 오늘은』 『은신처에서 내려오는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