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최석균 시인 / 시의 향기와 파장 외 7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4. 08:00
최석균 시인 / 시의 향기와 파장

최석균 시인 / 시의 향기와 파장

 

 

말라가는 시심詩心을 적셔주는

아름다운 나무와 숲으로 이어진 길을 걸으며

시의 향기와 파장을 생각합니다.

 

물과 바람이 바쁘지 않듯이

시의 땅을 일구고 가꾸는 발길이 있습니다.

그늘과 햇빛이 다투지 않듯이

두루 거름을 주는 손길이 있고

가지 치듯 툭 어깨를 쳐주는 눈길이 있습니다.

 

그 힘으로 걸어갑니다.

고독으로 익어가는 시와 사람의 길!

사람보다 더 좋은 시가 있을까요?

봄여름가을겨울 아름다운 나무숲을 걸으며

샘솟는 임들의 마음에 두레박을 내립니다.

 

강물 같은 글!

글의 향기와 파장을 생각하면서.

 

 


 

 

최석균 시인 / 낙화

 

 

누가 모를까

삶이 축제가 아니란 것을

너와 나는 흩어질 것이고

불꽃은 이내 꺼질 것이란 것을

아무렴 어떨까

하늘하늘 아문 꽃자리

샘솟는 기억을 따라가면

비마저 꽃, 나락마저 꽃길인 것을

 

 


 

 

최석균 시인 / 나무를 만진다

 

 

 나무는 사람 손길 닿는 것을 좋아해서

사람 소리 들리는 쪽으로 푸릇푸릇 향기를 뿜는다

 

사람은 나무를 만지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은 나무를 만지면서 몸속에 푸른 물이 든다

 

사람 냄새 나는 사람과 사람 물이 든 나무가

마주 눕고 만지다 닳은 집에서

나무는 몸을 반짝이고 나는 몸이 간지럽다!

 

나무와 사람은 서로 세 들어 사랑해서

얼굴이 안 비치는 순간 빛과 냄새를 놓아버린다

 

나무 집이 허물어지도록 돌아다니다가

푸른 물이 다 빠진 몸으로 돌아온 나는

나무가 나를 만진다고 생각하고 눈치 없이 군다

 

 


 

 

최석균 시인 / 별

-윤기태에게

 

 

따뜻한 쪽에서 빛이 온다

저녁이 오고

너를 떠올리면 세상은

상상 이상의 온기로 넘친다

나는 네가, 어둠을 먹고 뽑은 빛줄기로

새벽하늘을 연다는 것을 안다

나는 네가, 까맣게 탄 가슴에서 짜낸 이슬방울로

아침의 땅을 선물한다는 것을 안다

가까이 또 멀리

고독한 눈동자에 등불을 달고

마른 가슴에 샘물을 떨구는 사람아

빛이 가 닿은 자리

꽃이 핀다 꽃길을 따라가면

은하수로 흐르는

너를 만난다

 

 


 

 

최석균 시인 / 유리창 한 장의 햇살

 

 

 유리창 한 장으로 들어온 햇살이 바닥에 앉았다. 환한 자리에 발을 담가본다. 손을 적셔본다. 따뜻하다. 오래 보고 있으니 조금씩 기운다. 네게로 향하는 정직한 마음처럼 옮겨 간다. 지금껏 네 주변으로 다가간 몸의 열기 마음의 빛, 그렇게 살아있다. 네모거나 둥글거나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너 아닌 존재의 그늘에 떠오른 눈빛 하나, 너 아닌 존재의 그늘까지 쓰다듬는 심장 하나, 안 보이던 것이 선명할 때는 모든 길이 너를 향해 열린다.

 

 


 

 

최석균 시인 / 창원

 

 

비가 올 때 빛나지요

눈이 덮일 때 눈부심보다는요

울퉁불퉁한 산야를 평면으로 누르고

구부렁한 과거를 직선으로 펴서

안민고개에 올러서서 보면

낮보다는 밤이 아름답지요

꺼지지 않는 빛의 열기가

물안개로 피어나리란 말보다요

번창하는 평원의 내일이

동서로 남북으로 뻗치리란 말보다요

밤물결 위에 별이 떠 찰랑이듯

비오는 밤에 꽃피는 말이 아름답지요

안민고개에 올라서서 보면

흔들흔들 왔다가 구불구불 넘어가는

사랑의 불빛들이 아름답지요

 

-시집 『유리창 한 장의 햇살』에서

 

 


 

 

최석균 시인 / 상남동 연가

 

 

 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땅. 바람과 객(客)이 머물다 가는 땅. 창원 상남동 빼곡한 건물과 인파 틈새, 너와 내가 꽃피는 간판과 바람의 전단지로 수놓 는 밤, 사랑의 물결을 내고 천년의 별을 띄운 밤.

 종횡으로 구획된 불야성을 허물면, 왁자한 오일장에 한바탕 먹거리에 팔도의 말과 장단이 엉겨 붙으리라. 다시 한꺼풀 장마당을 걷어내면 사방 풀벌 레, 사철웅웅거리는 논밭이 눈을 뜨고 도랑에 물고기 지렁이와 뱀이 기어 다니는 황무지가 울퉁불퉁 깔리리라.

 길은 덮은 자리에 다시 길이 열리고 너를 지운 자리에 또 네가 생겨나듯 본디 여기는 벌 나비가 날아들던 땅, 본디 여기는 풀꽃향기가 진동하던 땅.

 

-시집 『유리창 한 장의 햇살』에서

 

 


 

 

최석균 시인 / 안민동 데크로드

 

 

마실길이 편키야 편타마는

나무똥가리를 우째 이리 마이 모다가꼬

이레 반닥반닥 이사나시꼬 맨따모냥 시상에

 

말로 다할 수 없이 고요한

안민동 할머니 걸음 위에

실시간으로 피어서 날리는 말의 꽃

 

이 길모냥 저승길도 편해야 할 낀데

그란데와 이 집이나 내 집이나 갤온을 안 할라꼬

남은 거 하나만 치우고 갔시모

 

꽃잎을 주워 담으며

느린 마실길을 다녀온 저녁답엔

고개 너머 먼 데까지 나무 냄새가 났다

 

-시집 『유리창 한 장의 햇살』에서

 

 


 

최석균 시인

경남 합천 출생. 2004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배롱나무 근처』 『手談』 『유리창 한 장의 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