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하미정 시인 / 계절은 미완성 외 3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7. 08:00
하미정 시인 / 계절은 미완성

하미정 시인 / 계절은 미완성

 

 

미련이란 펜을 잡고

망설이는 마침표

 

보내야 할 당신을

독촉하는 계절이

 

미완성

가을 한 권을

아직도 퇴고 중이다

 

-시조집 『이 봄을 달래달래』, 상상인, 2024.

 

 


 

 

하미정 시인 / 패딩 날다

 

 

당신은 오리의 감정을 입습니다

날기 위해 자신의 그림자를 옷장에 걸어 놓습니다

 

거울을 보고 서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얇아졌군요

당신의 등에서 삐져나온 깃털을 뽑아줍니다

소매가 더러워지기 전에 오염된 기분을 세탁기에 넣습니다

 

당신은 목도리의 표정을 걸어놓고 운 적도 있습니다

겨울은 불친절하고 불길합니다

 

방에서 나는 보온 되었습니다. 라는 문장을 하나 더 껴입습니다

겨울은 추운 당신의 주머니를 열고 자랍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차가운 말들이 뭉쳐집니다

 

구멍 난 대화에서 자꾸 빠져나가는 그는

날기 위해 날개를 움츠립니다

 

언니들이 엄마를 입는 동안 아버지는 얇아집니다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그때 당신은 왜 그리 가벼웠는지

터진 생활을 누비면 아버지는 두꺼워 질까요?

 

오늘, 채워진 지퍼를 내리는 순간

우리의 몸을 벗고

하늘 위로 날아가는 패딩 하나를 보았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8월호 발표

 

 


 

 

하미정 시인 / 분실紛失

 

 

매섭게 달려들어 온몸이 물릴 동안

 

슬픔의 입마개는

누가 훔쳤을까요?

 

태양은

오랫동안 나를

혼자로 남겨두었다

 

- 《상상인》 2024년, 겨울호

 

 


 

 

하미정 시인 / 종이컵에서 절망하다

 

 

나는 바람에 농락당하는 종이컵

화면이 off 된 텔레비전이며

날아온 맥주 캔에 맞아 도망친 고양이

우리의 폐지를 수거하는 리어카가 무겁습니다

나는 땅바닥에 뭉개진 담배꽁초이며

당신이 버린 빈 병에 들어가 출구를 못 찾는 개미

우리의 보호를 뚫고 나온 우산살에 자주 찔렸습니다

아무도 사지 않는 고물인 나의 절망은 아직도 당신에게 버려져

부서진 시간, 무너진 계획, 그의 무관심

그는 나를 해고했고 나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헤맸습니다

우리의 평온은 깨진 거울 속에 있었고

나의 절망은 수리되지 않아 사소한 바람에도 펄럭였습니다

 

-2024 월간 모던포엠 8월호

 

 


 

하미정 시인

충남 금산 출생. 2020년 《무등일보》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제31회 전국한밭시조백일장 수상.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현재 대전우송고등학교 도서관 사서 교사. 대전시조시인협회 이사, 대전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