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황성용 시인 / 햇볕 그 햇볕 외 7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8. 08:00
황성용 시인 / 햇볕 그 햇볕

황성용 시인 / 햇볕 그 햇볕

 

 

내가 수련이 아니기에 수련을 모른다

 

그래서 수련을 본다

 

좌정하며 본다

 

뒷면의 나날들은 볼 수 없다

 

낙심만 생긴다

 

더 이을 감정은

쓸쓸함이다

 

심연(心淵) 어디에 관산이 있었다지

 

하, 이름 모를 꽃들이

들어 있을 거야

 

꽃들이 만발한 데

수련이 없을 리 없지

 

수련이 없는 척 안 하고

수련은 피고 있다

 

햇볕 어제 그 햇볕 그대로

-시집 <햇볕 그 햇볕>에서

 

 


 

 

황성용 시인 / 모놀로그

 

 

어디다고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그럴듯하게 살고는 있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차비는 드릴게요

 

칠준이 놈 영치금 부족하면 그때나 전화하세요

 

역전 사무실로는 안 돼요

 

인부들 사고파는 데 혈안이 된 곳이어요

 

그리고 다음 달이면 선희 애 낳을 거여요

딸이래요

 

좋아서 한 얘기는 아니고,

 

아 그 개 같은 병원은 가지 마세요 사고 쳤대요

 

저 개명할 거여요 목사님과 상의했어요

 

여호수아처럼 끝까지 살아남으라 했어요

 

순경들이 혹시 내 이름 물어보면

알고 있는 그 이름 가르쳐주세요

 

우상숭배나 하라고요

 

그쪽 출구가 헷갈려 저도 헤매요 차 시간 놓쳐요

가다가 무조건 첫 번째 오른쪽 모퉁이로 트세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는 하지 마세요

 

이빨 남아돌아서 이 악물고 산 것은 아니어요

 

지금도 꽃사슴 무둥이 눈 맑아요? 죄송해요 잘 가세요

 

 


 

 

황성용 시인 / 어차피 모른다

 

 

두 번째로 화장실 수도꼭지 고장냈다 이번엔 누구냐?

 

모른다 그것은 항상 수동적이니까

 

뭐든지 모른 일만 있는 모르는 것에 물어본다

 

어차피 모를 일

 

젊은 수리공이 왔다 벌레냐

 

모르는 것에 인상 써야지

 

그럼 다음 단계는 뭐야 당연히 수리공의 문제지

모른 것은 몰라도 '모르는 것 같은' 막연함은 사라지게 할 거야

 

누가 봐도 끝까지 모르는 일

 

그런데 누가 보았다면 어디서 본 거지

 

길도 아니고 초소도 아니고 더더욱

지상 어디도 아니라고 하는데

 

함정으로 보내자

 

움직이지 못하게 가둬놓고 그대로 둔 거야

 

모르는 일이 숨 막혀 자백할 일을 만들자 어차피 잔인해도 모를 일인데

모를 자유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다른 수리공들도 모른 일을 그 수리공은 처음으로 모르겠다는 듯

땀을 닦는다

 

모르는 범위를 어디까지 정하고 끝냈나 뭔 말 없다

 

 


 

 

황성용 시인 / 악상惡想

 

 

(1)

 

설원과 백색 야음, 그렇게 접점

 

혼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오직 구부렸던 접면,

힘찬 수긍의 발진發疹

 

세상의 모든 세모와 마름모는 불안,

구악의 비극

 

동시대의 사건들 중 국가마다 있는 인면수심처럼

수일이 지나도 참혹한 적설, 그리고 안 보인 분노

 

눈과 안개 중에서

밤새 눈 내린 일은 악령으로

 

눈이 안개보다 내 몸에서 더 밀착한 까닭을 말하면,

네 처연한 붕괴와 외로운 모형 때문

 

(2)

 

내가 했던 나의 파멸은 항상 밤에

 

그들이 그쪽에서 보면 정면도 후면도 옆면

 

비둘기 날아오는 곳을 간절히 받는다

 

펑펑 날 새고 있는 고립, 정념情念

 

전체적으로 전향했으므로

 

낭떠러지가 아닌 잔잔 그 시원, 일단 깊이 들어간 격랑

 

 


 

 

황성용 시인 / 사념을 겨누는 봉기

 

 

새벽에 이르러 이슬에 이르러 골육에 이르러

사이사이 홀로 떠도는 통렬

 

통렬한 염원은 물질 이전의 연원

그 질주는 살육의 외피에 싸인 잔혹한 역사이다

 

화살보다 더 빠르게 지나갔던, 그래서 그렇게 된,

지나간 사체(蛇體)는 모룻돌이 얹혀있는 격식이 아니다

 

포식처럼 풀이 아니라 야수의 곧은 이빨이고

사람의 이빨이 아니라 아류의 광풍인 걸

포효의 눈도 눈이지만 왜, 외딴섬의 적막처럼 아련한가

 

창과 원흉과 늑대와 바벨론 국가의

엄습을 느끼며 공중의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흉금을

탈취하는 표면의 맹금류를 본다

 

시원의 영령이 영혼이었듯

영혼이 되려고 계속 눈 내리는 3월 간청까지

암흑으로 파들어 가는 발톱처럼 하얘진다

 

눈 내리면서 깜깜한 사색(死色), 참혹한 본령 쯤 정도다 해도

숲마다 피어나는 여름에서 꽃, 꽃에서 생명

 

파도며 폭우며 불안이며 모두 모두

흘러가는 물이려니, 그건 밤마다 몰려드는 광분

 

죽창은 멈춰도 물은 흐른다

 

 


 

 

황성용 시인 / 진짜로

 

 

빗물 컵을 책상 위에 화분 옆으로 올려놓고부터

화분에 해당된 화분은 사라졌습니다

베란다에 있는 화분은 잠시 보류했던 경험입니다

굿바이~

아버지와 엄마는 재산 분할 같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거의 이혼 목전까지 왔습니다 미혼인 우리들은

그 기분을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한 달 동안 세탁기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돌아오게 하려고 가족 상담소 같은 먼 산을 보도록

권유를 했습니다

폭우가 쏟아져 가지 못하고 저 창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빗물을 인위적으로 설정하고부터 화분은

부작용이 되고 말았습니다

절대 가짜가 될 수 없었습니다

 


 

 

황성용 시인 / 생각정리

 

 

의정부 부대찌개, 홍대 파스타까지

놓친 후회이다

후회가 가장 짧았다

그래봤자 늦었다

빚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긴급회의 메시지가 왔다

달렸다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야 도착할 것이다

위로의 말이라면

바쁘다처럼 있어도 괜찮다

모자가 어디로 떨어졌나

구두끈은 풀어졌겠지

고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행이다

고역을 불행에 합치면

한결 간결해질 삶

이미 그럴 패배도 있을 것이다

누구,누구는

모른 채에서 살고 있다

좌절이다

그래도 모른 척 지나간다

방관보다 훨씬 가벼운

좌절 무게,

나는 얼마 멀지 않는 생각이다

 

 


 

 

황성용 시인 / 안내

 

 

한 사람씩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럿이 몰려 있다

장작불 주변의 집단, 명칭은 뭘까,인 력 사무소?

그들의 그런 집합들이 계속 이루어져 있는 일상의 모습은

새벽의 사회이다

새벽은 너희들만 가지는 특권

해가 곧 떠오를 것이다 화려한 색채를 짚으며 한 올 한 올

네 생을 얽어맬 것이다

힘들어서 슬펐던 기억이 많았지만

너덜너덜했던 옷깃의 모서리를 싹둑 잘라줄 것이며

앞으로 모든 근심을 집 청소하듯 밖으로 내어 주면서

주인으로 맞이해줄 것이다

화롯불처럼 온기가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터를 닦다가 모든 발들이 원기를 받아서 진군하는

점령의 시간을 맞출 것이다

그리하였다

아침 해에 너희들의 무력한 궁색이

밝게 빛나는 것이다

행여 그 사람들 중 일감을 못 받아 다시 집으로

들어갈 일은 없으니

어지럽게 흩어진 운동화의 발자국과

짐 가방 내려놓았던 흔적들은 칼바람에도 끄떡없었다

그런 안내를 받았다

 

 


 

황성용 시인

1966년 전남 해남 출생. 충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2015 미래시학 신인상. 2017년 《광남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미련 없이 밤』 『햇볕 그 햇볕』. 현재 전남 목포시청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