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배우식 시인 / 바닷가 피아노 외 6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10. 08:00
배우식 시인 / 바닷가 피아노

배우식 시인 / 바닷가 피아노

 

 

하얀 눈 바닷가로

고요 켜고 내려온다

 

내 등을 두드리는 눈,

돌아보자 손을 내민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연탄한다

 

라라라 라라랄라

리듬 타며 들썩거리자

 

물고기도 뛰어올라

함께 환희 끌어당긴다

 

이 풍경,

내 안의 벽에

오래도록 매단다

 

 


 

 

배우식 시인 / 달빛 연못

 

 

절벽에서 뛰어내린

계곡물이 부서진다

 

비우며 흘러가는

물소리가 종소리다

 

저 소리

또 한 번 굴러

떨어져도 생생하다

 

물소리 산빛 두르고

끝내 닿은 내 안의 연못

 

바닥까지 투명하게

달빛을 쏟아낸다

 

비어서

가득한 둘레

포근하다, 달빛 연못

 

-시집 <낙타>에서

 

 


 

 

배우식 시인 / 돌에서도 꽃이 핀다

 

 

누군가의 발에 차여

바닥으로 떨어지는 돌

 

천 번째 나뒹굴며

천 번 울음 삼키면서도

 

밤마다

개화를 꿈꾼다,

돌 내부는 대낮 같다

 

저 돌은 자주색 꽃잎

상상으로 연신 펼친다

 

한순간 날아오를 듯

피어나는 제비꽃 하나

 

울음이

환히 깊어지면

돌에서도 꽃이 핀다

 

-시집 <낙타>에서

 

 


 

 

배우식 시인 / 사월의 나뭇잎

 

 

갓,

 

태어난 아이의

가느다란 손금을 한

연둣빛

 

 

해와 별,

바람과

달의 말을

받아 적은

 

 

저 손은

작은 경전이다

 

 


 

 

배우식 시인 / 장난감 자동차

 

 

멈출 듯

멈출 듯이,

바퀴가 굴러가요.

얼마나

남았을까요?

내 몸속 사각 건전지.

이 세계

환해질 때까지

달빛 실어

나를래요.

 

 


 

 

배우식 시인 / 성냥

-아내에게

 

 

불꽃 품은 기다림이

어디 그리 쉬운 건가

 

기회를 찾느라고

앙상해진 나의 몸통

 

한 순간

당신을 위해

남김없이 태우겠네

 

 


 

 

배우식 시인 / 어머니를 조각하다

 

 

1.

조각도 닿는 순간 연한 꽃빛 번져온다

해맑은 웃음 같은 매화꽃잎 펼쳐주고

꽃마다 고봉밥처럼 별빛 가득 새긴다

 

배경으로 오름 새기면 뭔가에 취한 듯이

새김칼 큰 힘 받고 학 형상 파나간다

어느새 다리 쭉 뻗고 높이 나는 한 여인

 

저 산 위 한쪽에는 만월 하나 띄워놓고

여백으로 달빛 같은 목소리 쏟아진다

여인의 진솔 버선목도 선명하게 보인다

 

2.

저 목판에 새겨놓은 풍경이 날 포옹한다

오래 안은 품속에서 어머니가 만져지고

꽃처럼 내 안에 가득 사모의 눈물 피어난다

 

 


 

배우식 시인

2003년 《시문학》,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문학박사).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외 다수. 중앙대문학상 등 수상. 시 「북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각각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