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외현 시인 / 바다에 꽃을 심다 외 2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11. 08:00
이외현 시인 / 바다에 꽃을 심다

이외현 시인 / 바다에 꽃을 심다

 

 

파도가 무너지는 밤에

토담이 쿨럭쿨럭 몸살을 앓고

주인 잃은 초가집은 맥이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가느다란 문살이 바람에 떨고

녹슨 대문은 삐걱삐걱 목쉬게 울고

초가지붕에는 잡초가 한가득

마당에는 소문들이 술렁인다.

어린 참새가 비를 물어오면

가지마다 하얀 감꽃이 피고

선착장에 아른거리는 그림자가

너울너울 바다에 꽃을 심는다.

 

-시집 『바다에 꽃을 심다』에서

 

 


 

 

이외현 시인 / 나른한 오후, 갸르릉 끼잉낑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일격을 가하자

숨죽이고 있던 토사물이 주르륵 쏟아진다.

털이 엉겨 붙어 눈썹 커튼을 친 강아지가

한쪽 다리를 절며 터진 오물 주변을 맴돈다.

고양이가 갸르릉거리며 강아지를 위협한다.

강아지는 달아났다가 이내 끼잉낑 다가온다.

고양이가 한 번 더 이빨을 세워서 위협한다.

강아지는 더 멀리 달아났다가 다시 끼잉낑 다가온다.

어미가 버렸는지, 제가 집을 나왔는지,

주인에게 쫓겨났는지는 알 수 없다.

고양이는 몇 개의 생선 뼈와 햄을 주워 먹고

빳빳한 수염 내리고 치켜세운 꼬리 내리고

슬며시 물러난다.

물러가면서 자꾸 돌아본다.

모퉁이를 돌면서 또 돌아본다.

 

 -시집 『바다에 꽃을 심다』에서

 

 


 

 

이외현 시인 / 눈 밖의 너

 

 

눈이 닫히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눈동자 굴리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더, 더, 많이

매일 운동회 구호 난무하는 일상이다.

태어나서 들은 말이라곤 이 몇 마디뿐

 

갈기 휘날리며 찬바람에 눈물 흩뿌리며

목줄이 당겨지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고

채찍이 가리키는 곳으로 부리나케 달린다.

고삐를 죄며 워워 하는 곳이 목적지다.

채찍과 속도의 비례가 무너진 봄의 한날

버려지고 내팽개쳐진 굴레를 벗어던지고

고개 떨구며 내려다본 헤진 발굽 아래서

내게 밟혀 목이 꺾인 노란 비명이 들린다.

 

눈이 열리니 비로소 소리가 들린다. 힘없이 구부러진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3월호 발표

 

 


 

이외현 시인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안심하고 절망하기』, 『바다에 꽃을 심다』. 전국계간지작품상,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계간 《아라쇼츠》 부주간. 〈막비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