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시인 / 일인분이 일인분에게 외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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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시인 / 일인분이 일인분에게
나는 일인분에 애착이 있네.
일인분의 태, 일인분의 생 일인분의 숨, 일인분의 결
일인분, 일인분, 일인분, 그 온전한 자립이 황금 비율 적립을 만드는 장엄 풍광의 메아리, 나는 그런 일인분에 애착이 있네.
내가 그대에게 일인분을 내어놓는 건 나의 모두를 내어놓는 것
죽을 지경, 거기서 나는 탄생하는가. 생명의 생명을 지니고 화창하게 번창하는 일인분 삶의 매혹 속에 밀착해가는 일인분!
김은정 시인 / 나팔꽃 잔
나팔꽃을 잔으로 쓴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한 방울 두 방울 약물로 떨어지는 산정의 기운을 두근두근 간절히 받아 안기에 나팔꽃은 제격의 잔이다.
청산이 자신의 즙을 바위 사이로 조심조심 내보내는 신비 여기에 예를 갖추려니 나팔꽃은 곧장 내 발등을 타고 올라와 상기된 자신을 퍼 올려 승천할 기세다.
산과 물과 바위, 그리고 나 나팔꽃잔 그 한 잔의 마당이 있어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만나 복을 짓는다.
이제 잔에 불을 붙일 차례인가. 극진히 타오르도록.
김은정 시인 / 황금 언덕의 시
한 여자가 걸어간다. 이 지상에 도착한 복잡한 하오의 표면을 자신의 하이힐 굽으로 똑 똑 똑 두드리고 있다.
거대한 성문처럼 지표가 열리고 그 내부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발굴 같은 기적이 줄 줄 줄 나올 것 같은 예감이다.
겹겹의 우주가 쌓여 있는 층층의 신비주의
정령이 에워싸고 있는 이 세상의 핵 가운데 핵 씨앗처럼 그녀는 북두를 조금 빗겨 난 위치에서 사랑으로 가득한 두루마리, 그 영혼의 소슬 기둥 자주적으로 곧추선 시곗바늘처럼 움직이고 있다.
초가을 황금 언덕을 오르는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기념하는 한 그루의 신단수다. 에르메스 핸드백을 든 별자리 같기도 한 듯 지체 높게 나아갈 길을 걸어가는 백두의 사제다.
그녀의 진주산 비단 목도리가 그녀의 날개처럼 살아 펄럭인다.
비로소 찬란한 절정의 때를 만나고 있는 그녀의 숨결이 보란 듯 이 세상 정면 잠금장치를 푸는 시간 유서 깊은 파텍 필립의 침향을 더한다.
신림 같은 황금 언덕을 걸어가는 그녀 우주의 태극 원반 위에서 세수하고 탁족도 그리던 그 지문으로 맞은 행복한 오늘!
김은정 시인 / 사리
죽음이 구구절절 함축해버린다 애증의 구구절절 기쁨의 구구절절 설움의 구구절절 길고 너덜너덜한 구구절절 간추려버린다 무덤조차도 무슨 연으로 남아 혼을 시끄러이 할까 나날의 방랑 사연 지글지글 장작 지피고 한 티끌 연도 없이 활활 태워 불의 혓바닥에 소유를 터는 이륙의 자리 진정 허심으로 일어서는 탈속이라면야 너는 뭣 하러 남았니 모든 고리 끊어 해탈이라면야 너는 뭣 하러 남았니
김은정 시인 / 나의 아침 식사는 햇살 스테이크
나의 아침 식사는 수리수리 햇살 스테이크 예멘 모카 혹은 하와이안 코나를 곁들이는 스스로 맑고 눈부신 야생 천지의 대자대비
아직 한 번도 쨍쨍함과 반짝임을 허송한 적 없는 천생 햇살 지중해 하늘색 칼로 조금 잘라다가 다소곳 꽃구름 소반 위 세한도 쟁반에 올려놓는다.
이 햇살 속의 현무, 이 햇살 속의 주작, 이 햇살 속의 청룡, 이 햇살 속의 백호,
오색 만정 무지개로 궁궐 짓던 해모수의 지문이 있고 복락 지평 열고자 거서간으로 달려온 황금알 빛이 있고 새록새록 곡식을 키워낸 이랑과 말달리던 광야가 있다.
온 우주의 화창한 기운이 내 속에서 낭랑하다. 거룩한 환대, 미식 조찬의 기쁨!
김은정 시인 / 채찍
새들이라고 날기가 수월할까 포르르 날다 미끄러지고 푸드득 튀어 오르다 거꾸로 내리 꽂히면서 열망을 엎지르기도 하리라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얼마나 후려쳐야 하는지 그들은 매일 뼛속을 비운다
김은정 시인 / 타타타 크루즈 내가 내 앞을 만든다. 지금 나는 주홍빛 배흘림기둥으로 눈부신 말씀 메가폰을 든 하늘 내려온 자리와 함께다. 외장용 하드 모양의 테라스 카페 보리밭 두렁 같은 너울 그림자 위에 앉으니 화살처럼 뾰족한 수, 정면의 빛살이 나의 망루 콧구멍을 뚫으려고 다가온다. 들떠라! 험난한 칠흑 바다에서도 결단코 나는 내 앞을 내놓을 수 없다. 마침내 나의 의지가 휘영청 뜬다. 금방망이 모양의 정오가 열어주는 갓, 지붕 광활한 해제 이 우주 사자 직진이다. 한동안이 흐르리라. 크어흥!
김은정 시인 / 흑점
흑임자 무늬 수 놓인 청량 배추 잎사귀 먹을까? 버릴까? 두 갈래 결정으로 흠흠!
이때 맞은 편 차가운 거울 속 늠름한 사람 주근깨 얼굴 거짓 없으니 엄연한 성상이라,
깨씨무늬 청량 배추 중륵을 닮아 난색이지만 결핍과 실조, 과잉과 초과, 그 불량 증세로도 불꽃 열의 노출하는 모양이 단연 태양 같다.
금시조와 삼족오를 모셔와 정중하게 질문하며 근기와 용기로 전하는 신진 견식 아우르니 결점 아닌 강점으로 천운을 함유한 흑색 씨,
신화적 표상이 돌보는 종자 잉태한 이 천심의 점, 이 호신의 증표!
웹진 『시인광장』 2023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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