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우림 시인 / 뼈만 있는 개 외 6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15. 08:00
이우림 시인 / 뼈만 있는 개

이우림 시인 / 뼈만 있는 개

 

 

도라산국제역에 가면

문 없는 집이 있다

개집이다

그 집에서 개가 살았는지 또

개가 살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개집이다

철망으로 이음 된 뼈대가 개의

형상으로 있기 때문이다

개의 앞발은 집에 닿아있다

발톱은 없다

발톱 긁힌 자국만 벽에

사선으로 남아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혼자일까

집안에 그의 가족은 있었을까

그의 등에 내 손을 대어본다

애간장 녹는 소리가 바람으로 다가온다

희미해지는 갇힌 자들의 소리가

그의 뼈로 서 있다

 

도라산국제역에 가면

바람도 검문을 받는다

 

 


 

 

이우림 시인 / 관계

 

 

욕실에 내던져진 운동화 세 켤레

말똥말똥 눈을 뜨고

서로 바라본다

 

비누 풀어 거친 솔로

빡빡 씻어보지만

좀처럼 속을 허락하지 않는

운동화와 나의 관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어

세탁기 속에 처박아넣고

버튼을 누른다

 

우당탕탕

또다시 우당탕탕

 

속을 허락하기 전까지 모든 관계는

그렇게 시끄러운 것

 

― 시집 『여자가 바다를 찾을 때는』(북인, 2023)

 

 


 

 

이우림 시인 / 동어가 먹고 싶다는 게지

 

 

숭어 새끼 동어가 카톡 도마에 오른다

동어는 계집애가 초경보다 깊게 묻었던

두려움을 꺼내 자리바꿈을 한다

두려움 속에는 그리움이 찐득찐득 묻어 있다

찐득찐득 달라붙은 어머니는 눈만 꿈뻑거린다

나보다 더 촌스러우나 촌스럽지 못한

나보다 더 어리나 그보다 더 어린이 같은

영특하나 나처럼 영악스럽지 않은

젊은 어머니가 동어 눈깔로 끔벅거린다

 

부뚜막 아궁이 앞에서

거무튀튀 막된장에 동어를 쿡 찍어  

야금야금 찰지게 먹던 어머니는

고양이가 변신한 거라 여겼다는

정시인

동어에 군침을 놓는다

그녀는 발톱 숨긴 살쾡이다

 

동어는 묵은지에 싸먹어야 제 맛이라며

어린 동어 한 마리를 묵은지에 돌돌 멍석 말아

볼퉁이 요동치게 씹던 내 어머니

뻘건 김치 국물이 주르르 길을 내자

싸리 빗자루 쓸 듯 손바닥으로 쓰윽 닦고선

ㅅㅜㅇㅡㅂ 쩝 오독오독 조사 먹는

어머니가 드라큐라로 둔갑 한 줄

오줌을 찔끔 오금을 덜덜거렸던 가시내는

꼬리 아홉 달린 흡혈귀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

곰삭은 체증처럼 시나브로 꿈틀거리는 게지

바위가 됐다 웅덩이가 됐다 그렇게 흘러가는 게지

카톡 도마에 오른 섣달 동어가 古傳이다

 

 


 

 

이우림 시인 / 돌확

 

 

앞 마당에 돌확 하나 엎어져 있다

들깨를 갈다 말았을까

엎어져 있는 돌확 속에서

진한 들깨 냄새가 퍼진다

들깨 냄새 속엔

여름날 뙤약볕 쏟아지는 소리도 들어 있다

 

돌확을 돌려 눕힌다

늘 젖어 있던 어머니의 정강이 뼈

아직도 젖어 있다

새벽마다 호미 들고 달려가시던 미루나무 숲

어둠을 이고 나오던 버섯들

오늘 따라 매운 고추장 버섯탕으로 피어나고

그 자리에 돌확 대신 누워 있는

몸빼 하나

 

젖은 돌확을 앉힌다

어머니의 몸빼 가득 물을 담고 부레옥잠과 수련을 띄운다

뙤약볕에 숨이 차고

소낙비에 숨죽이는

부레옥잠과 수련

누런 잎 떨어지고

살 오른다

꽃대 끝에

햇살이 푸근하다

 

앞마당에 돌확 하나 웃고 있다

 

-시집 <상형문자로 걷다>에서

 

 


 

 

이우림 시인 / 다육식물 몇 놈으로 인해

 

 

빈 장독대 위

잠들지 못하는 다육식물 몇 놈

눈곱도 없는 말똥말똥한 잎들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여린 것이

벌레 똥만 한 저 여린 것이, 지독하다

지독한 게 어디 사람이나 짐승뿐이겠는가

낯선 집에 강제 이주 당했을 때도

사막의 날을 버티느라 진땀을 뺏을 것이고제 체온을 끌어당겨

북방의 날들을 무너뜨리기에 온 힘을 모았을 것이다

햇살과 구름 사이에서

내 안의 슬픔들이 한순간 댐처럼 무너진다

강을 내고 감정의 패망을 불러들이는 동안

저것들은

몇 겁의 전생을 돌아돌아

이름 지어지지 못한 세상의 모퉁이를

푸른 잠언으로 가득 채우려 한다

내가 읽었던 경서(經書)들은 과연

얼마나 많은 눈들의 감시를 받으며 늙어갈까

오늘도 나는 저 작은 식물의 침침한 인생사를 어루만진다

조리에 물을 가득 채워

고소한 햇살 몇 줌 덤으로 던져준다

 

-시집 <상형문자로 걷다> 2012년 문학의전당

 

 


 

 

이우림 시인 / 허름한 개

 

 

버스를 타고 가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개 한 마리 만난다

등뼈는 도드라지고 배통은 헐렁인다

뼈다귀 하나 얻어먹지 못했나

앞다리에 끌려가는 뒷다리는 더욱 무겁다

잎사귀 하나 흔들지 않는 가로수에

몸을 기댄다

스며든다

환도뼈 같은,

고관절 같은,

구멍 난 교회지붕을 손보다

바닥으로 떨어져 앉은뱅이가 된 아버지

진순이도

사다리에 깔려 엉덩이뼈가 주저앉고

앉은뱅이가 되었다

그날 이후,

사다리도 짐자건거도 앉은뱅이가 되어 뒤꼍으로 들어갔고

대문간 변소엔

아버지가

앉은뱅이가 되어서 만든 앉은뱅이 나무의자 변기가 놓여졌다

짐자전거에 녹이 슬고

진순이도 향나무 곁으로 돌아가고

앉은뱅이 아버지도

앉은뱅이 나무의자 변기와 함께 연기가 되었다

허름한 개 한 마리

늙은 가로수길로 스며들고 있다

 

 


 

 

이우림 시인 / 문장으로 지은 집

 

 

스토리텔링적 디자인의 그가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집'을 추천한다

공간 속의 공간을 통한 비정형성

자신만의 건축 철학과

문장으로 지은 집

건축가 장순각의 열정은

몸 밖에서 산란한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소화되지 못한 책 책 책

숙제처럼 거북하다

 

내 친구 석준이도 건축가다

파주 출판단지에서 사옥 여러 채 짓고 또 짓는다

백 년 기둥이라고 했다

기둥의 원형은 나무만이 아니다

삼천 킬로를 날아온 중부리도요의

고단한 날갯짓도 아니고

굼벵이로 목청을 다듬은 쓰름매미도 아니다

아니고 아니어도 아닌 것이 아닌 기둥의 원형

베끼지 못한 시 한 편 뒤척인다

 

벽돌공장 공장장도 집을 지었다

뼈를 흔들어 찍은 벽돌 차곡차곡 올리자

할아버지 방이었고

부엌 위 다락방은 비밀이 많았고

갈래머리는 갈래머리를 낳았고

지적장애 현이는 혼자가 됐고

다락방 위로 아버지가 가고 어머니도 가버렸고

빈집을 예감한 갈라진 목기가 다락방에 굴러다녔고

벗겨진 옻칠은 흙이 되고

현이가 지고 갈 물푸레나무가 되었고

 

그늘이 있는 곳에는 문장이 자란다

 

-『고양문학』 2015, 제44호 <시>에서

 

 


 

이우림 시인

1963년 전북 김제 출생. 본명 이미선. 1995년 《시와 시인》으로 등단.  2012년 《문학과 의식》 수필 등단. 시집 『봉숭아꽃과 아주까리』 『상형문자로 걷다』 『허름한 개』 『당신에게 가는 길을 익히고 있다』 『여자가 바다를 찾을 때는』. 포토에세이 『찔레꽃을 울리다』를 출간. 모윤숙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고양지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