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나해철 시인 / 나달지 가오 외 7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16. 08:00
나해철 시인 / 나달지 가오

나해철 시인 / 나달지 가오

'나달지 가오'

'나달지 가오'

울부짖는 소리가

깊은 밤 어둠을 찢었다

밤별들이 파르르 얼어붙고

곤히 잠들었던 산모롱이가 으스스

몸을 떨었다더라

흙구덩이에 묻히러 가면서

짐짝처럼 묶여 실린 트럭이

나서 자란 신작로에 들어서자

당숙은

자기 마을 모퉁이에 대고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더라

전남 나주군 세지면 동창교 양민학살

136명,

전남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 양민학살

153명,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덕룡산

동박굴재 양민학살

28명,

전남 나주시 봉황면 용전리 지동마을 양민학살

6명,

보도연맹 희생자들 미상

살인자들은

세지면과 월야면은

국군 제 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

중대장 권준욱(권준혁, 권영구)대위일행,

봉황면은

나주경찰서 특공대원일행,

지동면도 경찰일행

1960년 5월 24일자 전남일보 기사에

세지면에서

살인자들은 환영하는 부락민들을 모아

학살하였고

유부녀, 처녀를 가르지 않고 능욕하였다

거부하는 처녀를 단검으로 죽인 후

시간을 하였다고 보도 되었다

당숙은

보도연맹에 들어 있다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흙구덩이에 묻히셨다는데

쉬쉬하는 수십 년 세월에

'나달지 가오'

'나달지 가오'

비명소리만 태어나고 자란 산천에 남겼다더라

나주 영산포 가야산 바람은

이렇게 불어싼다는 것이다

'나달지 가오'

'나달지 가오’

 

-<시로 쓰는 민간인 학살>  나주 주민학살

 

 


 

 

나해철 시인 / 숲

 

 

황혼의 숲에서

당신은 나무이고

나는 어둠이었네

 

숲으로 가서

고요히 나무를 껴안는

어둠이었네

 

어둠에 깃들여

부드러이 흔들리는

나무였네

 

당신과 나는

장엄한

황혼의 숲이었네

 

 


 

 

나해철 시인 / 한데를 바라보며

 

 

너를 만나고 싶다

그래 한점 불씨를 던지면

일어서는 불꽃이 산하를 덮는

뜨거운 날이 왔으면 좋겠다

오래 헤어진 너와

대륙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으로

가슴메인 너와

바닷바람 소금기에 가슴어린 나와

쓰라린 것들인 우리가

만나 껴안고 살을 섞고 싶다

만나면 풀어질 천년 한스러움 위에

끝까지 치솟는 그리움의 생수위에

쐐기처럼 폐유처럼 떠도는

답답한 것들을 걷어내고

지금 너를 만나고 싶다

푸른 하늘 맑은 바람속에

지금 너를 만나고 싶다

 

 


 

 

나해철 시인 / 시인 별

 

 

별을 누가 바라보나

바라볼 때만 별은 빛나는 것

사랑이여

때때로 시인인 나는 별이다

한 봉지 라면보다

한 그릇 콩나물 국밥보다 못해

누구의 배고픔을 덜어줄 수는 없으나

온 밤 홀로서

혼신의 힘으로 은빛을 자아내는

별이다

사랑이여

그대가 따뜻이 보아줄 때

나는 별이다

 

 


 

 

나해철 시인 / 실없이 가을을

 

 

밥집 마당까지 내려온 가을을

갑자기 맞닥뜨리고

빌딩으로 돌아와서

일하다가

먼 친구에게 큰 숨 한 번

내쉬듯 전화한다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니

좋다고

불현듯 생각한다

가을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와 있어서

그를 그렇게라도 보내게 한다

 

 


 

 

나해철 시인 / 숨소리

 

 

도심 빌딩에 앉아

듣고자 한다

먼 산 가득히 나무들이 눈 터뜨려

연둣빛 잎 내는 소리

청춘의 시간 속에서

열렬히 서로를 탐하는

연인들의 입맞춤 소리

콘크리트 방에서

눈감고 귀를 모아본다

눈 녹은 물 사이를

헤엄치는 버들치 산란하는 소리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그리워 낮부터

마시는 한잔 소주의 목 넘어가는 소리

들어보고자 한다

살아 있는 소리

멀리서도 살아 있는 모든

숨소리

 

 


 

 

나해철 시인 / 팽목항에서

 

 

지극하기를

나보다 누가 더해서

봄이 온단 말인가

누가 봄을 원했다고

3월이 오고

또 4월이 온다는 말인가

 

내 애통함보다

더한 무슨 간절함이 있어

봄꽃들이 피어난다는 말인가

 

봄이여

그대를 부른 자와 함께

너희들끼리 화창하라

 

나는 그냥 겨울 안에 있겠다

그리운 이 머물고 있는

차가운 바닷물 속에

이대로 잠겨 있겠다

 

 


 

 

나해철 시인 / 시인 별

 

 

별을 누가 바라보나

바라볼 때만 별은 빛나는 것

사랑이여

때때로 시인인 나는 별이다

한 봉지 라면보다

한 그릇 콩나물 국밥보다 못해

누구의 배고픔을 덜어줄 수는 없으나

온 밤 홀로서

혼신의 힘으로 은빛을 자아내는

별이다

사랑이여

그대가 따뜻이 보아줄 때

나는 별이다

 

 


 

나해철 시인

1956년 전남 나주 영산포 출생. 전남대 의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 의학박사.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산포」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무등에 올라』 『동해일기』 『그대를 부르는 순간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손』 『긴 사랑』 등. 현재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 중. 현재 나해철성형외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