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시인 / 하늘의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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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 / 하늘의 집
전깃줄에 닿는다고 인부들이 느티나무를 베던 날 아파트가 있기 전부터 동네를 지키던 나무는 전기톱이 돌아가자 순식간에 쓰러졌다 옛날 사람들은 가지 하나를 꺾어도 미안하다고 나무 밑동에 돌멩이를 던져주었고 뒤란 밤나무를 베던 날 아버지는 연신 헛기침을 하며 흙으로 그 몸을 덮어주는 걸 보았는데 느티나무의 숨이 끊어지자 인부들은 그 커다란 몸을 생선처럼 토막내 싣고 갔다 이파리들의 그늘에 와 쉬어가던 무성한 여름과 동네 새들이 깃들이던 하늘의 집을 그렇게 어디론가 싣고 가버렸다
이상국 시인 / 산속에서의 하룻밤
해지고 어두워지자 산도 그만 문을 닫는다
나무들은 이파리 속의 집으로 들어가고 큰 바위들도 팔베개를 하고 물소리 듣다 잠이 든다
어디선가 작은 버러지들 끝없이 바스락거리고 이파리에서 이파리로 굴러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새들은 몇 번씩 꿈을 고쳐 꾼다
커다란 어둠의 이불로 봉우리들을 덮어주고 숲에 들어가 쉬는 산을 별이 내려다보고 있다
저 별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기나 하는지 저항령 어둠 속에서 나는 가슴이 시리도록 별을 쳐다본다
이상국 시인 / 별
큰 산이 작은 산을 업고 놀빛 속을 걸어 미시령을 넘어간 뒤 별은 얼마나 먼 곳에서 오는지
처음엔 옛사랑처럼 희미하게 보이다가 울산바위가 푸른 어둠에 잠기고 나면 너는 수줍은 듯 반짝이기 시작한다
별에서는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별을 닦으면 캄캄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별을 쳐다보면 눈물이 떨어진다
세상의 모든 어두움은 너에게로 가는 길이다
이상국 시인 / 살구꽃
살구꽃이 피었습니다
서문리 이장네 마당
짚가리에 기대어 피었습니다
지난 겨울
발시려운 새들 찾아와
앉았다 간 자리마다
붉은 꽃이 피었습니다
이상국 시인 / 집은 아직 따뜻하다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 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에서
이상국 시인 / 새벽강에서
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무와 풀들이 서로 모르게 몸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있다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늘도 강에 내려와 찬물에 아랫도리를 씻는 새벽 누가 밤새 울던 소 같은 밤을 강가에 내다 매고 돌아간다 어둠을 내다 버리고 돌아간다
이상국 시인 /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감자를 묻고 나서 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 뒷산이 꽝꽝 울리던 별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얼음옷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 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워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끓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 마당에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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