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야 시인 / 아침 호수공원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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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야 시인 / 아침 호수공원
얼마나 숱한 슬픔 밤새 흘러들었는지 희붐한 아침 물낯서 눈물 냄새가 난다
마음이 수런대는 날 아침 물가로 가면
서러운 어느 창은 서서 밤을 걸어오고 세상엔 슬픔 많아 흰 수선화 핀다
마음이 수런대는 날 아침 물가로 가면
고단한 몸들은 다 어디서 비 그을까 어두운 귀 기울이면 작은 새 울음소리
마음이 수런대는 날 아침 물가로 가면
호수 닮은 하늘도 하늘 담은 호수도 터진 발 내려놓는 된바람도 순하다
마음이 수런대는 날 아침 물가에 가면
-시조집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류미야 시인 / 수련
움푹 팬 마음을 윤나게 닦아 널었습니다
쏘던 햇살 바람도 눈매가 순해졌습니다
공손히 중심에서 모두 손등 포개는 한낮입니다
류미야 시인 / 매화나무 가지 위에 뜬 달 눈 아닌 마음으로 본다는 말 믿게 됐네 지나가는 것들에 찢기기도 하면서 마음이 차오를수록 너도 눈감았겠지 맹목으로 눈멀어 숱한 날 더듬거려도 겨울나무 터진 등 끝내 잊지 않았지 그런 너, 크게 웃는 걸 나 본 거야 꽃눈 돋은 날
류미야 시인 / 어두워지는 일 저녁이 사력을 다해 밤으로 가고 있다 떨어진 잎새 하나 함께 어두워지는 초겨울 가로등 불빛 아래 많은 것이 오간다 낮을 걸어 나오면 밤이 될 뿐이지 저무는 것들의 이마를 짚어본다 불현듯 낡아 있거나 흐려지는 것들의 서리 낀 풀숲에 겨우 달린 거미줄이나 명부 같은 우물에도 이 밤 별은 뜨리니 죽도록 어둠을 걸어 아침에 닿는 것이다 굳게 닫힌 바닥을 발로 툭툭 차면서 다친 마음 바닥에도 실뿌리를 벋어본다 겨울이 오는 그 길로 봄은 다시 올 것이다
류미야 시인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마법의 주문에 꽃들이 폈다, 졌다, 한 봉오리 "숨셔도 돼?" 하니 까댁이며 "응" 하는 꽃 그 꽃말 - '서로 숨 쉬게 하는 것' 오늘서 처음 알았습니다
류미야 시인 / 연애
그렇지, 놀음이지 놀음 아닌 무엇이리
더불어 그리는 데 재는 마음 없으니
등 미는 겨울바람도 네게 가는 지름길
저물도록 해도 잊고 꽃 지도록 봄도 잊고
오로지 그 얼굴, 그 얼굴만 꽃이 되는
스무 살 풋마음 아닌 것 감히 사랑도 아니리
류미야 시인 / 갈봄 없이, 저 꽃
제비꽃을 알아도 몰라도 오는 봄*
그 봄사 오든 말든 제비꽃 피네
다 떠난 어느 봄날도 아직 피는 중이겠네
구절초를 알아도 몰라도 가는 가을
그 가을가든 말든 구절초 지네
다시 올 어느 가을도 아직 지는 중이겠네
*안도현 시 「제비꽃에 대하여 첫 부분에서.
-시집 <눈먼 말의 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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