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일 시인 / 넥타이를 매다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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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일 시인 / 넥타이를 매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목을 조른다 울컥 솟아오를지 모를 못난 격동을 누르기 위함이다 천천히 매듭을 엮어 결박 한다 밤새 풀려 불퉁거리는 야성을 묶는 거지 적당한 힘으로 조이고 기절한 듯 잠들었던 이성 후두둑 일깨우는 절차 가끔은 풀어두고 싶은 자유를 동경하는 방랑성에 손들어주고 싶기도 하지만 함께 살아간다는 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어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때에 하기위해 햇살이 무르익기 전 나는 넥타이를 묶는다
강시일 시인 / 원점
기다림 없는 서경주역 연통도 없이 지각한 기적소리 공중 아무곳으로 던져지는 대합실 안내방송 따라 어디쯤에서 허우적 귀가하는 허수아비군상들의 발소리 플렛폼이 시끄럽다 바람길 따라 떠다니는 양떼구름처럼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뒤섞여 제각각 퍼즐을 맞춘다
석양은 허리를 구부리고 서둘러 하루를 거두고, 새처럼 가볍다가 물새처럼 무겁다가 삐걱이는 오늘의 관절 어디쯤 장미 울타리 어두워지는 모두가 돌아오는 그곳 향기 헛헛한 허기, 공전하는
어제처럼 더 오래 전의 목소리로 무궁화가 피었다 진다
강시일 시인 / 북부해수욕장 야경
하루치 태양이 몰락하면 검은 익명으로 위장한 바다 속 포스코 조명등 뒤집어진 세상이 춤을 춘다 더위에 지친 청춘들이 날치처럼 바다로 뛰어들고 혈기찬 별들도 바다에 발을 담근다 소리들이 무리지어 파도를 일으키고 한계령 조개구이 모닥불에 탁탁 침을 뱉으면 은빛 술잔 사랑노래 부르며 연거푸 고꾸라진다 결국 묵빛 아스팔트가 일어서고 달을 매단 가로등조차 휘청거리면 검은 바다 중심 잃고 울컥 서러움 토한다 수평선 빨갛게 찢어질 무렵 파도는 가까스로 집을 찾는다
강시일 시인 / 이별 공식
그 뜨겁던 여름이 가고 오색 낙엽 손가락 벌려 작별 고하네 당신의 혀에서 비롯된 내 귀에 달디 단 내음을 전했던 기억에서 색 바래가는 언어들 하얀 눈 속에 포장된 채 어둔 굴 안에서 동면하고 있건만
봄이 오면 다시 황토색으로 일어나 부끄럽게 매화나 피워 올리려나 더 오래 기다렸다가 노랑 파랑으로 채색한 가면 쓰고 탈춤 추는 바람개비 되려나 한 울타리에서 단맛으로 영글던 포도송이 다른 날 또 다른 곳에서 각자 꽃 피우는 것
강시일 시인 / 세상을 의심하다
세상이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사건건 비밀번호를 호명한다 내 통장의 입을 여는 입구에서 비밀번호를 요구한다 컴퓨터로 거래하는 일도 인내와 기억의 창고를 헤집게 하고 자식에게 송금 못하는 일도 핑계가 된다 사무실에 들어가는 일도 비밀스런 일 곤한 다리를 끌고 귀가하는 현관 앞에서도 나만 아는 암호를 애써 불러내어야 된다 전화기를 들고 당신에게로 닿기 전에 비밀번호를 먼저 불어야 된다 도대체 비밀 아닌 일이 없다 내 비밀번호는 노출되고 세상으로 가는 비밀번호는 오리무중이다 하나로 뚫린 세상이 내게 요구하는 숫자의 마법 혈압을 무한궤도로 올린다 울화통을 부풀게 하는 비밀 없는 비밀세상 나를 궁지로 몰아붙이는 오늘도 내게 부여된 비밀번호를 요청한다 당신을 향한 비밀번호는 물론 닫혀있고 나는 자꾸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세상은 비밀 속이다
강시일 시인 / 틈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는 오끼나와 수례성을 본다
돌과 돌 사이 삼각 사각오각, 동그라미를 그리는 틈이 있다 이물질 없는잔잔한 헐거움 약간의 틈은 흔들림을 잡는 접착제가 되는데 경계면에 흙을 바르는 것은 흔들림을 부추기는 지렛대가 된다 우리 삶의 간극 먼지 쌓이는 세월만큼 익숙하게 습관의 벽이 된다 더러 이물질 없이 면과 면을 밀착하고 밀리는 만큼 당기고 달아나는 속도대로 따라붙어 종횡으로 가해지는 힘에 맞서는 이격거리 넉넉한 삶의 지렛대가 된다 당신과 나 사이 햇살과 바람이 드나드는 거푸집을 짓는다
강시일 시인 / 치약 머리에 바르지 마세요
수영장 벽에도 금지어가 남발되고 있다
일. 근무자 통제에 벗어나는 일은 마세요 이. 수영복 착용시 비눗물 사용 마세요 삼. 샤워 전에 입실 마세요 사. 노약자는 사우나 들지 마세요 오. 냉탕에는 수영복 마세요 육. 음식물 아무데서 먹지 마세요 칠. 치약 머리에 바르지 마세요 팔. 개인 소지품 분실책임 묻지 마세요 구. 수영장에서 뛰지 마세요
하세요 보다 흔한 마세요 마법 달리면서도 흠칫흠칫 멈추어서는 습관으로 자라 거꾸로 진화하는발육, 오늘 풀어야할 숙제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하세요로 둔갑시켜도 효력이 없는 저 마세요 문장들
눈길을 끌어모으는 박제로 날개를 달고 있다 마세요 없는세상은 생각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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