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조문경 시인 / 노루귀꽃과 토끼똥 외 7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24. 08:00
조문경 시인 / 노루귀꽃과 토끼똥

조문경 시인 / 노루귀꽃과 토끼똥

 

 

노루귀꽃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낙엽 위에

콩알만한 토끼똥 있다

 

갈색이긴 한데

푸른빛이 도는 것도 같고

참 예쁘다

 

만져본다

잘 말라 정말 가벼운데

나는 슬몃 웃으며 그 자리에 그대로 놓는다

토끼똥은 제 몸을 말려

바람에라도 굴러서

노루귀 뿌리에게 가려는

마음뿐인 듯 해서다

 

멈춰서도

걷는다

사랑은

 

제 자리에 놓자

노루귀꽃

하얗게 웃다

 

 


 

 

조문경 시인 / 몸속의 길

 

 

가마솥에 시래기를 넣고

장작불을 지핀다

얼마 후 굳게 닫힌 솥뚜껑 사이로

김은 새어나오며 들썩들썩거린다

웅크리고 있었을 물의 몸

쉐엑하는 소리를 내며

한곳으로 힘차게

하얀 기둥을 만들며 천장으로 올라간다

티비에서 본 토네이도 모양인데

그 기둥을 물속에 숨어 있던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때까지는 기다리고

어느 때까지는 자기도 모르는 채 가지고 살던

아궁이 불이 활활 타오르자

순식간에 이뤄낸 저길

여전히 솥뚜껑은 닫혀 있지만

물은 안 것이다

몸은 가장 절정일 때 길이 된다는 것을

천장을 감싸던 김이 흩어진다

 

 


 

 

조문경 시인 / 엄마 생각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404호 요양실

91세 된 할머니 엄-마-엄-마- 하며

콧물 훌쩍이며  운다

잠든다

 

 


 

 

조문경 시인 / 너의 가시를 존중하다

 

 

날카로운 가시 하나

잎사귀 몇 개

가시보다 지름이 조금 큰

노란 탱자

 

가시의 공격성에 대한 편견만 버린다면

스스로를 수확하기 위한

단출하고 완벽한 자세다

 

모든 완성의 길에는

보이던 보이지 않던 가시가 있을 것

공격하는 자에게만

상처를 남기는

 

하지만 보라

가을이 와 떨어진 탱자에는

가시가 없다

 

 


 

 

조문경 시인 / 삶

 

 

대문 나서자

유촌 할매 첫인사가

시어머니 똥 눴는가 묻는다

아니요로 시작해 이만저만하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복한다

병원가면 어머니 첫마디가

쥐 안부다

보일러실에 놓은

쥐약을 먹었냐고 묻는다

난 평생에 한번도듣지 않았던 안부로

어머니는 구십하나를 사셨다

똥과 쥐의 안부사이에서

 

 


 

 

조문경 시인 / 소쩍새 우는 밤

 

 

소쩍새 소리뿐인 밤이다

 

생전 시부모님

잠에서 깬 것인지

두런거리던 말소리

무슨 말씀 저리 많아

주무시지도 않을까 싶었는데

 

오늘 그 자리에 누워보니

별말이 아니다

소쩍소쩍 참 구슬프네 하고

한두 마디 더 했을까

 

소쩍새 소리뿐인 밤이다

 

 


 

 

조문경 시인 / 제비꽃

 

 

천둥과 비바람으로 벚꽃 졌다

어제만 해도 눈부심으로 사람들 열광했다

꽃잎 떨어진

 

고개 숙여야

볼 수 있는 거기 보랏빛 모으는

입술,

제비꽃

 

어제는 번개에 깨진 어둔 하늘

비바람의 살내 모았으리

오롯한

 

모든 발 돋음은

호흡 가쁘다

하나의 이상은 떨어졌고

땅의 명령은 지금, 제비꽃

도도함

 

 


 

 

조문경 시인 / 고양이와 나눠 먹다

 

 

군불 때고 남은 숯불에 고등어를 구웠다

그 파란 냄새를 맡고 길고양이가 새끼를 데리고

아궁이 근처까지 와 있다

부지깽이로 쫓으려다

어미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몸은 경계하는 듯한데 도망치지도 않고

 

올려보는 또렷한 눈

알맞게 익은 고등어를 석쇠에서 뚝

 

떼어 앞에 놓으니

새끼랑 맛있게 먹는다

그새 어둑어둑해졌다

 

 


 

조문경 시인

경북 상주 출생. 2002년 [삶글]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항상 난 머뭇거렸다』  『노란 장미를 임신하다』 『엄마 생각』 『모든 것에는 뒤통수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