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최예슬 시인 / 여자의 일생 외 6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26. 08:00
최예슬 시인 / 여자의 일생

최예슬 시인 / 여자의 일생

 

 

당신에겐 위험한 비밀도 털어놓겠어요

지긋지긋한 이별과 학살의 시대는 곧 종말할 테니

 

나는 남국에서 끌려온 전쟁의 포로

그곳은 털이 없는 동물들만 살고 있어요 그날따라 샐러드를 만들고 커피를 끓이는 집안일이

불편하고

진심을 말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작은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올드 타운에 있었고

예쁜 리본과 카드는 장만하기도 전이었습니다

 

이곳의 겨울은 너무 길고 춥습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엽서는 쓰지 못합니다 머리와 손이 마비되어 쓸 수도 그릴 수도 없어서

나를 알릴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추방된 시인에게 만년필과 양피지를 건네주고

당신에게 만들어줄 샐러드 재료를 준비하고

언덕에 앉아 염소에게 풀을 먹이고 알파카의 거친 털을 빗어줍니다

 

재판에는 죄가 필요합니다

출생, 여자, 독서, 산문시집 – 재판장은 죄의 목록을 읊어줍니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목록에 늘 빠져 있던 식상한 사내를 이야기합니다

수채화보다 유화를 사랑하는 그는 예술가 마을에 풍차가 돌아가는 건물에 은둔하죠

과거도 지금도 아닌 언젠가 일어날 일들을 말하는 습관이 있어요

종교도 국적도 없는데 이념과 정의를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를 사랑하진 않지만 청혼은 받아들일 수 있어요 누군가의 이념이 되는 것은 멋진 일이죠

 

저 여자를 당장 끌어내라!

죄인을 끌어내 교수형에 처하라!

 

성난 배심원들의 원성이 끊이질 않네요, 아직 끝이 아니에요

멍청한 사내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나요

 

내가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밴드에서 앙상블을 맞추는 동안

그는 벼랑 끝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뛰어내리기를 고민합니다

모르겠어요, 그의 색채는 빛이 나지만 얄팍한 회의주의에 젖어 있었고

곧 어른이 되면 부끄러워질 겁니다 어른이 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온 힘을 다해 사내에 대해 기억해내려 했지만 쓸데없고 어리석은 관용구만 떠오르네요

그는 지나가는 농부와 말과 소에게도 별명을 붙여주었지만

대부분 그를 공기처럼 바라보고 스쳐 지나가 낙담하곤 했습니다

 

나는 이민자가 아닌 죄인을 선택했습니다

사내는 지금쯤 남국보다 더 따뜻하고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 유화를 그리고 있을까요

어쩌면 물감이 녹아내려 붓을 꺾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지난밤 나에게 제3국행 기차표를 건네던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사랑을 고백해오던 시절보다

더 불안해 보이더군요 비극적인 시대는 위대한 예술가를 낳는다고 했던가요

 

이 재판이 끝나면 나는 분노한 배심원들의 손에 이끌려 화형장으로 가겠지만

내가 태어나는 날부터 나의 스케치와 메모가 죄가 되었다면

나는 죄인인 채로 청춘을 건너온 것일 테죠

 

미안해요, 이 페이지에는 아무런 볼거리가 없어요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요 사실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동화도 좋아요

어느 막돼먹은 상인에게 처녀작을 비롯, 몇 점의 자화상을 팔았지만 궁핍한 생계는 좀처럼

나아질 줄 모르는군요

그래요,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화풍이지만

어느 시절이나 낭만주의의 희생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죠

 

 


 

 

최예슬 시인 / 뒤늦게 열어본 서랍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호수 한 가운데 섬을 만들었다

담쟁이는 굴뚝과 지붕을 뒤덮었고

이끼가 낀 굴뚝에서 겨울 안개가 피어오른다

기차는 제 시간에 떠나간 적이 없고

모든 출발과 도착은 불분명한 채로

우리는 기억의 낱장을 건너간다

 

-시선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문학동네, 2017)

 

 


 

 

최예슬 시인 / 할리퀸의 우울한 스승들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이 순간에 더 적합할지 몰라

언어가 제공하는 이해 혹은 오해로

나는 실존주의자 혹은 험오주의자, 아니

한낱 정숙하지 못한 제자

 

오늘의 우승은 수에카 청년들

오렌지 나무로 장작불을 지피고 주워온 쌀알을 가마숱에 요리한다

물길에 사는 가재와 토끼와 꿩과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잡아

이것저것 섞어 넣고 빠에바를 만들어 먹으며 완성될 수 없는 축제의 밤을

교양 있는 여자들과 몰취미의 남자들이 뒤섞여 노래 부르지

 

"신들이여, 발렌시아에 더 많은 샤프란을!"

아니, 사프란을 조리할 수 있는 처녀가 필요해

한낱 미치광이 시인에게 약초를 맡길 순 없어

민중의 지식을 약방으로, 약방에서 세계의 신념을

 

그러나 배고픈 신들은 인간에게 내어줄 것이 없다

도저히 거룩한 것들과 화해할 수 없는 농담 같은 현실

잠든 취객을 노리는 스승X는 세 건의 전과가 있다

사춘기 소년부터 상습범죄자이고 마약밀매, 도둑질, 소매치기,

가끔 금고털이범이 되지만

신교로 개종한 이후부터 항구에서 민어와 대구 나르는 일을 한다 가끔

밀고자가 되는데 스승의 말은 소설인지 사실인지 구분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은 인간이길 포기할 권리가 있지.”

 

우리는 먹고 싶을 때마다 콩 스튜를 해먹을 수 없는 빈농

소도구를 만들고, 호밀빵을 반죽하며, 직물을 짜는 반성의 시간

 

우리 수에카 청년들이라고 모두 플라멩코를 추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지 않아

아직 더 많은 음악을 원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문법적이고

축제라곤 궁핍한 요리를 만들어 대결하는 것이 전부

내일부터 도는 역병과 말라리아, 물길에서 옮겨 붙은 거머리는

오늘의 우리를 춤추게 하는 미치게 하는 농담 같은 현실

 

빨간 풍차가 돌아가는 댄스홀에는 그림 한 장 팔지 못하는 스승Y가

식객으로 살고 있지 카바레 쇼 무희들만 상대하고 주방이나 홀의 웨이트

리스는 거들떠 보지 않아 섹스한 여자들만 그려 넣는 악취미들

그림 한 장 팔지 못하지만 상업과 예술은 구분해야 하니까

그러므로 순수함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갖추고

 

그런데 요리에는 모랄이 없고 본능만 있다는 스승Z의 가르침을 기억하니

우리는 아카데미에 출석한 기억이 없는데 연회장에는 스승XYZ의 망령들이

떠돌며

미로 같은 기억의 삽화가 현실을 방해한다

 

 


 

 

최예슬 시인 / 아파트

 

 

이곳은 불멸의 바람으로부터 상속받았다

닳아빠진 시간의 축이 쓸쓸한

정물들을 토해 놓고 기울어져 있고,

인왕궁 맨숀 하얀 외벽은

빗살무늬 균열을 미간에 그려 넣고

모래내 길의 주인 행세를 한다.

 

나는 맨숀이면서도 맨션인

주소란에는 가끔 아파트이기도 한

기원이 불분명한 소심한 우주에 세 들어 있다.

임자 잃은 세간들이

먼지 같이 달라붙어 쌓여만 가고

옥상에는 삼십년 전 기억을 버무리는

빈 장독대가 웅크리고 있다.

낡은 계단을 내려갈 때면

삭아버린 지지대 지붕보다,

음탕한 도발을 꿈꾸는

낙서들이 문신처럼 새겨진

시멘트 외벽이 유용한 곳이다.

 

그리고 아득한 홍제동 골목

삼십년 기억의 가장자리에 맞닿은

나의 최초의 세계이자

마지막 우주인 우신아파트가 있다.

그곳에서 돌아나오던 수많은

길위에서 나는

달그림자 비춰지는 풍경 위로

덧그려진 시간 축의 정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아파트에는 작은 악어가 산다

방금 늪에서 헤엄쳐 올라온

싱싱한 꼬리가 파닥거리는

나는 악어의 눈이 되고 가죽이 된다.

오래전에는 맨숀이었고

지금은 아파트인 이곳에서

나는 이제는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을 기억의 조각들을

용접하는 시인이 된다

나의 세계와 마주하는

악어는 가만히 최초의 악수를 건넨다

악어의 눈과 기억을 닮은

축축한 늪지의 물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최예슬 시인 / 위대한 어릿광대의 선언

 

 휴… 어김없이 이 순간이 찾아오는군. 이보게 서기관, 숨소리까지 받아 적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예민한 군중들에겐 이 대목에서 쓸데없이 진지해 보일 지도 몰라.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르겠군. 자네가 만족할 만한 이야기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어.

 

 이 이야기를 하자면, 아주 까마득한 시절로 돌아가야 하지.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횡단해서, 자네는 들어본 적 없을 법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건 호텔 벨보이 시절에 있었던 일이야. 유소년기의 나는 꽤 궁핍한 시절을 보내야 했지. 나는 사생아였고 돌봐주는 이도 없었으니까. 적당한 나이가 되어 고아원에서 뛰쳐나와 벨보이가 되었어.

 

 그 시기에 호텔을 자주 드나들던 신사는 매우 현명한 분이었어. 나는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교양을 몸으로 익혔어. 우아하게 지시하는 방법, 태연하게 변명하는 방법, 유머러스하게 청춘들을 사로잡는 방법에 대해.

 

 자네도 들었나? 현명한 신사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졌다는 것을. 그 소문은 모두 사실일세. 그 당시에 신사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수많은 애인들과 호텔에 드나들었지. 그는 부인도 자식도 없고, 폴로 경기를 즐기고 미술품을 수집하며 살았어. 나는 아침마다 그를 위해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굽고 구두를 닦았지. 말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그를 위해, 나는 기꺼이 나의 발을 말발굽으로 바꿔주었지.

 

 어릿광대가 되기로 결심한 건, 현명한 신사의 죽음 이후였어. 그는 죽기 전에 대부분의 유산을 나에게 상속하고, 나머지 유산은 전쟁을 위해 기부하였네. 알고 보니 그는 전쟁에 무기를 공급하는 군수업자 이었더군. 젊었을 적에는 전쟁한 참전한 이력도 있다던데 그건 확인된 바 없네. 나는 남태평양의 휴양지와, 대도시의 근엄한 빌딩 몇 채, 끝이 안 보이는 라벤더 농장과 셀 수 없을 만큼의 현금을 상속받았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나는 고민에 빠졌지. 벨보이 생활을 한 것인가, 호텔을 사 버릴 것인가, 아니면 이 지긋지긋한 호텔 생활에서 벗어날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나는 어릿광대가 되기로 결심했어.

 

 나의 대표작은 <파르페르논의 몰락>이라는 연극이야. 이 작품은 무수한 군중들이 독재자 파르페르논을 광장으로 끌어내리는 격정적인 장면으로 시작하지. 관객들은 첫 장면에서부터 열광했어. 몇몇 관객들은 무대로 뛰쳐나와 파르페르논을 파면하는 군중이 되기도 했지. 사람들은 파르페르논이 처참히 몰락하는 퍼포먼스에 만족해하며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한 편의 연극으로 예술계의 대스타가 되었지.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독재자의 몰락을 연기했어. 하루에 세 번씩, 아침, 점심, 저녁에 나누어서. 나중에는 내가 어릿광대인지 파르페르논인지 헷갈릴 정도였어. 마감 시간으로 붐비는 은행에 가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 혹시라도 시민들이 광폭하게 돌변하여 나의 자신을 빼앗아 갈까봐 두려웠어. 종종 집사와 정원사와 하인들에게 광장으로 달려가서 혁명군을 진압하라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고, 급기야는 집사와 정원사와 하인이 군중들에게 나의 행방을 밀고할 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큰 저택에 나 혼자서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며 살아가기에 이르렀지.

 

 내가 공연 티켓을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동료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네. 하지만 공연 티켓을 팔은 돈은 무대 사용료와 배우들의 월급으로 대부분 빠져나갔어.

 

 나는 공연장 앞에서 독재자의 얼굴이 그려진 기념품을 팔기 시작했어. 독재자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와 스티커는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은 모두 같은 티셔츠를 입고 관람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모을 수 있었지. 현명한 신사에게서 받은 유산은 나의 다섯 아들들이 소유하지. 그들이 술과 노름과 여자를 사는 돈으로 탕진했을지도 몰라. 예술을 팔아 부자가 된 나의 성공에 몇몇 동료들은 못마땅해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예술을 판 적이 없네. 무대 사용료와 세금도 꼬박꼬박 지불했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월급도 한 번도 밀린 적 없었지. 티셔츠? 자네는 티셔츠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가?

 

 결국 나를 괴롭히는 모든 신경증으로부터 나를 이겨내고 이 자리에 오게 되었네. 나는 이제 쇼가 지겨워. 나처럼 닳고 닳은 어릿광대는 오로지 진실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지. 그러니까, 비로소 내가, 시민들 앞에서 그 어떤 퍼포먼스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거야. 나는 그 어떤 작위적인 쇼에 참여할 마음이 없으므로, 그 어떤 후보들보다 진실한 퍼포먼스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이보게, 기자 양반. 기사 제목은 <위대한 어릿광대 씨의 출마 선언>으로 해두는 것이 좋겠네. 자네도 시간이 되면 와서 선거에 꼭 참여하도록 하게. 언제나 그랬듯이 하루에 세 번 아침-점심-저녁에 나누어서 공연할 계획이네.

 

-월간『현대시』 2014년 12월호 발표

 

 


 

 

최예슬 시인 / 오늘의 증상

 

 

 어젯밤 홉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마을의 새벽은 노동자들로 북적이고 북쪽에서 달려오는 간이 열차는 기차역을 지나간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보이다"

 나는 부고 기사의 첫머리를 타이핑하는 중이고 픽션쓰기로의 전직을 준비할 예정이다

 

 이 도시에 병원은 없지만 정원은 많고 환자들은 정원에서 나무를 돌보고 거울을 본다

 아무도 치유하지 않는 역병이 돌고 살아있는 자들은 문병을 위해 정원수를 심는다

 내가 사랑하는 홉,

 너는 스물 다섯 개의 펜과 낡은 수첩을 가졌다. 종이가 턱없이 모자라지만 너의 풍경을 그려넣기엔 충분할거야. 신문사 앞 분수대에는 어릿광대 소녀가 사는데, 키우던 망아지를 경마장에 팔아넘겼지. 마주에게 받은 돈으로 드레스를 사고, 낭만주의 회화의 모델이 되고 싶어 젊은 예술가를 찾아갔단다. 너는 안개로 가득 차오르던 새벽에 이런 말을 남겼지.

 

 "행인들은 잘 모르지만 우리는 세밀화를 그릴 줄 알아요

예배당에 사는 영혼, 영혼의 개인적 취향,영혼의 비명이 새겨진 바람,

이 도시에서만 가능한 죽음의 형식을“

 

 그런데 요즘 어떤 새끼가 낭만주의를 믿겠어,

 이 도시는 형편없는 회의주의로 낡아지고 있는데

 죽음으로 형식을 배반하고 얼룩말의 무늬를 동경하고

 나는 픽션을 연습하며 사실을 배반한다

 

 너의 부고장에는

 잎의 색깔, 뻗어가는 가지, 열매의 색과 모양을 그려넣고

 이 도시에서 불가능한 애도의 형식을 실천하는 동안

 

 부서진 음표들이 술통에 위태롭게 취해 있을 뿐. 나는 허물어진 영혼을 발굴하기 위해 술통에 담긴 술을 모두 마셔버렸고. 어디에도 종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계간 『시와 사상』 2012년 여름호 발표

 

 


 

 

최예슬 시인 / 풍선을 불었어

 

 

풍선을 불었어

 

바람의 선율을 타고

초록색 풍선에 위태롭게 매달려

미지의 대륙을 비행하고 있어

 

낡은 지도책은 낡은 책장에 꽂아두고

여기서부터 무리들의 세계를 그려볼까

 

불행한 기억은 벽화의 무늬로 그려 넣고

유년기의 향수는 라벤더 농장의 향기로 채워 넣고

악취 나는 골목길은 초록빛으로 채색하고

 

희미한 별빛, 위태로운 바람, 불안한 기억의 다발

 

우리는 이곳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즐거운 섬이 되었네

 

어느 날 빛바랜 지도 속에 물고 있는 인형에게 풍선을 선물했고

부풀어 오른 풍선을 끌어안고 그녀는 우리에게 말을 건넸어

 

“저는 오늘부터 언어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먼 세계에 당도할 예정입니다."

 

어디선가 바람의 선율이 흘러나오고

비로소 풍선은 천천히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어

 

-<현대시> 2017년 5월호, 신작특집

 

 


 

최예슬 시인

198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同 대학원디지털미디어학 석사 졸업.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장려상. 정보문화대상. 2010년 전국만해백일장 일반부 장원. 2011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