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승일 시인(과천) / 나의 자랑 이랑 외 9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27. 08:00
김승일 시인(과천) / 나의 자랑 이랑

김승일 시인(과천) / 나의 자랑 이랑

 

 

넌 기억의 천재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지.

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콧물을 책상 위에 뚝뚝 흘리며,

막 태어난 것처럼 너는 울잖아.

분노에 떨면서 겁에 질려서 일을 하고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네가 사귀던 애는

문밖으로 나가버리고. 나는 방안을 서성거리며

내가 네 남편이었으면 하고 바랐지.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

벽에는 네가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고

바구니엔 네가 만든 천 가방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좁은 방 안에서,

네가 만든 노래들을 속으로 불러보면서.

 

세상에 노래란 게 왜 있는 걸까?

너한테 불러줄 수도 없는데.

네가 그린 그림들은 하얀 벽에 달라붙어서

백지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고.

단아한 가방들은 내다 팔기 위해 만든 것들, 우리 방을 공장으로,

너의 손목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들.

그 가방들은 모두 팔렸을까? 나는 몰라,

네 뒤에 서서 얼쩡거리면

나는 너의 서러운,

서러운 뒤통수가 된 것 같았고

그러니까 나는 몰라,

네가 깔깔대며 크게 웃을 때

나 역시 몸 전체를

세게 흔들 뿐

너랑 내가 웃고 있는 까닭은 몰라.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고 싶은 너.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오리발 같아 도무지 신용이 안 가는 너는,

나무 위에 올라 큰 소리로 울었지.

네가 만약 신이라면

참지 않고 다 엎어버리겠다고

입술을 쑥 내밀고

노래 부르는

랑아,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

인간들을 분류했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막 박수치면서,

네가 나를 선한 사람에

끼워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 이를 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 걸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김승일 시인(과천) / 동경

 

 

당신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가 서로의 웃음을 보고

웃을 수 있다면 좋겠군요. 헤어질 때는 포옹을 하면

좋겠군요. 이게 다 당신을 모르기 때문에 내가 꿈꾸는

일이겠지요. 당신을 잘 알게 되면 좋겠군요. 당신이

나보다 먼저 죽었으면 좋겠군요. 당신이 죽은 다음,

당신과 함께 웃고, 헤어질 때마다 포옹을 했던 일을

떠올릴 때마다. 돌이켜보니 내 인생이 아주 좋았다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당신이 죽기 불과 며칠 전에,

나는 문병을 가게 될는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이 내가

당신의 병상에서 떠났으면 좋겠다고. 이번에 포옹도 없이,

그냥 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당신의 소원을

들어드리겠어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무척 슬프겠지요.

지금 나는 딱히 누구를 동경하지 않고, 그러니까 지금은

당신이 누군지로 모르겠고, 그러니까 당신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나는 문병을 가지도 않았는데.

어쩌면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아주

우울하고 슬픕니다. 당신을 상상했어요.

-시집 <항상 조금 추운 극장> 중에서

 

 


 

 

김승일 시인(과천) / 사후의 일

 

 

 어쩌면 하나가 될 수도 있대. 껴안고 누워, 인터넷에서 본 얘기를 고양이에게 들려주었다. 지금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하나가 되면 알게 되겠지. 내가 네게 하나가 되는 얘기를 하면서, 호흡이 느려지고, 혈액순환이 약해지 고, 심장에 통증을 느꼈다는 것을. 이렇게 하나가 되는 건데. 왜 그렇게 슬펐느냐고 그때 가서 네가 묻는다면. 아니 지, 물을 필요도 없겠지. 답이 필요도 없겠지. 다행이다. 답을 모르거든. 그래도 무서워

 

 


 

 

김승일 시인(과천) / 부탁

 

 당황해주세요. 시간이 없어요. 좋은 방법을 고안할 시간이. 제가요. 금방 죽을 수도 있고요. 나중에 죽을 수도 있는데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시간이 너무 없는 거 있죠. 당신을 당황시킬 시간이요. 제가요. 종종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거든요. 쉽게 당황하는 사람이거나, 제가 뭘 해도 참 철없는 장난꾸러기구나. 나는 장난꾸러기가 참 싫다. 그렇게 저를 밀어낼 사람이겠죠. 노력하는 거 좋아하고요. 좋은 장난이 생각날 때까지 기다리는 거 좋아하고요. 누가 밀어내면, 애교를 부려서 닫힌 마음을 녹이는 거 좋아하고요. 모두를 당황시킬 순 없죠. 포기하는 척하면서, 쓸쓸한 미소 지어서, 날 미워하는 사람에게 죄책감 비슷한 것을 주는 것도 좋아하고요. 요즘엔 무슨 일이 있었나면요. 절대로 당황하지 않는 사람을, 제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반대하고 보는 사람을 상상했고요. 그 사람에게 진실을 알려줬어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그러면 마음에 병을 얻을 거라고, 정신도 나빠질 것이고, 몸도 아플 수 있다고, 내가 싫고 내가 문제면 나를 떠나세요. 만 리 밖으로 뛰어가세요. 제가 뛰어갈까요? 이제 제가 당신 곁에 없어요. 원래도 없었지만요. 당황하세요. 최면을 거세요. 나는 당황한다. 무섭다. 나는 무섭다.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귀엽다. 가슴이 올망졸망 뛴다. 당황한다. 나는 당황한다. 꼬리에 택배 스티커가 붙은 고양이처럼. 웅덩이에서 물을 먹다가 사레가 들린 고라니처럼.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요. 당신이 당황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나요. 전쟁이 길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전쟁이 당신을 당황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왜 나를 싫어해요. 당신을 당황시키려는 나를. 왜 내 부탁을 무시하나요. 당황해주세요. 시간이 없다고요. 당황해주세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라고요. 내일은 시간이 많을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내 부탁을 좀 들어달라고요. 내일 나를 싫어하고. 내일 무뚝뚝하게 굴고. 오늘은 당황해주세요. 명령이 아니에요. 부탁이에요.

 

 


 

 

김승일 시인(과천) / 보르헤스

 

 

어떤 아침 그가 내게 물어보았다

보르헤스, 무엇이 보이지?

 

내가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주었을 때

그가 나를 후려갈겼다

 

멍청아 보르헤스는 장님이야

 

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군 장님도 본다 눈을 감아도 안개가 보인다

나는 아직 노란색과 파란색 그리고 초록색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이렇게 말해야지 그는 실명의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이다

 

 


 

 

김승일 시인(과천) / 기계의 주인

 

 

 감옥엔 다른 이들도 있다 나는 병역을 거부하여 여기에 수감되었고 그 전에는 화가였고 그 전에는 시인이었다 오늘 아침에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나는 그 광경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지만 눈을 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시인이었을 때를 기억해

 이렇게 시를 쓰다가

 

 나는 내가 오늘 한 번도 눈을 뜬 적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내 몸을 들고

「너는 이제 다시 그냥 기계다」라고 입력했는데

 

 나는 이 일이 이제 너는 시인도 아니고 앤디 워홀도 아니고 병역을 거부하지도 않았다는 것만을 의미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내 눈이 이제 다시 기계눈이라 인간이 보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햇살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뜻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시의 화자인 기계가 정말로 자기가 기계라고 믿는다면 애초에 홀*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내 기계를 들고 다음과 같이 입력했음을 틀림없다 너는 고장난 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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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 키워드를 입력하면 자신이 그 키워드(지시체)라고 착각하는 기계.

 

—《시와 사상》 2015년 여름호

 

 


 

 

김승일 시인(과천) / 종로육가

 

 

 내가 너의 새를 사서 대신 날려주고 싶다 너는 남고 그 옆에 나도 남고 물가에 발을 담그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과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같이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 종치는 소리가 들리면 은혜 갚은 까치 얘기를 할 것이다 그러나 종로는 육가까지 있다 할아버지 하고 아이가 부르면 너는 널 부르는가 해서 나는 날 부르는가 해서 나는 날 부르는가 해서 돌아볼 것이다 그러나 종로는 육가까지 있다 나는 너와 내가 너와 나의 인 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운명으로 묶여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저절로 켜지는 네 가스레인지를 고쳐주고 싶다 나는 네 개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나는 네가 믿는 종교를 이해하고 싶다 나는 네 강아지를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싶다 나는 네 팔을 끌어당겨 자동차에게서 너를 구하고 싶다 중요한 사실을 깨달으면 곧장 너에게 전화하고 싶다 정말로 종로는 육가까지 있다 너와 함께 멀리서 남영역에 불이 꺼지는 것을 쳐다 보고 싶다 너에게 첫 끼를 차려주고 싶다 네가 가는 병원에 따라가고 싶다 이 앞에서 기다릴까 아니면 같이 들어갈까 저기 봐 노인이 고교생을 두들겨 패고 있어 우린 같이 밀린 빨래를 했지 오랜만에 하는 빨래라고 말해보았지 진짜 무섭더라 노인이 고교생 패던 거 정말 무섭더라 도로 위에 끝없이 물웅덩이가 고여 있는 거 저길 봐 너랑 똑 닮은 애가 지나간다 미래의 네 자식인가 봐 그러면 너는 애가 못 본 새 많이 컸다는 생각 을 할지도 몰라 병원에서 네가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너무 슬퍼서 네가 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 무슨 병인지 물어 보고 싶다 추측하고 싶다 걱정해야 한다 밥을 먹자 밥을 먹고 약을 먹어야지 첫 끼를 이미 먹어 배고프지 않은 너와 소화가 되게 너의 집까지 걸어가고싶다 종로육가에는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 네가 내게 먼저 전화를 했으면 좋겠다 꼬박꼬박 집에 돌아가니 벙어리 노인이 나를 맞아주었 어 벙어리 노인을 바꿔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사실 내가 벙어리 노인이야 네가 그러면 아니야 내가 벙어리 노인이야 빨래가 어디 갔지 네가 그러면 내가 미리 다 개켜놓았어 나는 너의 가스레인지를 고쳐주고 싶다 종로육가에는 짜장면집도 있다 앞으로는 걸어 다니지 말자 나는 비정하게 말하고 싶다 네가 나의 마음을 알 수 없었으면 좋겠다 네가 지쳐서 주저앉아도 나는 주저앉고 싶지 않다 나는 담배를 끊고 싶다 나는 너의 눈을 쳐다보고 싶지 않다 나는 너를 믿고 싶지 않다 나는 신앙을 가지고 싶지 않다 네가 너의 사람과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가는 상상을 할 때 그곳에 내가 있다면 나는 무엇도 빛이라고 부르지 말고 사람이라고 믿지 않으며 멀찍이에 있고 싶다 나는 너희의 뒤에서 최신 가요를 부르고 싶다 나는 내 자신을 너희들을 그리고 우리들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나는 너에게 손을 내밀고 싶지 않다 손을 잡지 않으면 어깨도 잡지 않고 그러면 끌어안을 일이 없다 나는 너의 뺨을 만지지 않고 뺨에 흐르는 것이 있어도 무시하고 싶다 나는 흰 김이 나오는 추운 거리에서 숨을 쉬고 싶지 않다 나는 아름다움을 모른다 종로는 육가까지 있다 나는 느낌을 간직하지 않는다 가스레인지를 고쳐주고싶다 나는 너희에게 돈을 주고 싶다 택시를 타라고 거리를 벗어나라고 나는 너희의 사랑을 폭로하고 싶다 나는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종로가 육가까지 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모든 것이 정말로 잘 되어가고 있다 나는 누구의 눈도 바라보고 싶지 않다 나는 말해주고 싶다 눈에 담긴 것은 진실과는 상관없다고 이제 걷지 말라고 서울에는 아침에만 가고 싶다 나는 다정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고 싶다 나는 너희가 정확히 얼마나 걸었는지 시간을 재서 보여주고 싶다 나는 책상이 없는 교실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중학생 같은 것은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리코더와 너를 남겨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싶다 나는 너에게서 떠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종로육가에 있다 이쪽으로 와라 괜찮으니까

 

 


 

 

김승일 시인(과천) / 현실의 무게

 

 

 어제는 아내가 교주가 되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부자가 돼서 함께 사는 고양이에게 뭐를 더 사주고, 자기도 회사를 때려치울 수 있을 거라고. 제 아내는 제게 뭘 해보라고 권유하는 일이 잘 없는 사람입니다. 농담으로도 뭘 해보라고 얘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 걸 하면 부자가 될 것 같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떠들고. 간밤에 말한 것을 잊고, 아침에 출근하고 돌아와서 회사를 욕하고 쉬어도 쉬어지지 않고. 뭘 먹으면 얹히고. 그러다 어제는 교주가 되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되기 싫다고 대답했습니다. 보통은 뭘 해보라고 하면 생각해보겠다고 하는데. 사기꾼은 되기 싫어서 바로 싫다고 했습니다. 함께 사는 고양이가 건강하게 장수하면 좋겠습니다. 회사 때문에 돌아버린 아내의 정신이 더 심각해져서, 고양이도 알아보지 못하고, 제가 가진 사랑스러움과 귀여움도 더는 포괄임금 제 노동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헛것을 보게 되거나, 큰 병이 생겨 단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보다는 더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죽어가고 있는데 옆에 앉아서, 또르르 눈물을 떨구면서, 미안해, 내가, 교주를.. · 할걸.......... 제가 진심으로 후회하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잘 떠오르지 않는군요. 정말 미안해・・・・・・ 사기꾼이 될 수 없었어. 그게 딱 나를 위한 일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말 을 하지도 않을거고. 한다고 해도 속으로 잠깐 할 것 같습니다. 교주는 되지 않을 것이고. 그리하여 나는 후회인지 농담인지 모를 미래의 어떤 순간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김승일 시인(과천) / 컴플리케이티드

 

 

 예언자를 활용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예언자를 수용하였다. 우리들은 예언자를 선실 창고에 가두어 수용하고 항해하면서 황소자리 게자리를 거의 동시에 지나갔다. 새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출생별은 수억 개 이고, 수억 개의 별에 배가 정박하여서 각각의 천체들을 기록할 때에 우리들의 예언자가 창고에 누워, 수억 장의 별그림을 흩뜨려놓고, 수억 장의 신기한 동물의 종을, 수억 장의 낯선 물체 그림을 그리다가 영영 일어 나지 못하게 된 때, 우리들은 아까 낳은 우리 아이를 예언자로 활용한다. 창고에 넣고, 예언자가 하는 일은 예언이어서 예언 말고 아무 일을 할 수 없도록 수용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였다. 배는 항상 더 빠르게 진화하여서 지금의 예언자인 새 아이들이 예전의 예언자인 어떤 사람의 운명을 완벽하게 분석하도록 활용되는 것에 대해 수용하면서 낯설었던 신기한 별자리들을 우리들은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설득하는 일은 무척 중요 하였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설득당할 사람들을 낳는 것이다.

 

 


 

 

김승일 시인(과천) / 우린, 우르르 버려져도 돼*

 

 

댈구 실패

오늘은 담배 없어

대신 하리보 어때?

하리보?

 

하리보는 꼬마끔

하리보를 훔쳤네

작디작은꼬마끔

하리보일 뿐이야

 

말못하는 색깔을

많아도 하리보

한 줌의 하리보

우르르 토끼면 돼

 

아이들을 무릎 꿇게 하고

아이들을 엎드리게 하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서 끝없이 눈물을 끄집어낸

우리도 한줌의 아이들이지

 

너흰 이제 집으로도 도망을 못 가

운동장에서 단독방으로

어떤 슬픔과 기쁨의 이모티콘이 팝콘처럼 튀어나올까

다디단 침처럼 고이네

욕이 고여 질겅질겅

 

하리보는 꼬마끔

하리보를 씹었네

작디작은꼬마곰

하리보일 뿐이야

 

말못하는 색깔을

새콤달콤 먹었네

아무리 많아도 하리보

아무리 모여도 한 줌의 하리보

우르르 버려도돼

우르르 버려져도 돼

 

*00초등학교 일진의 비밀, 일기장에서

 

-문화매거진 《시마(詩魔)》 2024년 봄.

 

 


 

김승일 시인(과천)

1987년 경기도 과천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졸업.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수료. 200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 <는>동인. 시집 <에듀케이션>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항상 조금 추운 겨울>. 2016년 현대시학 작품상 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