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명이 시인 / 외곽의 힘 외 5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28. 08:00
김명이 시인 / 외곽의 힘

김명이 시인 / 외곽의 힘

 

 

그가 가까스로 닿은 곳은

신의 별이야

 

늘 가장자리에 밀리면서도

신의란 별것 아니라던

당신

소주에 피자안주

목재 찻상에 쇠수저

 

도시의 외곽을 떠돈 가장

중심에 놓이고 싶다

당신의 집중된 눈빛이

차갑게 널브러진 수저를 잡고

 

뜨거운 찻잔의 중심으로부터

빙그르르

지구를 돌리는 것이다

 

 


 

 

김명이 시인 / 금요일의 백지

 

 

양심 몇 개 손 털며 귀가하는 금요일

경적 울리는 곳에 노숙 같은 무표정 경비

저문 날의 고개는 숙이고 마는 것이 대책이었을 거다

목련 이파리 제 올리는 북쪽 통로로 사라진다

 

과일가게 여자는 빈 상자를 차며 달려 나와

신이 내린 노화방지 아보카도 단 하루 이 가격

외치며 초조하던 쇼핑호스트 표정으로

검은 비닐봉지에 재빠르게 담아낸다

 

출판사 주소록 베껴 보냈을 시집이 담긴 노란 봉투

시인의 사랑이 떠난 추억을 차려놓을테니

집배원은 빠져 허우적댄 호수를 기억한 것일까

수신인 이름만으로 우편함에 국 눌러두었다

 

초록 접이가방에 담아 온 노을빛 비늘을 쏟아보면

덤으로 분주한 금요장터 목록들

하늘의 호명도 캄캄해질수록 뚜렷할까

몸을 통과하지 못한 말과 선택적 죄를 분류한다

 

거미가 내려온다 못 본 척

 

 


 

 

김명이 시인 / 한발씩 뒤로 가는 사진을 찍고

 

 

장과장 카센터홍박사 딴따라조 자연광윤 호형호제걸 매너종

 

당신이 어깨보다 가슴이 넓은 것을 알고 있구나

 

내 친구 희 선 정도 다정이 병이라 부를 맡큼 친절한 남자다

 

독수리 타법에 간이역까지 들리던 사라진 완행열차 속도

 

누군가와 톡을 주고받을 때 손끝 빠르고 매끄러워 놀라워라

 

꽃철 이미 지난 것 알겠다만 후줄근하긴 당신도 마찬가지

 

대답 좀 스무스하게 해주렴 어제 약속인데 더듬을 게 없잖아

 

잊었다든지 불쑥 호출하는 번개는 귓속말 예의를 갖추었구나

 

엘리베이터에서 표정을 복사하며 내려갔다 멋질 거야

 

한 때 서로만 바라보던 세공사

 

지금 우리는 타인 앞에서 빛이 난다

 

 


 

 

김명이 시인 / 바람직하여 바람직한

약속 장소에 가서 턱없는 말에 굴리지 못하는 입술, 듣는 태도가 좋아요 빤히

꽃 모가지 비틀고 있다

대퇴부에 통증이 생긴다

잘 들어주니까

전화가 오고 묵묵히 듣는다 감탄사를 지를 차례, 구멍과 끝내 막장의 진실

꽃의 수난이 시작된다

소파에 누워 말을 흘린다

잘 들어주니까

만만해서 성이 없는 줄 아는지, 빗나간 또 같은 말을 세다가 잊다가 뻔한

물조리개를 흔들고 있다

식사는 언제 하나요

잘 들어주니까

달궈진 달팽이관에 난청 신호가 잡히고 스피커 기능을 켜자, 미리 켜뒀구나

여보세~~~~~~

언제든 꽃은 사들이면 된다

눈 감아도 잘 듣는 나는

공생관계익숙한감정

적당하게훈련된감정

개인으로실패한감정

배터리 일프로 페이드 아웃

웹진 시인광장202310월호 발표

 


 

 

김명이 시인 / 실험인간

 

 

엄마는 재래시장에 품 팔러 가고

식은 방에 백일 못 채운 아기 혼자

돌아와 방문 열 때

뒷머리엔 피딱지 엉기고 독이 피었다죠

성장의 조건으로 고려해야할 전적

 

유별난 편두통은 쥐의 송곳니가 묻혀있기 때문이어요

형상에 박혀서 갉고 있는데

쉰이 되어도

속속 드러나는 흡혈의 증거

아직 덫에 잘 걸리고

얍삽하게

재빠르지 못한 것은

재빠르지 못하는 것도

DNA가 혼종의 실험상태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어요

자라는 동안

손톱을 살갗에 붙이지 않아

품행방정하단 기록

그 말은 왜 그리 어렵던가요

 

도심에 중성고양이가 많아져

지레 겁먹는 일은 줄었지만

진짜 예고 없는 출현에

꽁무니 빠지게 줄행랑칠 땐

동물병원 문 앞에 쥐똥 무더기 누어줄까 싶다가도

내 몸은 실험체

견뎌야 할 진행 중

뒷거울 속에 낙인이 뚜렷하게 푸르고요

 

 


 

 

김명이 시인 / 만년고참, 직업을 대하는 방식

 

 

쿠키와 8시 50분까지 뒹굴고 싶어

여름은 밤이 있는 거니 잔 적이 없는 것 같아

어둠의 쿠션을 코앞에서 밀어낸 빛살

대낮 그 불안한 냄새의 진동이 느껴진다

 

어젯밤 회식자리 벌건 내가

이른 아침부터 전송된 손바닥 안

새 구두 한쪽 징이 빠져 삐딱거렸으므로

점포정리 매장의 염가 비밀을 투덜댄다

 

일반커피와 고급커피를 묻고 돌려야겠어

자판기가 삼켜버린 동전이 다시 생각날 거야

층층 차렷의 빨간 눈들

출구를 닫기 위해 포켓에 손을 넣는다

 

울음이 웃음으로 품어지던 밥

웃음이 울음으로 대답하던 밤

 

구두 밑창을 확인하고

시퍼런 추궁은 멈추거나

말의 발목 꺾인 곳에 붕대를 놓아 줄 뿐이어서

수시로 바꿔 낀 징은 버겁다

 

그들 목록은 상관하지 말자

족적을 지우려다 구멍 난 적이 있어

그리 구부리는 것은 관절의 유연성 테스트

나는 아직 척추가 반듯하다

 

 


 

김명이 시인

전북 오수 출생. 한남대학교 사회문화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2010년 《호서문학》과 《문학마을》로 등단. 시집 『엄마가 아팠다』 『모자의 그늘』 『사랑에 대하여는 쓰지 않겠다』.  2016년 한남문인 젊은작가상 수상. 대전문화재단 및 세종나눔문학도서 선정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