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한도훈 시인 / 골디락스의 밤 외 6편

파스칼바이런 2025. 11. 28. 08:00
한도훈 시인 / 골디락스의 밤

한도훈 시인 / 골디락스의 밤

 

 

한동안 골디락스에서 살았네,

 

벽마다 곰팡이가 무섭게 번졌지만

화자일에선 모나리자가 미소를 짓는

 

무너질까 봐 가슴에 기둥 하나 덧대놓고

가끔 흰 구름을 깍기도 했네

 

동지섣달 멀미산 꼭대기에 초승달이 스쳐 지나가면

이마 주름이 순식간에 서너 가닥으로 늘어나는,

 

그곳에서 지나간 노래를 꺾으며

아버지 제사를 준비했네

 

입가에 침까지 흘리던 나의 씨앗,

영혼은 쪼글쪼글해져 전생에 기억을 깡그리 까먹은,

 

다시 주워담아가라고 악을 쓰고 싶지만

아, 잠시나마 살아있구나!

 

반쯤 맨살을 드러낸 골디락스, 아버지

 

-계간 『시산맥』 (2018년 봄호)

 

 


 

 

한도훈 시인 / 갯메꽃

 

 

사람들 요란 떠는 소래포구

바닷가 모래밭에서

한무더기 갯메꽃을 발견했지라

자손 대대로 포구에 사는

늙은 갈매기들이 싸놓은

흰쌀밥 같은 똥덩이를 헤치고

하늘 향해 목 빼든 갯메꽃

네 살배기 아이 따라

손가락으로 게구멍을 쑤시면서도

갯메꽃, 네가 흔드는 메방울소리만 쫓았지라

밤 불빛에 묶인 배들이

항구를 영영 떠나지 못해

생선 팔랴 막걸리 팔랴

바닷바람에 찌든 악다구니 써대도

길 끊긴지 오래인 수인철로에

다시 기차가 온다면

그 기차 앞머리에

연분홍 갯메꽃 송이 송이 꽂고 싶지라

그리움에 가슴 붉게 물든

저녁 노을 따서

네 볼에 심어주고 싶지라

 

 


 

 

한도훈 시인 / 호주머니 안으로 들어오세요

 

 

저의 호주머니로 들어와

때 절은 손수건 마냥 편히 쉬셔요

누군가 당신의 눈을 젖게 하고

누군가 당신의 등뼈를 휘게 할 때

저의 호주머니에 들어와

따뜻하게 몸을 녹이셔요

호주머니 속에서

당신의 손을 당신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고

가끔씩 거울처럼 꺼내

내 얼굴에다

당신의 볼을 비벼 볼게요

저의 호주머니 안은

동전 몇 개 달랑대지만

그곳은 열린 우주

호주머니 안으로 들어오세요

 


 

 

한도훈 시인 / 고물상집 개

 

 

이월의 붉은 저녁 해가

고물상집 집게차 위에 걸리면

고물상집 털 빠진 개는

한 무더기 똥을 싼 뒤

세상을 달관한 표정으로

막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

나는 그 개의 무념무상한 모습을

넋 나간 얼굴로 지켜보다

연방 흔드는 개꼬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저녁 해가 고물상집 개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고물상집 개가 저녁 해를 고개 갸우뚱 지켜보는

이 기막힌 풍경 앞에

집게차만 무거운 몸 뒤틀며

길게 하품을 해댄다

遊星食堂에서 개고기를 먹고

이 쑤시며 돌아온 주인이

해탈한 개 옆구리를 냅다 차면

깨갱깽깽 고물상집 개의 비명이

울림과 동시에

저녁 해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우우우 비명 소리를 지구 위로 올려 보낸다

 

 


 

 

한도훈 시인 / 눈 쌓인 소백산

 

 

눈 쌓인 소백산에서

겨울 끝으로 떨어졌다

한도훈

박달나무 우듬지 타고 모르는 하늘디남쥐야

내 손을 잡아주렴

 

겨울 빛 머루주가 산뿌리를 적시고

안개 피어오르는 산이마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쉴 때

어디선가 낮달을 잡아채가는 황조롱이

 

소백산 허리를 휘감아돌면

억년의 여읜 가슴 내밀며

나 잡아봐라 나 잡아봐라

동해바다 한 바퀴 휘돌아 온다

 

서로 사랑하면 눈빛마저 하얘지는가

황금 마차를 몰고 나온 태양신도,

소백산 꼭대기에 붙박이로 산다

저녁이 와도 사그라들 줄 모르고....

 

눈 쌓인 소백산에서

하늘에 내 걸린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가 전생애 기생오래비였음이

술 취해 비틀대는 종로거리 얼굴로 다가온다

 

 


 

 

한도훈 시인 / 달빛 사냥

 

 

달빛을 혼자서 사냥하려는 인간들이 있다면

머리통에 빵구를 내야 한다

송곳으로 콕콕 쑤셔대

다시는 달빛을 혼자서

독점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장난 같지만 그렇게 해야한다

 

달나라 토끼들을 몽땅 잡아다가

토끼탕을 만들어 먹으려는 작자들도

옆구리에 빵구를 내야 한다

그래야 먹은 것을

솔솔 토해낼 것 아닌가

 

한 늙은 화가가 그린 그림을

몽땅 사버리는 인간은

속눈썹을 뽑아

문둥병에 걸리도록 해야 한다

 

달빛은 달빛으로 아름답고

늙은 화가 김기창은 바보로 아름답다

 

 


 

 

한도훈 시인 / 해골동산에서

 

 

약대에선 다들 꼽사리로 산다

해골동산 언덕에서 회오리바람에 휩쓸리고

깎아지른 바위를 타고 오르며

그저 풍뎅이 돌 듯

셋방 언저리에 풀잎을 지붕으로 삼는다

 

세상은 꼽사리로 가득해야지

돌만큼이나 전깃불만큼이나

가득해져

마침내 꼽사리 천지를 이루어야지

 

약대에선 다들 꼽으로 산다

꼽사리로 끼어들었더니

꼽 꼽으로 불어나고

꼽 꼽이 더 꼽으로 피어난다

 

콩콩콩 콩나물이 되 듯

꼽꼽꼽 주류(主流)를 밀어내고

해골동산 언덕의 주인이 된다

작은 벌판에 붕붕 벌들로 날아

꼽사리로 활짝 핀 자운영에서

한가득 꿀을 빨아 들인다

 

열린 문으로 맨처음 해가 들어와

따뜻한 햇귀를 열어젖히고

다들 드루와 드루와 한다

밤이나 낮이나 드루와...

 

*해골동산: 약대에 있던 앞동산으로 사람의 해골이 아니라‘해처럼 따뜻한 동산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한도훈 시인

1961년 전남 나주 출생. 동화작가, 여행작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4 "시와문화"로 등단. 시집 <오늘, 악어떼가 자살을 했다> <홍시> <코피의 향기>. 동화 :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소라의 용못>. 소설 <소설 그리스로마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