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연 시인 / 냉이된장찌개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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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연 시인 / 냉이된장찌개
너는 사람들 입에서 피는 소금꽃이다
포장마차에서 어둠을 다스리며 술병을 비우던 아버지의 값비싼 웃음이다 사람들 혀끝에 없어서는 안 될 아편같은 너는 할머니의 목주름이고, 할아버지가 아침마다 하루를 세우던 손금 속의 강물이다 그러나 남루하지 않다 너는 사람들과 함께 끓는 상처다 궁핍속에서 피어난 너는 나에게 갈비뼈를 내어준 남편의 월급봉투가 흘린 눈물 한 병이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절망을 벗어난 어머니의 함성이다 전통시장에서 1,000원에 산 가난이고 겨울날 연탄화덕에 둘러앉은 취객들이 피워내는 겨울꽃이다
너가 끓는 울음소리에 구수한 저녁이다
-계간 『시와시학」 (2023년 봄, 여름호)
최소연 시인 / My 레시피
레시피를 짜요, 그 속에 사주 한 절음을 썰어 넣었어요 절망을 벗어나려면 쓴맛 한 접시가 필요해요 서른 살과 마흔 살의 사이에 소금 한 줌을 뿌리면 교만이 숨을 죽여요 1g의 통곡은 단맛을 거부해요 레시피의 2쪽을 넘길 때면 날마다 백김치 같은 사내의 웃음이 피어나라고 저녁 6시와 7시 사이엔 부적을 써 붙여요 내 옆구리로 빠져나온 단발머리소녀가 바닷가의 몽돌이 되라고 파도소리를 배춧잎 사이마다 넣었어요
생의 입맛을 잃을 때마다 나팔꽃이 피어나라고 싱싱한 초승달을 동치미국물에 띄울래요 그리고, 수평선을 맨발로 걷는 태양으로 깍두기를 만들어요 스무살적 어머니의 이마를 지나던 앵둣빛 고춧가루로 슬픔을 찬란하게 버무려요 아버지의 천둥 같은 목소리는 절망의 취기를 깨우려고 김칫독 바닥에 깔아 두었어요 그날부터 나의 영혼엔 방울토마토가 열려요 8월이 되었어요 숙성된 붉은 웃음이 식탁에 지천으로 피어요 저녁엔 나의 꽃상여 레시피를 짜려고 달의 뒷편으로 가는 중이에요
최소연 시인 / 지구가 경매되다
네온싸인이 음지의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어
페스트푸드가 산성비처럼 도시를 샤워시키고 있어 무허가 마트에서 썩어가 던 수제버거는 너의 피부에 물집을 일으키고, 원시림같던 너의 혈관이 파열되 었어 젖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애기똥풀이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뒷골목 의 어둠이 버린 비닐끈을 또 다른 어둠이 집어삼키고 있어 왕관을 쓴 바이러 스로 지상의 개미들은 팔이 잘려나간 토르소가 되고, 어둠으로 길들여진 밤 12시, 네 몸에 돋아난 올리브나무를 벌목하고 있어
내일이면 중고품 우주가 경매에 나올꺼야
최소연 시인 / 아모르파티*
그것은 촌로의 손금 따라 흐르는 빈손의 노래이다
혹은, 빗방울들이 강물소리를 내며 바다로 가는 일이고, 꽃이 꽃으로 살고 나무가 나무로 사는 일이다 때로는 어린 느티나무들의 손을 촌로가 잡아주는 일이다 저녁마다 내가 둥근 식탁에 둘러앉는 일이거나 시시때때로 이별과 이별하는 일이다 그리고
건축학과 늙은 교수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선도기로 생을 그리는 일이다 회전문이 돌 때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일이다 테레사 수녀의 가난이다 탁발하는 범종소리가 신작로를 걷는 일이고, 외줄 타는 일이다
*운명에 대한 사랑
최소연 시인 /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는 뭐할까
나의 열여덟 살 적 별이 빛나던 밤, 내가 절망에 젖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너는 나를 빈 방으로 안내했어 나는 그 빈 방에 걸려있는 별이 빛나는 액자 속으로 숨어 버렸지 잘려나간 너의 한쪽 귀를 볼 때 달과 별 사이엔 나의 푸른 어둠이 더 많았고, 앳띤 헛기침소리로 너의 화선지 안에서 오랫동안 살았어 내 몸속의 사이프러스나무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너의 몸 속으로 내가 강물처럼 흘러가던 날들이었어 사방이 각진 방에서 나는 고독의 화석이 되어가고 있어 어둠이,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것 같던 또 다른 어둠으로 숨어드는 불혹의 밤, 너의 안부를 물어
오늘도 나는 너가 있을 요양원의 빈 방을 페인팅하고 있어
최소연 시인 / 종이호랑이 쇼파에 각이 시퍼런 한 마리의 호랑이가 앉아있다. 그의 DNA는 탱자나무가시처럼 날카롭다. 그러나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눈물의 저녁이면 그는 몇 개 남지 않은 모서리를 지우며 겨울수박처럼 둥글게 앉아있다 가끔 둥굴어진 몸과 손을 내밀어 어지러운 세상으로 실명한 나를 인도해 준다 그럴 때, 창밖 상수리나무가 부처처럼 웃기도 하고 지구가 공전하는 까닭이다 기울어진 그의 어깨로 스며든 슬픔을 향해 내가 손을 내밀자 무너져 내린다 그의 푸른 포효가 저물어가는 시간, 몸은 점점 어두워지고 그의 뿔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계절이 몇 벌의 옷을 갈아입더니, 그의 굽은 등뼈가 묘혈을 파고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뜨고, 각이 다 닳은 한 마리의 종이호랑이가 쇼파에서 사라진다 -계간 『시와 반시』, 2022년 봄 중에서
최소연 시인 / 포노사피엔스*들의 파티
도시의 좀비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거리를 걸어가고 있어
그들은 폰 속으로 들어가 환상의 역을 만나지 그 곳엔 스타크래프트의 조연배우들이 몰려다니고 꽃이 피고, 빵을 굽는 스머프들도 있고 비트코인이 거래되는 별빛역도 있어 그 속에 아이러브카페의 매출이 용수철처럼 튀어오르고 좀비들은 국적불명의 키스를 하고 얼굴이 없는 아이를 낳았어
부엉이 울음소리를 잊은지 오래된 그들, 그래도 부시맨은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갔어 그후, 돌아오지 않았어 이때 4통 7반의 매미는 카페의 매출상승을 ‘혁명’이라 소리치고 3통 5반의 정장은 비트코인의 매매를 ‘이상’이라 말했어 1통 2반의 머리핀은 헐리웃의 사랑을 ‘일상’이라고 소곤댔어
좀비들은 사막의 아이콘 속에 살고 있어 네 개의 귀가 달린 상자에서 포노들이 아우성이야 하지만,나는 아직도 짚신을 신고 원시림을 걷고 있다는 거야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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