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성 시인 / 초과된 시 외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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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성 시인 / 초과된 시 쇳덩어리 하나를 삼키는 중이다 마음을 찌르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숙인다 살짝 벌어진 갈비뼈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온다 진열대에 걸어놓은 외투처럼 흐물거린다 입을 벌린 채 흙이 덕지덕지 묻은 혀를 길게 내밀고 있다 키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매달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는 몸에서 떼어낸 굳은살들로 그를 공격한다 풀어헤친 하얀 깃털 사이로 손거울처럼 좁은 이마가 한 겹씩 흩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목젖을 향해 한 층씩 올라온다 이제 깃털이 전부 바닥났지만 턱 아래에서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한다 일렁이는 시야에서 자본가를, 제노포비아를, 형식주의자를 고발한다 당신이 내민 척척한 쇳덩어리에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김호성 시인 / 버려진 여름
골목 끝에서 끝으로 꼬리를 흘려보내는 중이다. 검은 비닐봉지는 쉴 새 없이 지껄인다. 한 명의 아이와 열명의 어른이 있다. 먹구름에서 쏟아지는 알약들에 그들이 맞아 죽는다. 납작 엎드린 나는 어떤 신의 이름을 부른다. 구부러진 등 위에 앉아 있는 늙은 신은 바둑돌과 눈알을 구별하지 못한다. 눈 속에서 튀어나온 갈고기가 나를 지휘한다. 몸을 접어본 사람은 안다. 부활이란 한 자리를 지키는 것. 온 골목에 돋아난 검은 핏줄을 따라 빈 택시가 손님을 찾고 있다. 기사는 나를 보고 입을 찢는다. 트렁크에 신이 담긴다.
김호성 시인 / 적의의 정서正書
한마디 이름 앞에서는 누구나 조급해진다 휘몰아치는 욕조 속에서 꺼내 달라고 나는 숨을 헐떡인다 청테이프를 물어뜯는 아가리들을 본다 뜯다 만 몸이 있어서 변명하는 자의 눈꺼풀은 주눅이 든다 욕조가 깨져서 슬프다 미끄러져 나오는 시체들을 닦는다 생글거리며 날아오르는 방울뱀만도 못한 가족을 꾸리고 있다 잿빛 기침 하나가 달아난다. 식민지의 식민지에서······ 꼬리를 문 식민지들은 너와 같이한 다툼에서 애용하는 인사말이 되었다 내 손은 주머니 속 화약과 총총한 푸른 항구를 동시에 펼친다 두 눈의 불순물에서 십자가까지 끊어진 인연을 되찾기 위해 무릎은 갖가지 길을 파헤친다 주저앉은 파도에 맞서는 동안 나의 이름은 터지고 말았다 낮과 밤도 없이 쓰인 여러 편의 몸은 설교로 전락한 지 오래다 -시집 『적의의 정서』에서
김호성 시인 / 역류
너는 입을 다물고 운다 넘쳐흐르는 거품으로 거의 모든 사람을 지운다 지금까지 꿈꾸던 하수구를 발견한 것처럼 발밑을 비워 둔 채 맨홀은 작고 어둠은 커서 스스로 빠져드는 동공 같고 그때의 인기척과 쇠창살도 물비늘 속에 가라앉는다 굴러다니는 발목을 휘젓는다 검은 속웃이 바작바작 말라 가는 냄새를 품고 비탈을 내려갈 때 걸음이 그 밑면에 묻힌 유골을 길어오듯이 매 순간 생활은 멎지만 다시 솟는다 미간 아래 칼날이 녹아내리고 간판 속 이름이 낯선 길을 불러온다 불 꺼진 골목은 더 이상 수군거림을 간직하지 않아서 갈라진 틈과 마찬가지다 이 추위에서 손가락 사이를 휘감는 입김은 없다 손가락을 전부 삼켰기 때문에 까마귀도 맴돌지 않고 흘러가는 낙엽의 행렬도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 마음을 빼앗겨 골목으로 숨은 아이도 혼령에게 옷깃을 붙잡혀 하천으로 고꾸라지는 홀아비도 죽는다 새벽은 늘 얼음을 깨뜨리며 오기 때문에 안개 속을 달려가는 몸은 끝끝내 너를 보여 주길 원한다
김호성 시인 / 적의의 정서正書
한마디 이름 앞에서는 누구나 조급해진다 휘몰아치는 욕조 속에서 꺼내 달라고 나는 숨을 헐떡인다 청테이프를 물어뜯는 아가리들을 본다 뜯다 만 몸이 있어서 변명하는 자의 눈꺼풀은 주눅이 든다 욕조가 깨져서 슬프다 미끄러져 나오는 시체들을 닦는다 생글거리며 날아오르는 방울뱀만도 못한 가족을 꾸리고 있다 잿빛 기침 하나가 달아난다. 식민지의 식민지에서······ 꼬리를 문 식민지들은 너와 같이한 다툼에서 애용하는 인사말이 되었다 내 손은 주머니 속 화약과 총총한 푸른 항구를 동시에 펼친다 두 눈의 불순물에서 십자가까지 끊어진 인연을 되찾기 위해 무릎은 갖가지 길을 파헤친다 주저앉은 파도에 맞서는 동안 나의 이름은 터지고 말았다 낮과 밤도 없이 쓰인 여러 편의 몸은 설교로 전락한 지 오래다
-시집 『적의의 정서』에서
김호성 시인 / 음어
혀는 진흙이 굳어진 것이다. 늪은 부푼 혀들이 모여서 생겨났다. 바위도 그 견고함도 해방을 원한다. 늪은 말을 삼키고 있다. 나는 늪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내 시야가 넓지 않다는 것을 안다. 당신은 내가 그어 놓은 원 안에서 무엇이라도 세울 수 있다.
움켜쥔 손은 대부분의 물체를 끌어당긴다. 늪이 한 사람을 빨아들이고 새 생명을 뱉어 내듯이. 살아남은 당신은 안개가 아니다. 숨을 참으면서도 빛을 발하는 곤충의 후손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골격을 입고 하나의 정경을 바라보며 식욕을 느낀다. 두 눈을 크게 뜨며 산파의 머리를 바친다.
배 속에서 올라온 진흙이 과거의 계절들을 뒤섞고 있다. 죽은 바위들에게는 이름이 없으므로 계절도 희미해진다. 바위들의 과거는 눈앞의 그 안개일 뿐이다. 긴 주둥이로 산란 중인 여름에서 수은을 빨아올린다. 살 속으로 스며들어 심장을 부풀게 하는 생명과 맞닿은 기억이다. 늪에서 유래한 것들은 마찬가지로 어느 공기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우리의 세포는 무한히 증식한다. 숲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세포와 세포 사이에 조그만 공간이 있다. 그곳에 우리보다 더 오래된 것들이 산다. 손가락 끝에 눅눅한 바람이 고인다. 당신은 원념의 바다에서 파생된 존재이다. 늪이 끓어오르고 있다.
김호성 시인 / 나는 어둠을 들었다
절벽은 몸을 가만히 내밀고서 기다린다 물속으로 뛰어든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우리는 나무의 호흡에 속해 있다 메아리 뒤에 어둠은 한층 깊어지고 절벽은 가슴을 펼친다 덮개가 벗겨져버린 듯이, 두 척의 배가 떠올라 망을 본다 바다는 숨소리로 가득 차 있다 어린 영혼들은 비밀스럽게 파도에 밀려온다 이곳에는 투명한 피부가 스며들어 있고 죽은 고래들은 용해되어 가라앉는다 무서워서 서로 끌어안고 노래를 부르고 몸속에 노래를 숨긴다 여름의 밤보다 더 분명해지는 때가 있다 첨벙거리는 노가 절벽을 두드린다 잠에서 깬 나무는 공중을 향해서 뻗어간다 자신의 팔로 젖은 오솔길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길들은 얇고 모퉁이를 돌면 갑자기 희미해진다 마치 가출한 신에게 피를 공급하는 촉수들 같다 새들만이 아직 길 위를 걷고 있다 그리고 그 뒤를 너와 나만이 따른다 절벽은 달빛에 눌려 납작해진다 조금 밀치기만 해도 물의 갈라진 틈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나의 걸음걸이는 느려서, 한곳을 도는 어미새가 우리와 함께 유영하고 달의 목적지와 우리의 목적지가 서로 포개진다 하늘의 은하수에 가득한 바늘들이 우리의 머리 위를 겨냥한다 한 마디 말이 물속으로 떨어진다 노래가 멈추지 않는다 기침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기침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우리는 다시 걷는다 복면을 쓴 천사들이 마중을 나온다 검은 숲이 떠오르고 있다 나무들의 흐트러지는 모습 속에 어떤 불감이 흐른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지탱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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