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필 시인 / 장다리꽃 꽃밭에서 외 5편
|
최성필 시인 / 장다리꽃 꽃밭에서
소쩍새 부엉이 곱게 자고 꾀꼬리 딱따구리 온갖 산새 시끌벅적 놀고 있는 산기슭 아래 엉겅퀴 자주색 꽃 핀 풀잎 고운 푸른 언덕을 가진 산밭 장다리꽃 흐드러진 꽃밭에서 백설 같은 흰나비가 백설 같은 꽃잎들이 바람 속에 춤을 춘다 학처럼 춤을 춘다 반짝이는 날개 사뿐사뿐 춤추던 날 꽃봉오리 고운 볼 수줍던 날 전설 같은 어느 옛날 꿈을 꾸며 훨ㅡ 훨ㅡ 즐겁던 날 슬프던 날 날갯짓 사이사이 바람 되어 날아간다 훨ㅡ 훨 우리는 학이 된다 훨ㅡ 훨ㅡ
최성필 시인 / 갈매기
비 온다 최대한 날개를 퍼덕이지 않고 쫙 펴고 서서히 공중을 난다 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삶에 지친 눈망울 그리고 찌든 날개 말끔히 씻는다
최성필 시인 / 사하라의 독수리
밤하늘 가득 쏟아지는 은하수도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도
그가 있어 찬란하다
모래 폭풍을 즐기는 힘찬 그의 비행으로
그 사막은
격동하며 장엄하며
살아 있다
최성필 시인 / 고목
몸통 속이 썩어 동그랗게 패인 채 껍질만 남은 힘으로 푸른 잎사귀 흔들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래도 속을 보여줄 수 있어 위로 받을 수 있구나
최성필 시인 / 검정고무신 진짜 타이어표
한 십년 신으라고 아버지가 오일장에서 사다 주신 새로 나온 진짜 타이어표 검정 고무신
얼마나 크던지 발에 잘 걸리지도 않던 신어도 신어도 잘 닳지도 않던 정말 찔긴
고무신이 지겨워 어느 날 몰래 연필 깎는 칼로 찢었다
아버지는 송곳으로 뚫어 실로 더 단단히 꿰매 주셨다.
최성필 시인 / 솟대
떠나보내는 이별이 싫어
나무로 새 깎아 장대에 꽂아 길이 잘 보이는 담 모퉁이에 세웠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어느 날 나도 누구를 두고 떠나보려고
솟대씨 잘 있으시오
떠나고 나면 내가 너무 보고 싶을 거라고 눈물지으며 그리워하겠노라고 말해주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9월호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