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형 시인 / 외로움의 반대말 외 6편
|
박진형 시인 / 외로움의 반대말
오지 않는 애인 기다리며 커피가 식어간다 외로움을 돌봐준다는 도심 교회 현수막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표정들
연결된 채 격리된 이유 천 가지가 넘을 텐데 어떻게 돌본다는 건지 명치가 아려올 때 외로움 반대말 찾기 어려운 연유 묻는다
각 방에서 막을 치고 고독에 접속해도 익숙한 고립의 시대 나만의 성을 쌓는다 더이상 반대말은 없다 그래서 더 외로운
-《시조시학》 2023. 겨울호
박진형 시인 / 브로콜리 열반 옹다문 봉오리로 꽃대를 밀어 올려 온몸에 스민 얼룩 연두 방울로 닦아내면 꽃순은 아이의 미소로 볼록한 빛깔 된다 처음 만난 녹색 물결 부들부들 곡선미 흔들리는 꽃자리 미혹을 어루만질 때 둘레에 아무도 없다 나를 보는 오백 나한 초록색 꽃봉오리 상큼해 눈 감는다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천 개의 미소 누추함 벗어던지고 날아오르는 꽃숭어리
박진형 시인 / 모과를 읽는 시간
슬픔은 두터워진다 노랗게 익기 전에
설움 속 돋친 햇살 살갗을 휘감아도
향기는 공중에 매달려 험살을 품는다
박진형 시인 / 쥐코밥상
남루한 밥상으로 생일상 받은 어머니 쌀밥에 미역국 말아 가슴을 한술 뜬다 소찬은 허물어져 가는 당신 어깨 닮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 밥상머리 마주한다 장판에 눌어붙어 얼룩 덮는 먼지들 손등에 퇴적층 되어 돋아나는 검버섯
콧방울 비벼대는 주눅 든 생쥐처럼 손마디 저리다며 숟가락을 놓는다 치맛귀 적시는 눈물 가슴에 스민 밥 한끼
박진형 시인 / 동백꽃 든 여인을 사랑하는 법
동백이 짙어지면 어둠에 몸 던진다 불꽃을 일으키며 사랑하고 싶어질 때 연정은 신열을 찾아 살그머니 돋아난다
검붉은 속살은 얼마나 위태로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황홀한 밤 열한 시 달뜬 눈감지 못해서 우듬지 휘청인다
겨우내 마음 둘 곳 어디에도 없는데 눈으로 변한 눈물에 숨소리 설렌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를 자빠트린 꽃
박진형 시인 / 침시 풋감 넣은 항아리에 소금물을 붓는다 코끝을 자극하는 풋내 나는 덟은 몸 어머니 손맛을 채워 감칠맛이 돋는다 제맛을 찾는 길은 짜고 시린 눈물 길 설익은 맛 뱉어내는 아린 시간 보듬을 때 아랫목 생감 항아리 벗겨지는 내 고집
-시집 <어디까지 희망입니까>에서
박진형 시인 / 제비가 있는 저녁 풍경
집으로 돌아와서 제비를 바라봅니다 서로의 공간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듯 사이는 일정합니다 더부살이 처마 밑
읽을 수 없는 선율이 처마에 울립니다 제비 것인지 내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랫소리 바다 향 묻어난 노래 깃털을 느낍니다
우리의 거처를 물끄러미 그려봅니다 제비도 나도 모두가 귀퉁이를 빌려 삽니다 저물녘 제비와 나는 밥 한 끼 때웁니다
-시조집 <어디까지 희망입니까> 책만드는 집,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