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렬 시인 / 가을나기 외 6편
|
이성렬 시인 / 가을나기
가을 고즈넉한 정원에서 수 년 간의 편지를 뒤적인다 나무들은 마른 잎새를 부비며 손풍금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한잔의 포도주를 마시며 주머니 속 기차표를 만진다 너에게서는 몇 달째 전화가 없고 오후에 기대어 창가에 서성이다가 낡은 축음기에 레코드를 걸어 놓고 깊은 몽상에 잠긴다 아, 어릿광대의 숨겨진 눈물처럼 파스테르나크의 슬픈 詩처럼 삶이 그렇게 애절하다면 밤에 몰래 찾아오는 뜨거운 호흡처럼, 백열 전구처럼 내 살갗 위에는 작열하는 시간이 돋을 것이다 하루 종일 추녀 끝에선 빈 바람이 불고 전해지지 않은 편지들을 읽으며 좀처럼 잠들 수 없는 밤 가을은 이미 멀리 떠나고 나는 이 정원에 머물러 있다 -시집 <여행지에서 얻은 몇 개의 단서>
이성렬 시인 / 겨울 庭園
단단한 꽃눈 속에 잠겨 긴 침묵을 준비한다 황혼과 함께 찾아 온 검은 꽃씨들이 백열 전구처럼 대나무 마디마다 밝히고 밤새들은 잠시 풀숲에 내려앉아 거친 들판의 아득함에 몸을 떨고 있다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다 오, 시간이 이토록 질길 수 있음을 어둠 속에 놓인 벌레처럼 잠시 변신을 꿈꾸다 하찮은 사랑에 몸을 내던져야 함을 마른 바람이 불어 저 건너 소나무 숲을 간간이 들려 줄 뿐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지난 가을에 가까스로 채운 술잔과 그 속에 녹아 있던 절절한 눈물들은 보낼 곳 없는 오래된 편지들과 어둠 속 오두막집의 부서진 열쇠는
- 시집 <여행지에서 얻은 몇 개의 단서>에서
이성렬 시인 / 抽象名詞만을 論하는 高선생
압구정동 째즈바 불루문에서 高선생을 만났을 때(그는 째즈가 추상적이어서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몇 년 동안 가라오케를 드나든 후에야 발견한 놀랍고도 확실한 사실을 털어 놓았다. 남자(여자)가수의 노래를 부를 때는 노래방 기계의 톤을 두 단계 내려야(올려야) 내 음정에 맞는다는 것을(두 문장을 한 개로 축약시키는 내 理科的 테크닉에 주목하시라). 예상대로 고선생은 나의 독창적인 발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적어도 2000년 동안 고민하던 문제, 아름다움이 實在하는지 아니면 觀念(은 무엇일까?) 안에만 存在(는 또 무엇일까??)하는지에 대하여 또 다시 골몰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검증할 수 없는 명제이므로 愚問임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길 건너편 옷가게에서 옷을 반품하는 여자와 종업원이 다투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어 있던 고선생이 "자신의 존재를 절실하게 느낄 때가 있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서슴없이 "이빨이 아플 때"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내 발뒤꿈치에서 적어도 세 그루의 神木이 땅속 깊이 뿌리 내렸다.
- 시집 <여행지에서 얻은 몇 개의 단서>에서
이성렬 시인 / 근황
무슨 소식이 있는지 물어온다면, 말한다 행성들이 아직은 별빛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어떤 이는 벼락을 맞은 후 피아노狂이 되었고* 막장드라마에 저주를 퍼붓던 누구는 쇼펜하워의 염세론을 읽고 난 뒤에 사악한 여주인공을 찬찬히 이해하기 시작했다는데 홰홰 고개를 젓는 시계추가 더 이상 밉지 않다는데 그러나 모르지, 언제 지구의 맥박이 목숨을 건너 뛰어 착한 물의 한쪽 가슴을 허물어뜨릴지
좋은 소식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계절 내내 이주하는 나의 짐가방이 제법 서정적이라고 말한다 가을 상가喪家의 화투치며 노는 웃음소리가 실은 사라짐을 기꺼워하는 고인의 것이라는데 이미 오래전에 배정된 여로의 중간기착지들을 수시로 바꾸는 지도 위 검은 점과 선들에게 물안개의 살갗을 사정없이 벗기는 차디찬 빗줄기에게 겨울 틈틈이 읽은 초월주의자의 잠언집은 종이날개 바람이 시지프스의 수의衣에 심은 보풀이라고
*올리버 삭스, Musicophilia』
이성렬 시인 / 봄날, 단풍나무와 함께
나는 생각했네. 먹이감과 살 터를 찾아 눈먼, 인간 에어리언들의 공중전과 그 버팀목이 되는 가슴 없는 세계. -이연주, 「겨울나무가 내 속에서」
봄날의 고적한 뜰에 깊은 녹음을 드리운 단풍나무는 전란을 피하여 떠도는 옛 시인의 분신처럼 외로이 서 있다. 지평의 반대쪽으로 부푸는 상현달의 모습을 입은 채, 세상의 모두를 물리친 후 한쪽 귀만을 열어, 빽빽한 꽃들과 잎사귀로 발등에 짙은 그늘을 마련한 나무는 잠잠히 눈을 감고 있다.
먹이사슬의 장막 바깥으로 나간 듯, 자식나무 한 그루 곁에 두지 않은 무심한 자세로, 햇살에 싸인 담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초록 발우 형상의 단풍나무를 평화라 하겠는가. 모든 내력을 버린 뒤 짧은 계절의 안식을 찾아 지상으로 내려온 한 줌의 숨결을, 거친 껍질 속으로 물의 상처를 핥는 희미한 빛의 족적을
낮은 처마에 눈길을 맞추어 나무는 느린 춤사위를 펼치고 있지만, 그 손끝은 품안의 무성한 소리들, 파닥거리는 벌들의 날갯짓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무수한 별들의 운행을 품는 은하의 가슴처럼, 나무는 그 안의 많은 사연들을 한꺼번에 고백하고 있는 듯 잉잉대는, 수많은 궤적들에게 더운 부력을 불어넣고 있다.
나무는 벌들을 짐짓 이곳으로 불러 모은 것인가, 낙원을 찾는 지상의 호흡들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여 돌아오는 것인가, 양식과 종족과 노역과 계급의 세상 안으로, 산발한 유령처럼 툇마루에 신발을 벗은 채, 사소한 정분도 가녀린 인연마저 어찌할 수 없다는 듯, 어차피 곧 몸이 굳을 때가 될 것임을 짐작이나 하는 듯이.
저무는 뜰에서 젖은 눈으로 서성이는 단풍나무를 무간無間이라 하겠는가, 목숨들의 불화와 투쟁을 껴안은 채 육중한 슬픔으로 서 있는 봄날의 음각을. 그렇다면 그대여, 이 꽃들이 모두 스러진 늦가을의 붉은 모습을 투영함은 크나큰 죄악인가, 이윽고 꽃도 잎도 모두 벗겨 내리는 시간의 처연함을 예견하는 것은.
-전주 한옥마을 <동락원>에서 씀.
이성렬 시인 / 풀꽃에게
불온한 이슬점들을 온몸에 두른 미명은 버려진 정원 문턱에 부르튼 발목을 접는다. 어둠의 품을 떠나는 새들은 묵묵히 손바닥에 찬 바람무늬를 새겨 넣는다. 무엇을 찾아 나왔더냐, 구름 너머로 걸어 나간 풀씨의 기별이냐. 가로막는 울타리의 침묵이냐. 이곳에서는 주어진 혈통의 무늬 바깥으로 나가는 건 이단이라는데. 벗을 수 없는 단단한 껍질 안에서 불어나는 몸을 견디다 못해 그늘의 화석이 된 애벌레가 있다지. 그러나 늘 적의와 시기심을 품는 굵은 뿌리들을 재우려면 기후를 조율하는 수밖에 없다는구나. 밤을 새워 씨앗들의 신상을 문초하는 서릿발의 싸늘한 눈초리는 너무 두려워. 흐르지 않는 물은 망명하는 종이배들의 귓속에 닻을 찔러 넣은 후 어두운 서랍에 첩첩이 접어 넣었다. 참으로 옹졸한 이 땅의 굳은 단층을 넘어 광활한 벌판, 검푸른 물에 몸을 담그며 <이렇게 넓다니!>*, 외치는 달그림자의 슬픔을 알겠지. 오늘의 지형을 견딜 수 없어도 후생을 기약해야 하지 않느냐 지도 위 사막에 초록색 크레용을 칠하는 아이처럼. 시든 꽃잎에 소금을 재워 넣는 붉나무 수액처럼.
*일리야 레핀의 그림 제목
이성렬 시인 /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고 싶지 않은
네가 미닫이문을 빼꼼이 열고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눈을 감고 시베리아의 눈 덮인 벌판과 녹슨 기차들을 보고 있었다. 거기, 내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발거벗은 짐승 한 마리를 화들짝 깨워서 내 대신 邪惡한 세상으로 내보내고 천천히 아주 게으르게 수백년 동안 겹겹이 쌓인 나이테의 무늬가 뿌리 쪽으로 뻗어나는 모습과 겨울 텃새들의 뽀송한 솜털 속에 묻어 있는 太古적 의문들을 손가락으로 보듬고 타클라마칸 사막의 황량한 저녁과 그곳에 사는 낙타의 거친 숨소리 붉은 袈裟를 입은 승려의 그림자를 닦으며 오랜 전, 아무도 모르게 묻혀버린 작은 파충류의 뼈다귀를 빨며 느리게, 아주 말없이 소주잔을 채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