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아 시인 / 오래오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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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아 시인 / 오래오래
이미, 그립다거나 궁금하다는 것은 아직 시큼하다거나 벌써 상한 맛 그럴 때면 도착하지 않은 감정 속에 한 숟가락씩 떠 넣고 휘젓는 오래라는 천연 방부제가 있다는데
퇴적된 층층 옛일들 냄새조차 없다면 독특한 제 성깔마저 오래오래 발효되고 숙성되어 투명해졌다는 것,
해탈한 기다림처럼 천 년을 버티고 서 있는 아득한 저 은행나무는 단정 지을 수 없는 번갯불의 의도를 오랫동안 측량 중인지 반쯤 타다만 옆구리에서 탁 탁 탁 목탁 소리가 난다는데
오래라는 족보 속을 들여다보면 젊은 아버지 곁에 더 새파란 장정 하나 눈에 먼저 가득 차오르는데 얼굴들도 낯선 흑백사진 속에서 그 역시 안녕하며 잘 잊으며 서로 투명해지겠지
오래라는 슬픔을 오래오래 웅얼거리다 보면 두 음이 다정하게 손짓하는 그리움 같아서 눈썹부터 젖어오는 운명을 가늘게 말아 가늠해 본다 나는 그에게서 얼마나 오래된 시간일까 나는 얼마나 오래이어야 투명해질까
오래오래는 나로부터 가장 긴 유효기간이다
금시아 시인 / 내외內外라는 것
구불구불 전나무 길은 깊어질수록 외지外地,
선재길에서 손을 드는 여승들을 만났다 열흘에 한 번씩 있는 삭발목욕을 다녀온다는데 갓 삭발한 공양은 푸르고 눈부셔 숲의 적요, 파리한 두상에 미끄러진다
무성생식無性生殖도 없는 자웅동체에도 내외간이 있다면 문득 여승들의 단호한 법복 안쪽이 외간일 것 같다는 생각,
본성本姓은 밖이라 외간과 내간 그 어느 쪽에도 버리지 못할 속세의 날짜는 꼬박꼬박 찾아와 안팎으로 집요하게 자라고
모두가 민머리 제자들,
제자들은 삭발목욕 가려면 절간의 뜰과 텃밭을 먼저 삭발하고 정돈한다는데, 그러나 따로 또 같은 법복의 내외간은 날짜도 불편해서 목욕삭발의 날짜조차 비구니승과 비구승처럼 엇갈린다
세속의 날짜를 지운 스님들,
적멸보궁 오르는 계단마다 애써 피하는 날짜는 금세 또 거뭇하게 자라 선재길에서는, 가끔 마주치는 새소리 규율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성별 없는 법복의 안부가 있다
“스님, 언제 삭발목욕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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