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주영헌 시인 / 좋은 시는 없다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4. 08:00
주영헌 시인 / 좋은 시는 없다

주영헌 시인 / 좋은 시는 없다

 

 

좋은 시는 없다

우리를 너와 나라는 이분법으로 나뉘는 세상

시까지 좋은 시와 나쁜 시로 구분하여야 하겠는가?

 

그래도 좋은 시가 무엇인가 다시금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얘기해 줄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이지만

내 얘기처럼 들리는 시가 좋은 시라고

한 편의 시를 읽어, 또 한 편의 시를 읽어 봐야지

마음먹게 하는 시가 좋은 시라고

시를 쓴 시인의 삶이

궁금해지는 시가 좋은 시라고

 

나도 한번 시를 써 보고 싶다고

마음먹게 하는 시가 좋은 시라고

 

나쁜 시는 없다

시란 누군가가 마음을 풀어 쓴 문장

그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주영헌 시인 / 그림자를 위한 지옥

 

그림자의 무게를 달아본 적이 있다.

방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체중계 위에 오르면,

미세하게 눈금이 움직인다.

영혼의 무게는 21g

그림자 무게는 화창한 날

내 몸의 무게에서 영혼의 무게를 뺀 나머지의 무게

영혼의 比重(비중)은 각양각색

죄를 짓는 만큼

몸 무거워 하늘에 오르지 못하는가,

지상이라는 煉獄(연옥)에 갇히는 영혼들

영혼보다 불쌍한 것은 영혼의 그림자, 21g에 구속된 그림자는 매일 저녁 내 몸속으로 숨어든다.

숨지 못한 그림자는 어둠이 된다.

매일 조금씩 살이 빠진다.

 

 


 

주영헌 시인

1973년, 충북 보은 출생.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 석사. 2009년 《시인동네》 신인상(시) 당선, 2019년 《불교문예》 신인상(평론) 당선. 시집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