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혜주 시인 / B 플렛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5. 08:00
김혜주 시인 / B 플렛

김혜주 시인 / B 플렛

 

 

 모차르트를 누리는 좋은 방법은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이다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스가 죄수들에게 ‘피가로의 결혼’ 중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를 틀어주는 장면이 있다 봄 편 같은 피아노 소리로, 수감자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느끼게 하는 순간은 잃어버린 표정까지 돌아오게 한다

 

 나를 부르며 나를 벗어나는 이름은 언제나

 한 박자 늦게 따라오고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낯설어진다

 

 너는 나를 본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식어버린 나의 형상

 너의 시선이 닿는 순간 울림으로 흩어진다

 

 낮은 의식의 진동 속에서 나는 나를 듣는다

 세상은 늘 반음 낮은 곳에서

 숨죽인 자들의 노래가 피어난다

 이름 없이 걷는 사람들,

 그들의 발소리마다 낮은음의 선율이 깔린다

 

 너를 향해 내딛는 한 걸음은

 언제나 미세한 오차로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우리의 거리이자 대화가 된다

 

 불완전한 화음 속에서

 서로를 모르는 채로 흔들리는 음표들

 그 미묘한 낮은음 속에서

 아주 느리게,

 하나의 세계가

 깨어난다

-웹진 『시인광장』 2026년 1월호 발표

 

 


 

 

김혜주 시인 / 당신이 좋아 당신의 색깔로 옮겨 탄다

 

 

오후의 빛 소리가 길 위를 홈친다

프리즘의 찰나를 놓치지 않는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다

나를 붙들고 싶을 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낯선 유전자를 찾아 낯섦 속을 유랑한다

은밀히 숨겨서 보던 소설책의 순간들은

인간적인 쾌감을 소회한다

고흐가 쓴 영혼의 편지 안에는

창백한 보라색,

버터 같은 노란색,

라임의 녹색 같은,

집요하고 세밀한 색깔이

거부하지 못하는 매혹으로 숨겨져 있다

내 안을 마주하는 신선한 몸의 색은

아프고나서야 푸른 새벽으로 탄생한다

긴 한숨 뒤 강물의 뼈로 새긴다

다시 가보고 싶었던,

차고 건조하여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막

적막과 공허를 부추기는 차가운 온기로

무너진 빛이 다시 타오르고

갇혀진 흔적들은 흐르고 변하는 것들을 찾아 떠난다

첫발자국의 시간이 정 반대쪽에 살고있는

첫 장들과 악수를 나눈다

열정에 서성였던, 상실을 앓았던 오랜 시간은

서로에 관해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는다

정지했던 다정한 시간이 오고 있다

높은 곳을 오를 땐 심장의 빛깔이 궁금해진다

박동수도 세어봐야 한다

필요로 하는 색만 보이고 원하는 숫자가 보일 때까지,

관하여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 오래가고 더 변하지 않는 건 길들어지지 않는 색깔이다

등 뒤로 오는 그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이

형태와 향기로 남아 결핍을 어루만져주는

청춘의 파란 빛깔, 딥 블루

그 안에서 응시하는 낯선 문장들

다시 와 보고 싶었던 그 길에 서 있다.

그 깊고 넓은 곳에 나를 던지고 기다린다

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혜주 시인

2019년 계간 《시와 편견》 으로 등단. 《샘터문학》 으로 수필부문 등단. 시집 『내게 말을 걸었다』와 『B플렛』 출간. 현재 『시의 시간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