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지 시인 / 안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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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지 시인 / 안녕 안녕, 안녕은 무사한가요
이미 문고리에 걸려 있거나 신발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말
입술을 열지 않아도 한 번쯤 다녀간 표정처럼 우리의 바깥에 먼저 도착해 있습니다
안녕에는 질문이 접혀 있습니다
접힌 자국만으로 조바심을 깨우고 이별과 닮았으면서도 선언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사실은 각도의 문제 기울어진 정도를 살피며 우리는 그 말의 조도를 낮춥니다
가슴 높이에 올려놓고 바라보는 확신도 분별도 포기도 아닌 말
그래서 누구든 덜 다치게 하는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안녕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도착지를 가리키지 않고 넘어갈 수도 돌이킬 수도 있을 만큼 문턱을 남겨 둡니다
안녕은 끝나지 않는 질문
우리의 안녕은 지금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
어제에 가까운지 아니면 오늘 쪽인지 -웹진 『시인광장』 2026년 1월호 발표
김미지 시인 / 미역국 끓이기
건미역 한 오래기 물속에 담그면 연거푸 일어나는 물거품들 미역을 먹이고 키운 팔 할이 거품이란 듯 치대고 헹궈도 좀체 줄어들지 않는 햇빛에 말리고 말려도 증발되지 않는 무게도 냄새도 실리지 않는 그 거품이란, 물살에 흔들리고 고깃떼에 짓밟히며 삼킨 온 생이 안개처럼 흐려진다
내 안의 하구에서 물풀처럼 흔들리는 것들 출렁이면서 뒤틀리면서 이리저리 몸을 가누는 세파, 융모세포들 상류에서 흘러든 낡은 사상들을 거쳐 신산한 세파, 안개다발지역을 거쳐 흡수된 양분들은 림프관, 모세혈관으로 몰리어 가고 정체된 것들의 찌꺼기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은 하수도 낡고 녹슨 벽에 낀 숙변처럼 누적된 시간들, 생의 굽이마다 안개가 몰려왔다
나를 거쳐간 모든 것들이 저 물풀 속에 있다 나를 제도한 모든 것들이 저 물풀 속에 있다
묵은 때를 벗겨내듯 연거푸 치댄다 울컥 울컥 게워내는 거품의 눈물, 거품의 추억, 거품의 생애
맑은 물이 우러나온다, 점점 파도치는 비릿한 바다 오늘밤은 부영양물질 둥둥 떠다니는 나의 하구에도 보름처럼 달이 뜨고 끼룩끼룩 갈매기 울어대겠다
-시인정신 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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