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형로 시인 / 유목민의 눈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5. 08:00
김형로 시인 / 유목민의 눈

김형로 시인 / 유목민의 눈

 

 

평원의 사람들은 멀리 본다

거침없이 먼 지평선이 지척이다

 

구름의 속도

비상하는 매의 숨겨진 발톱

초원에 갓 핀 꽃잎 속 이슬 한 방울이

그들 눈 속에 있지만

 

그것은 시력이 아니다

 

발 닿는 곳 모두 길이자

머무는 곳 모두 집으로 가진

무심 무욕

선한 영혼의 힘

 

아무것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바람을 낳아 방목하는

천진한 힘으로

천 리 밖 비를 헤아리고

만 리 밖 별을 읽는

 

아득히 푸른 저 유목민의 눈

 

-시집 <타르초, 타르초>·문예중앙·2016

 

 


 

 

김형로 시인 / 흔들리며 고맙다고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몸

몸의 주름이 펴지지 않는다

굽은 곳은 더 틀어지고

패인 곳은 더 깊어졌다

아픈 몸을 자주 미워했지만

몸은 나를 사랑하기만 했다

 

비극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

티격태격 도니

말 없던 몸이 말을 한다

귀에서 여치 소리 나고 눈에는 벌레가 난다고

무릎은 녹슨 돌쩌귀 되었다고

 

밤마다 몸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어떠셨냐

손으로 만지며 쓰다듬는다

 

몸이 답한다

힘닿는 데까지 가 보겠다고,

숨소리가 많이 얕아졌다

함부로 부렸구나

 

다음 생이 있거든

내가 몸이 될 테니 너는 내가 되거라

결기 없고 시류도 못 맞추는 내가

한쪽 쳐진 몸과 함께 오늘도 어제처럼 간다

 

절뚝절뚝 흔들리며 고맙다고

힘들면 잡고 서서

높다란 새를 함께 보면서

 

-시집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 상상인

 

 


 

김형로 시인

1958년 경남 창원 출생. 본명: 김형수.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2017년 ≪시와표현≫ 신인상과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전 ≪부산일보≫, ≪경향신문≫ 기자. 현재 한국작가회의, 부산작가회의 회원. 부산시인협회 회원. 시집 『미륵을 묻다』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