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국 시인 / 한줌의 일상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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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 시인 / 한줌의 일상
빛이 안쪽으로부터 에돌아 번집니다.
지긋한 시간을 견딘 철제 의자에 걸터앉아 너머를 바라보는 노인의 어깨 위로 그늘이 집니다.
생의 골짜기를 헤집는 빛은 찰나의 영원으로 머물고
미간에 뭉친 오래된 걸음을 옮기는 약속처럼
낡은 노을의 신비와 미처 삭지 못한 한숨과 지속되는 혼곤한 졸음 사이로 나풀대는 날벌레의 날갯짓이
겹겹의 풍경 안에서 서로를 스치고
망설이기만 했던 꿈의 낱장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습니다. 허리를 숙여 더듬는 손은 마음의 덧창에 베여 흥건합니다. 한때는 사랑이라 믿었던 그리움이 한줌의 재로 흘러내립니다.
넌 고작으로 살아왔구나.
다정의 경계를 다만이라고, 뼛속까지 시린 어제를 겨우라고,
분명하게 무른 쇠락의 계절처럼 삶의 한복판을 맴돌며 구겨진 다리를 움켜쥡니다. 무뎌짐을 이해하는 일은 매번 어긋나는 혼잣말이 되어 조등이 걸린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되짚습니다. 지켜야 할 오늘이 있다는 듯 빛을 그러모읍니다.
바람도 없이 골목 모퉁이가 휘청이고 노인이 거기 그렇게 있습니다. -계간『학산문학』 2025년 봄호 발표
이병국 시인 / 장비야, 어여 가자
가로등이 꺼졌다
걷지 못한 길이 켜졌다
고르지 않은 바닥이 꺼졌다, 움푹
가누지 못해 휘청 거렸다
잔돌이 날렸다
나란한 자리를 맴돌았다
발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랬던 것 같다 그래왔던 것 같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말하자면
컹, 그리고 컹,
무지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않았다
안았다
가벼웠다
-시집 《내일은 어디쯤인가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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