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최명란 시인 / 위험한 밥상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6. 08:00
최명란 시인 / 위험한 밥상

최명란 시인 / 위험한 밥상

 

 

싱크대 여닫이장 한 가장자리

뚜껑이 반쯤 열린

달콤하고도 불량한 저 물엿병에

모래알만한 개미들이 줄줄이 끌려가 익사했다

먹이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천리만리 달려갈 때

그 길은 다만 식사에 충실한 일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많은 시간

세상에 차려진 밥상 앞에 앉기 위해

얼마나 먼 바닥을 기며 무서운 노동의 땀을 흘렸던가

그러나 먹이가 혀끝에 닿기도 전에 깨져버리는 희망

산다는 건 결국 그렇게 위험한 밥상을 구하는 일이었다

떨어지기 전

병의 입구에 매달려

세상에 걸린 줄을 놓지 않으려고 얼마나 숱하게 발을 저었을까

무서운 일이다 세상에 차려진 밥상을 찾는 일이란

앞서간 이들의 되풀이되는 익사를 보면서도

먹이를 좇아 반질반질해진 길을 뒤따르는 이들 역시

이 아침에도 끊임없는 발을 들여놓는다

달콤한 맛에 지옥이 함께 있다

 

(문학마당 여름)

 

 


 

 

최명란 시인 / 꽃피지 마라

 

 

꽃 핀 것도 부끄럽다

꽃잎 날리는 길가에서 구급차 소리로 온 아들 가슴에 묻고

이듬해 오월 그대는

삼십 년 동안 마당 울타리 가득했던 장미꽃 넝쿨을 베어버렸다

꽃피지 마라 울타리 가득 꽃이 핀 것도 부끄럽다

슬픔이 너무 많아 가슴 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관흉국 사람처럼

그대 가슴에서 등으로 관통한 구멍 속에는 장미 가시가 솔솔 돋아나왔다

그렇게 하루 이틀 통곡의 가시에 짓이겨진 가슴 부여안고

그해는 그대가 아들을 보내고 올해는 내가 그대마저 보내네

억울타 억울타 산 것이 억울코 억울타 억울타 속은 이생이 억울타

그대가 부른 병상의 만가 귓전에 생생하여

그해의 그대 마음 올해 내가 차마 알 것 같네

장롱 안의 두터운 옷가지 미리 태워버리고

넘기지 못할 겨울을 예감했을 사람아

지금은 그대 떠나고 다시 첫 오월

빈 집 울타리 사이사이로 다시 솟은 장미가 넝쿨째 떨고 있네

꽃 핀 것도 부끄럽다 오월이여

더 이상 꽃피지 마라

 

(시와정신)

 

 


 

최명란 시인

1963년 경남 진주 출생. 세종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 『자명한 연애론』 『명랑 생각』 『이별의 메뉴』. 동시집 『하늘天 따地』 『수박씨』 『알지 알지 다 알知』 『바다가 海海 웃네』 『해바라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