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란 시인 / 위험한 밥상 외 1편
|
최명란 시인 / 위험한 밥상
싱크대 여닫이장 한 가장자리 뚜껑이 반쯤 열린 달콤하고도 불량한 저 물엿병에 모래알만한 개미들이 줄줄이 끌려가 익사했다 먹이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천리만리 달려갈 때 그 길은 다만 식사에 충실한 일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많은 시간 세상에 차려진 밥상 앞에 앉기 위해 얼마나 먼 바닥을 기며 무서운 노동의 땀을 흘렸던가 그러나 먹이가 혀끝에 닿기도 전에 깨져버리는 희망 산다는 건 결국 그렇게 위험한 밥상을 구하는 일이었다 떨어지기 전 병의 입구에 매달려 세상에 걸린 줄을 놓지 않으려고 얼마나 숱하게 발을 저었을까 무서운 일이다 세상에 차려진 밥상을 찾는 일이란 앞서간 이들의 되풀이되는 익사를 보면서도 먹이를 좇아 반질반질해진 길을 뒤따르는 이들 역시 이 아침에도 끊임없는 발을 들여놓는다 달콤한 맛에 지옥이 함께 있다
(문학마당 여름)
최명란 시인 / 꽃피지 마라
꽃 핀 것도 부끄럽다 꽃잎 날리는 길가에서 구급차 소리로 온 아들 가슴에 묻고 이듬해 오월 그대는 삼십 년 동안 마당 울타리 가득했던 장미꽃 넝쿨을 베어버렸다 꽃피지 마라 울타리 가득 꽃이 핀 것도 부끄럽다 슬픔이 너무 많아 가슴 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관흉국 사람처럼 그대 가슴에서 등으로 관통한 구멍 속에는 장미 가시가 솔솔 돋아나왔다 그렇게 하루 이틀 통곡의 가시에 짓이겨진 가슴 부여안고 그해는 그대가 아들을 보내고 올해는 내가 그대마저 보내네 억울타 억울타 산 것이 억울코 억울타 억울타 속은 이생이 억울타 그대가 부른 병상의 만가 귓전에 생생하여 그해의 그대 마음 올해 내가 차마 알 것 같네 장롱 안의 두터운 옷가지 미리 태워버리고 넘기지 못할 겨울을 예감했을 사람아 지금은 그대 떠나고 다시 첫 오월 빈 집 울타리 사이사이로 다시 솟은 장미가 넝쿨째 떨고 있네 꽃 핀 것도 부끄럽다 오월이여 더 이상 꽃피지 마라
(시와정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