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강 시인 / 의자 머플러 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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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강 시인 / 의자 머플러 밤
의자에 머플러가 걸려있다 걸려 있다가 길처럼 흘러와서 목을 감는다 머플러에 감겨 있는 밤 머플러 속에서 침묵하는 밤 침묵 속에서 당신이 꾸던 꿈을 이어받는 밤 모두의 머플러 끝이 연결된 건 아닐까 가늠되지 않는 밤에 의자에 걸린 머플러를 조용히 바라보는 밤 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늘 학사모를 쓰고 있는데 왜 그렇게 목이 길어 보이는지 알 수 없는 밤 수화기 저편에서 당신은 친구가 죽은 밤이고 벽제로 간다고 벽제 벽제 하니 친구가 정말로 죽은 것만 같다고 뚜뚜뚜- 하니 벽제로 간다는 네가 사라져버릴 것 같은 밤 사라지지 않아, 하고 말하려는데 목을 꾹 누르며 가다듬는 밤 의자에 감겨있는 밤 낯선 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밤 잠겨 있는 당신의 밤에다 대고 벽제- 벽제- 발음해 보는 밤
김이강 시인 / 안개 속의 풍경
거대한 손이었던가? 아님 공을 받치고 있는 손이었나? K가 묻는다 그러나 우리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손도 아니었고 설령 손이었다 해도 그것이 공을 받치고 있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생각할수록 그것은 손이었음이 분명해지는 것 같고 그 거대한 것 위에 그보다 더욱더 거대한 공이 한 덩어지쯤 올려져 있었다 해도 어색할 까닭이 전혀 없게 여기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 거대한 것이 정말 손이었다는 얘기지? 우린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날이 기우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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