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석 시인 / 유령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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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시인 / 유령
새 떼들 불 탄 쓰레기처럼 서녘 하늘로 점점이 사라지는 저녁 그 적막한 지평선에서 마침내 종소리 울리면 너희는 가거라 돌아오지 말지어니 유령의 세월을 세월이라 하지 마라 삶은 온통 빛나고 아름다운 색깔들 검고 흰 것을 인생이라 하지 마라 붉은 해바라기와 노란 태양의 저 뜨거운 교신 (느끼지 못한 세계는 세계가 아니지) 푸른 하늘이 초록 강물이 끔찍하도록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혈관이 있기 때문 푸르고 푸른 혈관이 내 혈관과 내통하기 때문 죽음 없는 삶을 삶이라 하지 마라
모든 살아있는 것은 연민과 번민의 섬들 그 심장 언제 멈출지라도 헛된 유령의 세월은 사라져다오 오, 우리 몸을 흔드는 고통의 환희여 허튼 사랑을 붙잡지 마라 길 떠나다오 유령이여
오민석 시인 / 그대 눈물이 흐르면
그대 눈물이 흐르면 정선에서 기차를 타고 동해로 가라 그대의 죄는 지상 어디에도 없는 나라를 꿈꾼 것 그대 눈물이 흐르면 청진항의 눈발을 뚫고 시베리아로 갈 일이다 그대의 죄는 사랑을 잃고 다시 찾지 않은 것 거기 눈 내리는 벌판에서 카츄사에게 거절당한 네흘류도프처럼 반나절을 더 울 일이다 그대 눈물이 흐르면 사라진 피맛골의 해장국집을 찾지 말고 와사등 흔들리던 목포 항구로 가라 그대의 죄는 사람들의 양심을 아프게 찌른 것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이제는 사라진 옛 페리호를 타고 열두 시간을 먼 바다에서 떠돌 일이다 그래도 눈물이 흐르면 돌아오라 탕자처럼 돌아오라 그대의 죄는 늘 불가능을 꿈꾼 것 돌아와 더 이상 나갈 곳 없는 유배의 삶을 살라 이곳은 눈물마저 유배시키는 겨울의 나라 그러나 이 겨울강의 어디쯤에서 눈발 그치고 그쳐 슬픈 그대 마침내 닻을 내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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