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황명자 시인 / 불끈 사랑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7. 08:00
황명자 시인 / 불끈 사랑

황명자 시인 / 불끈 사랑

 

 

평생 어색해서 못 해본 말.

치매 걸린 엄마 귀에다 대고

사랑해, 처음으로 해본 말.

진짜로 사랑해서 사랑한다고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는 건

진심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은 말.

연애할 때도 쉽게 안 나와서 한 놈

애태웠다던 그 말.

치매에 귀까지 어둔 개에게

사랑한다, 이놈아. 아무리 외쳐봐도

못 알아듣는 그 말.

눈뜨자마자 옆에 누운 이에겐

절대 못 할 말.

목숨 다한 개에게는

아낌없이 해 주고 싶은 말.

진심 다해 사랑한다, 사랑해,

목청껏 질러 준다.

 

뭔 말인진 몰라도

좋은 말인 줄은 알겠지.

몸이 귀찮은지 맘이 안 따라 주는지

누운 채 꼬리만 슬쩍 꿈틀거리다가 만다.

진작 말해 줄걸. 진심이 아니면

절대 입 밖으로 안 나올 그 말.

한밤중 불 끄고 들어본 말

환한 대낮엔 지금껏 못 들어본 말.

어느 것도 진심일 것 같지 않은 그 말.

사랑한다는 말. 온맘 바쳐 개에게

불끈, 쏟아붓는다.

 

 


 

 

황명자 시인 / 구름조련사

 

 

 구름의 매력은 무얼까.

 

 구름에게 빠진 그의 눈빛과 구름을 번갈아 쳐다본다. 구름은 무심하게 여기저기 이동하지만 그의 눈빛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다. 집 앞, 병원 건물 옥상에 환자 이송 헬기가 구름 싣는 장 면을 목격하고는 구름 대폭발이네? 한다. 헬기는 오래도록 뜬 적 없지만 오늘은 구름이라도 실어 나를 모양인가.

 구름은 짧은 공연 안에 수십 벌의 옷 갈아입는 가수처럼 개나 새 등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선 헬기 주변 맴돌지만 그가 보는 구름의 모습은 무척 주관적이다.

 

 구름은 무표정한데 그는 구름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구름이 늘 자기 뜻대로 움직인 듯

 

 의기양양해져서 집 나갔다 돌아온 개처럼 앞서 반긴다. 한적 한 길을 달리는데 앞산 꼭대기에 걸렸던 구름이 이미 앞서가 고 있다면 구름을 따라가는 것이라 하고 돌아보니 구름이 아 직 거기 있다면 구름이 따라오는 것이라 한다. 구름의 주체는 그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는 얼핏, 구름조련사 같지만 때때 로 구름 안에 머물고 싶은 구름 바라기다.

 

 구름은

 어디든 데려다줄 거라 믿으면서.

 

 


 

황명자 시인

경북 영양에서 출생. 1989년 월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귀단지』 『절대고수』 『자줏빛 얼굴 한 쪽』 『아버지 내 몸 들락거리시네』 『당분간』. 산문집 『마지막 배웅』. 2014년 대구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