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다연 시인(익산) / 종이컵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8. 08:00
김다연 시인(익산) / 종이컵

김다연 시인(익산) / 종이컵

 

 

신성리 갈대밭에서 마시던

자판용 커피는

이름모를 물고기와

수초가 그려진

일회용 흰 종이컵에 담겨 있었지

 

버려지면

이내 잊혀지겠지만

그가 건네주는 뜨거움의 순간을

그윽함 우러나는 순간으로

받을수만 있다면 나는

깨질 염려 없는 용기라 생각하며

저장된 죽음과

대기된 삶을 유영하는

컵 속 열대어가 되고 싶었지

 

누군가를 만나면

흘러가지 못하고 떠있는

늪의 수조처럼

발목 잡히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만나면

알 수 없는 중력에 끌리어

생을 다한 별똥별처럼 질 것이고

가난한 그가

오랜된 풍금 위

촛불받이로 쓰겠다면

한 때 나무였던 생을 비춰보면서

물관 속에 흐르던 노래도 들려주겠지

 

그러나

갈잎으로 웃고 갈잎으로 우는 그가

신성리 갈대밭을 지나

바다로 건너는 건반을 누를 때면

떠다니는 것들의 맨 밑으로

아주 먼 밑으로

등 붉은 열대어가 되어

심해를 유영하겠지

 

 


 

 

김다연 시인(익산) / 와우蝸牛, Wow

 

 

 달팽이의 촉수는 음향을 탐지한다 미세한 풀잎의 떨림, 풀잎 끝에 대롱거리는 이슬방울의 장력까지 감지하여 연체의 몸에 저장한다 껍데기는 일종의 진공관, 탐지한 주파수는 나선의 관 속에서 보정되거나 증폭된다 알맞게 변주한 음향의 재생으로 생활하는 달팽이의 길은 소리의 점액질, 그리하여 끈적끈적하고 느려졌을지 모를 일

 

 Wow* 이어폰을 낀다

 

 같은 말이 달리 들리고

 다른 말도 똑같이 들리는,

 어두운 세상 말귀를 보정한다

 

 힙합처럼 리믹스한 말들이 좋고

 사실과 허구 사이

 불규칙한 떨림이 좋은

 

 내 귀는 껍데기, 그 속에 끈적끈적한 민달팽이가 살기 시작했다

 

* 녹음과 재생장치 용어

 

 


 

김다연 시인(익산)

1961년 전북 익산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2002년 시집 <사랑은 좀처럼 편치 않은 희귀 새다> 출간. 2005년 <시선> 특별발굴 당선. 2017년 《문학3》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바늘귀를 통과한 여자』 『우연히 잡힌 주파수처럼, 필라멘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