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배정숙 시인 / 붉은 잔상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8. 08:00
배정숙 시인 / 붉은 잔상殘像

배정숙 시인 / 붉은 잔상殘像

 

 

눈에 밟힌다는 것

칸나의 꽃잎 떨어진 자리가

눈에 밟힌다는 것은

 

밤이면 붉어지던 칸나의 이명이 내 귀로 옮아온다는

기억의 끈을 그에게 묶어 타원형 궤도 따라 비행한다는

꽃잎이 은밀한 슬픔의 방향으로부터 차례차례 떨어진다는

물먹은 한지만큼 차고 투명한 그리움을 키운다는 말

 

눈에 밟힌다는 것은

얼음 박힌 보리밭 밟아주듯 구멍 숭숭한 마음 밟아주는 일

밟으면 울컥 일어나 출렁이는 정직한 풀밭

그와의 사이에 흐르는 강물의 민낯을 쓰다듬는 방식

쓸쓸하고 배고픈 노래

이 모두에게 읍소하는 일

 

 


 

 

배정숙 시인 / 시험 보는 날

 

 

엄니는

아무 말씀을 안 하시며

등 한번 토닥토닥

 

내 맘이

생각이 많아질세라

다른 생각 들세라

 

말 대신에 토닥여 주시는

엄니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배정숙 시인

충남 서산 출생. 신성대학 복지행정과 졸업, 한국방송대 가정관리학과 졸업. 2010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청아(靑雅). 시집 『불친절한 오후가 향기로울 때』 『나머지 시간의 윤곽』 『좁은 골목에서 편견을 학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