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박청륭 시인 / 쑥부쟁이 모깃불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6. 2. 9. 08:00
박청륭 시인 / 쑥부쟁이 모깃불

박청륭 시인 / 쑥부쟁이 모깃불

 

 

저녁 마치고 날이 어두워지자

할아버지께서 쑥부쟁이 한 아름 안아다

모깃불을 지피셨습니다.

진한 쑥 향기,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바라보던

영식이는 오후 늦게 소 먹이다가

소를 놓치고 울면서 혼자 돌아왔을 때

그저 웃기만 하시던

할아버지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하얗게 피어오르던 연기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영식이는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는

연기를 보면서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도 모깃불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속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어둔 등잔 밑에서 성경 읽으시던

할아버지도 예수님을 보셨습니다.

영식이와 할아버지가 본 예수님 얼굴은

한결같이 따뜻한 양털 미소였습니다.

 

 


 

 

박청륭 시인 / 얼굴 없는 천사

 

 

‘얼굴 없는 천사의 정체에 대해 시청 주변에서는 추측이 난무하다.

‘과거 조직폭력배’나 ‘선미촌 포주설’, ‘일반 사업가’로 모아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 선행 당사자가 이 따위 글을 보았으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과거야 뭘 했던 무슨 상관인가?

동전 한 푼 내놓기 어려운 세태에.

그저 고개 숙여 감사만 하면 되지 무슨 말이 많을까!

‘올해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렸습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이웃에게 전해 주십시오.’라고 적힌 메모지도 함께 넣어져 있었다니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대단한 천사임에는 틀림이 없군.

내년에도 이분 같은 천사들이 많이 하늘로부터 눈송이처럼 많이 내려와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왜 아이처럼 눈물이 자꾸 나려하지! 눈물난다고? 의연금이라곤 한 번도 내지 않는 이 스쿠루지보다 흉측한 놈이!

 

 


 

박청륭 시인

1939년, 일본 쿄토(京都)에서 출생. 계명대 교육과 졸업. 부산대학교 대학원. 1975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불의 가면> <세상에 섰는 것은 다 부러진다> <사막은 고장이다> <낙타와 함께 가는 맨하탄> <내 오일 파이프 전립선도> 시론집 『現代詩評說』. 2001년 부산시협상 본상 수상. 1975.~1999. 부산 동주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